I. 문제 제기
젊은 남성의 일베화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을 비롯해 특정 지역, 특정 정치성향에 폭력적 언어를 쏟아내던 일베는 그야말로 혐오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보통남성들이 혐오를 내재한 일베 문화를 널리 공유하게 되었다는 게 젊은 남성의 일베화의 핵심이다. 물론 여기에 남성들의 반발은 크다. 젊은 남성들은 자신들을 일베와 등치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거리두기를 한다. 나아가 일베식의 여성혐오에 거부감을 드러내며,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다는 말에 공감을 표한다. 하지만 남성의 일베화의 특이점은 단순히 폭력적 언어사용이나 여성혐오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젊은 남성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시행되는 배려 정책에 역차별을 주장하는 “피해자 정체성”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피해자 정체성은 여성의 전유물이었다. 왜냐하면 여성 피해자를 야기하는 차별과 억압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제도에 내재되어있는 구조적 억압과 관련되기 때문이다(김남옥 외, 2017). 노동 현장에서 ‘시간당 임금’으로 볼 때도 남녀 임금격차가 크다. 노동시장에서 2021년 OECD가 공개한 '성별 간 임금 격차(gender wage gap)'는 31.1%이다(OECD Data, 2021)1). 한국에서 남자가 100만 원을 벌 때 여자는 68만 9000원을 번다. 남성이 더 오랜 시간 일하기 때문에 여성보다 임금이 높은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지만, 한국의 전체 남녀 임금격차에서 노동시간으로 설명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오히려 성별 직종분리 현상이 더 두드러진다. 한국에서 여성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에 더 많이 분포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돌봄 직종에 중장년 여성이 유입되고, 이 영역의 일자리 다수가 영세한 저임금 사업장인 현실과도 관련이 있다(Chung & Jung, 2016; 이은정, 2019). 대기업-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격차가 큰 이른바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성별 직종분리와 중첩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사적 영역에서 행해지는 직장 내 성희롱, 데이트 폭력 등으로 인한 피해도 권력의 열세 및 사회적 지위의 취약성과 관련된다. “여성이 조신하지 못해서”, “여성이 남성을 유혹했다”라는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여성은 피해의 사실을 억압하고. 개인의 고통으로 간주해야 했다.
지난 동안 여성운동은 사회적 분배나 기회, 안전에 있어 차별과 억압에 문제를 제기하고, “사회구조적 피해자”로서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여성들에게 널리 공유된 피해자 의식은 여성을 행동하는 집단으로 변화하는 계기기 된 것이다. 진보정치에서 여성들은 사회적 약자로 규정되며, 이들을 배려하는 여성할당제, 육아휴직 등 여성정책에 대한 성과를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최근 남성들은 군대문제를 필두로 여성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남녀 사이의 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젊은 남성들은 부모세대와는 달리 남성으로서 특권을 누리지도 못한채, 여성 권리를 과잉보호한 진보정치로 인해 남성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이러한 피해자 의식을 내재한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적대감을 가진고 정치에 등장하고 있다. 2021년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에서 표출된 20∼30대 남성들의 오세훈 후보에 대한 압도적인 지지는 성별갈등의 정치화로 거론되며(구본상·최준영 2019; 김기동·이재묵·정다빈, 2020; 박선경 2020; 박영득·김한나, 2022), 반페미의 감정이 보수정치에 대한 지지로 나타났다고 진단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현재와 같은 젠더갈등이 젠더전쟁의 형태로 비화되고 있는 것은 단지 객관적 피해사실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부모세대 여성들은 지금보다 훨씬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희생과 피해를 강요당했지만 남녀 사이의 갈등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여성은 남성의 특권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희생을 감내해왔다. 또한 남성의 성차별적 시선을 그대로 내면화하여 이기적인 젊은 여성에 의해 피해를 받는 남성이라고 평가하며, 여성정책을 반대하는 남성들의 편에 서고 만다. 이것은 피해자 의식이 저절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며, 내면화된 성차별주의 가치에 따라 피해의 여부를 스스로 규명하며, 정책에 대한 찬반의 입장에 서게 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여성정책을 둘러싼 남녀 갈등은 이전 세대와는 변화된 성차별주의 가치에 기초해 “누가 진정한 피해자인가”를 가리며, 남녀간 갈등을 이어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성장을 거듭하여 과거 성별분업에 기초한 적대적 성차별주의에서 여성의 권리를 인정하는 온정적 성차별주의로 진전되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여성가족부의 설치를 필두로 여성할당제, 임산부 전용석, 생리휴가 등 여성정책의 수립은 약자에 대한 배려로 수용되어져 왔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 여성정책을 특정 집단에 대한 특혜라고 주장하는 남성들의 집단적 반발은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물론이고 그동안 여성에게 호의적인 온정적 성차별주의를 내재한 남성들이 가세한 집단적인 목소리인가에 대해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다수 남성들은 여성을 비하 내지는 혐오하는 일베식의 적대적 성차별주의와 동일시하는 데에 반감을 가진다. 그럼에도 이대남으로 지칭되는 일반 남성이 보이는 여성정책에 대한 반발은 온정적 성차별주의가 쇠퇴하고,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부활하는 신호탄인가? 혹은 여성정책에 대한 반대는 남성이 피해자 의식을 경유해 기존 일베식의 적대적 성차별주의와 동일한 작동 메커니즘으로 수렴되는 것인가?
이에 본 연구는 적대적 성차별주의와 온정적 성차별주의가 피해자 의식을 경유해 여성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탐색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전통적인 사회구조적 피해자와 대비해 최근 등장하고 있는 피해자 의식에 대해 살펴보고, 경쟁적 피해자 의식이 지배질서와 갖는 관계와 정치태도와의 관련성을 알아보았다. 다음으로 정치태도나 투표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 양가적 성차별주의와 여성정책과의 관련성을 살펴본 후, ‘양가적 성차별주의-피해자 의식-여성정책’를 종합한 모형을 구성하였다. 해당 모형을 통해 피해자 의식이 성차별주의와 여성정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남성과 여성을 비교하였다. 이를 종합하여, 일반 남성 피해자 의식을 조장하고 있는 남성 역차별 담론의 원리를 파악하고, 나아가 여성정책을 둘러싼 젠더갈등을 전망하고자 했다.
II. 이론적 배경
피해자는 정치의 영역이다. 불의에서 비롯된 피해는 정의(justice)의 문제이고, 피해자에 대한 합당한 권리를 인정하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피해자에 대해 관심은 범죄와 관련되어서이고, 주된 담론은 보수의 영역이었다. 보수정치는 가해자(악인)에게 피해의 책임을 묻고 응징을 하는 것이 정의로운 희생자를 기리는 가장 옳은 방법으로 간주했다(McEvoy & McConnachie, 2012). 이를 토대로 한 처벌 강화 전략은 지배질서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대중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는데 효과적인 수단이었다(Garland, 2001; 민가영, 2022). 전두환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무질서를 야기하고 서민경제를 침해하는 조직 폭력배를 근절을 목표로 내세웠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의 척결을 목표로 내세운 “4대 악과의 전쟁”을, 윤석열 정부에서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기에 이른다. 보수정권의 집권 때마다 등장하는 사회악과의 전쟁은 피해자의 권리보다는 기득권 보수정치에 해결사 이미지를 부여하고,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이었다.
초기 피해자 연구는 개별 구성원이 받는 피해나 손실과 같은 개인적 차원에 머무른다는 한계가 제기되면서, 사회구조적 차원에서 피해자를 다루는 연구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사회구조적 피해자 연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의 열세에 있는 계급, 인종, 성별, 세대 등이 차별의 대상으로 개발되어 왔다고 주장한다. 차별은 경제적 분배를 넘어서 상대방의 정체성에 대한 부인과 불인정, 사회적 배제와 무시로 이어진다. 이로 인한 고통은 각 개인의 정서적인 욕구나 도덕적 판단 능력, 고유한 개성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에 당사자는 자신에 대한 긍정적 관계 형성, 자기 정체성 형성에 심각한 장애를 불러일으킨다(프레이저·호네트, 2013: 14). 이는 보편적 인간의 조건에 대한 문제이므로 사회구조적 피해자를 위한 재분배와 동등한 권리의 자격자로서의 인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차이에 관계없이 무시와 모욕을 받지 않고 기회와 권리, 권력을 누구나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라는 주장 아래 진보정치는 노동자, 여성, 유색인종, 난민들을 자신들의 지지 세력으로 흡수했다(영, 2017).
그런데 문제는 정작 사회구조적 피해자들은 자신의 불만이나 불편함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를 명확히 정의하지 못하며, 따라서 정형화된 정치적 요구로 전환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부르디외, 2002: 1483; 프레이저·호네트, 2013). 오히려 피해자는 부정적 경험을 다른 요인으로 귀착시킨다. 예컨대, 빈민은 경제적 결핍으로 인한 고통을 낮은 학력이나 성실함의 결핍과 같은 내부에서 원인을 찾고 불평등을 정당화하려고 한다(Jost et al., 2004). 여기서 유능한 정치 전략가는 피해를 사회구조적 문제로 프레임하고, 하나의 정체성 집단으로써 피해자 의식을 불어넣는다. 피해자 의식은 수동적 위치가 아닌 불의한 지배질서에 저항하는 정치적 주체로 변모하는데 결정적이다(Tsutsui, 2006; Humphrey, 2010; Taylor & Leitz, 2010). 피해자 의식이 단지 개인의 부정적 경험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불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선 감정적 고통을 부각해야 한다. 고통의 감정성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취약한 인간의 조건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정치이념에 상관없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는 기제다. 피해자의 고통, 취약성에 대한 정의적 주장은 피해자를 넘어서 이에 공감하는 정치집단을 형성한다(파생·레스만, 2016). 동시에 부도덕한 기득권과 정책에 분노하고 단죄하고자 하는 정치 참여를 이끌어낸다.
80년대에서 90년대 후반까지 진보정치와 함께 성장한 여성운동은 이러한 피해자 공식에 터해 있다. 남성 가해자, 여성 피해자라는 등식 아래서 여성운동은 제도개선과 관련된 규범적 논의가 주를 이루었다(이재경·김경희, 2012; 배은경. 2016).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됐고, 1998년 여성특별위원회가 설치됐다. 군가산점제는 1999년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내려졌다. 2005년 민법 개정에 따라 호주제는 폐지됐다(이하늬, 2018). 그러나 2000년대에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과는 분리하여 독자적 노선을 걷기 시작한 여성운동은 여성을 피해자로 인정하는 소극적 조치로만은 불충분하며, 차별의 결과를 해소하고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우대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적극적 차별개선을 위해선 교육기회, 채용, 의사결정직에 있어 여성의 비중을 높여 대표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마경희, 2007; 박경순, 2008). 또한 성폭력특례법이 제정됐으나, 여전히 남성 중심적 시각을 견지하였던 성폭력 범죄는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었다. 이에 남성의 시각과 언어로 구성되어왔던 '객관성'을 해체하고, 성폭력을 여성의 시각에서 재구성한다는 “피해자 중심주의(victim-centered approach)”를 선언했다. 성폭력은 "피해자의 관점에서 판단된 모든 종류의 성적 자율권 침해"로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피해자 중심주의는 공동체가 피해자의 말을 경험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정희진, 2020; 김한상, 2023). 그러나 현재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 절대주의”로 오인 받으며, 피해자에게 도덕적 특권을 부여한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2010년 중반부터 한국사회에서 젠더갈등의 축이 전환되면서 갈등 양상이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전의 젠더갈등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저항이 핵심이었던데 반해, 최근 젠더갈등은 사회적 기회를 둘러싸고 확산되는 추세다. 남성들이 군복무의 의무를 짊어지는 동안 여성들은 스펙을 쌓으며 더 나은 기회를 누린다는 것이 대표적인 여성의 무임승차론이다, 또한 여성할당제는 경쟁을 통해 실력으로 차지할 수 있던 일자리는 빼앗는다는 논리가 그것이다. 젠더갈등은 군복무나 여성할당제와 같은 사회적 기회를 넘어 개인의 일상 영역으로 확대되어 나타나는 추세다(김기동 외, 2020). 남성 사이에서는 임산부전용석, 생리휴가, 여성전용주차구역, 여성전용아파트 등도 돌봄이나 배려가 아닌 특혜라는 보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기저에는 성은 사회적 약자로 자리매김하며 지속적으로 권리를 신장해 왔는데, 이제는 남성이 모든 곳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인다는 피해자 의식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석승혜·김남옥, 2019).
사실 남성의 피해자 의식은 역사적으로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과거에도 미국 백인 중산층 남성은 복지혜택을 받는 이들을 약탈자로 간주하며, “중산층 피해자화 담론”을 촉발했다(Banet-Weiser, 2021; 민가영, 2022). 2017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는 백인 노동자 남성들에게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뺏고, 이로 인해 백인 노동자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피해자 의식을 장려했다. 그리고 위대한 미국을 재건함으로써 사회구조적 약자와 동일한 위치를 점유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음으로써 백인 노동자를 결집시켰다. 유럽 사회에서도 백인, 유럽인, 남성들이 우월함을 주장하는 대신 자신들이 반인종차별주의, 페미니즘, 난민수용정책이 가져다준 역차별의 피해자임을 주장한다.
지금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특권적 범주의 피해자 의식과 사회구조적 피해 주장의 차이점은 피해를 “다른 사회적 약자”와의 관계에서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민가영, 2022). 그렇다보니 대립되는 정체성 사이에는 상대적으로 더 큰 피해자 지위를 획득하기 위한 경쟁의 양상을 띠게 된다. 이러한 “경쟁적 피해자 의식(competitive victimhood)“은 역오명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집단의 피해자성을 강조하고, 이를 외집단의 피해자성과 대결시키는 경쟁이다(Noor et al., 2012;2017, Sullivan et al., 2012). 경쟁은 단순히 자기 집단의 고통이 상대 집단의 고통보다 크다는 주장을 넘어서 상대방의 부당함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함축한다(Noor et al., 2017: 124). 현재 젊은 남성들의 피해는 양성 간 공정성이 훼손됨으로써 발생했다는 것인데, 이같은 도덕적 문제 제기를 통해 피해를 직접 경험하지 않는 남성 구성원들까지도 동일한 정체성 집단으로 확산해간다. 이대남 현상은 남성 피해자 의식은 일부 남성에 한정된 감정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021년 4월 7일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20대 남성의 72.5%가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인 예시다(이지혜, 2021).
여기서 주목할 점은 경쟁적으로 획득한 전략적 피해자의 위치는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오히려 불평등을 지우면서 기존의 권력 위계를 재생산하기 위한 방편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략적 피해자 의식은 권력관계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지위에 속한 집단의 구성원들에게서 빈번히 나타난다(Sullivan et al., 2012: 779).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구조적 불평등으로 인한 피해자를 단순한 개인의 능력이나 상황의 문제로 치환해 버린다. 구조적 피해자를 탈맥락화 함으로써 기존의 권력 위계를 재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남성들에게 널리 공유되고 있는 “성차별은 환상이고 페미니즘은 피해의식이다”라는 인식은 이러한 맥락이다. 여성의 피해는 부모세대의 여성의 이야기이지 지금 젊은 여성들의 낮은 지위는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아닌 개별 역량의 부족에 의해서이다. 그들의 논리에 의하면 여성을 사회구조적 피해자로 규정하고 시행되는 여성정책은 억울한 남성 피해자를 양산하는 불공정한 정책이다. 육아휴직, 생리휴가, 여성할당제, 여성전용아파트는 배려가 아닌 특혜라고 보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진보정치에서 여성은 사회구조적 피해자 의식을 확장시켜왔으며, 남성은 불평등한 사회구조로부터 젊은 여성을 탈맥락화하며, 자신들이 여성정책으로 인한 새로운 피해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같은 경쟁적 피해자 의식은 남녀가 각자의 피해를 강조한 채, 여성정책에 있어서 첨예한 대립을 이어갈 수 있음을 예고한다.
부모 세대의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사회구조의 직접적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피해자 의식은 사회적 맥락에 의해 스스로를 정의하는 방식에 따라 구성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회구조적 약자의 위치를 점유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감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살아온 여성들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정의하지 않는다. 전통적 가정의 “어머니”, 산업화 시기의 “공순이”로 호명되던 여성들은 자신의 희생을 피해로 규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부장주의를 내면화한 여성들은 스스로 가부장적 지배질서의 유지에 기여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가부장제의 영향권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생물학적 성이나 젠더 정체성에 상관없이 누구든 사회화 과정 중 성차별주의적인 태도를 체득할 수 있고, 그것을 근간으로 정치 태도 혹은 정책 선호를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피해자 의식이 정치 태도에 선행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성차별주의는 남성에 비해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열등성을 기반으로 형성되어 왔다(Glick & Fiske, 2001). 열등성은 실제라기보다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이며, 상대방에게 편견과 고정관념을 투사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그런데 성차별주의는 항상 동질적으로 나타나는 게 아니라, 양가적 형태를 지닌다. 양가적 성차별주의(ambivalent sexism)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한 글릭과 피스케(Glick & Fiske 1996)는 성차별주의를 ‘적대적 성차별주의(hostile sexism)’와 ‘온정적 성차별주의(benevolent sexism)’라는 두 개의 태도로 나누어 설명한다.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남성 우월성을 바탕으로 전통적인 성 역할을 강조하고,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와 착취를 정당화한다. 반면,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남녀 사이에 상호보완적 역할을 인정하지만, 여전히 남성의 보호가 필요한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로 파악한다(Glick & Fiske, 1996; 안상수 외, 2005).
좀 더 구체적으로, 양가적 성차별주의는 가부장주의(paternalism), 젠더 분화(gender differentiation), 그리고 이성애(heterosexuality)라고 하는 세 가지 차원에서 서로 상반된 태도를 보인다(Glick and Fiske, 1996: 492).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남성의 우월적 지배를 지지하는 ‘지배적 가부장주의(dominative paternalism)’, 남성과 여성 간 신체적 차이에 기초하여 사회적 역할에서 엄격한 성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경쟁적 성분화(competitive gender differentiation)”이다. 마지막으로 성애적 관계에서는 남성이 구애자이고 여성이 선택권을 쥐게 되는 권력의 역전 상황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내재한 “적대적 이성애(hostile heterosexuality)”의 태도를 가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인으로 바라보지 않는 지배적 가부장주의와는 달리, “보호적 가부장주의(protective paternalism)”는 남성에게 아내, 어머니와 같은 여성은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므로 남성이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태도를 가진다. 젠더분화에 대해서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나 섬세함과 같은 능력이 여성에게 더 발달해 있으므로 여성이 남성을 보완할 수 있다는 ‘보완적 젠더분화(complementary gender differentiation)’의 태도를 가지며, 이성애에 있어서도 상호 친밀성에 기반한 “친밀한 이성애”의 태도를 견지한다.
적대적 성차별주의와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이러한 차이로 인해 여성의 활동에 대해 서로 다른 태도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높을 경우, 여성의 경제활동이 남성의 기득권을 침해한다고 보며, 여성의 이익은 곧 남성의 손해라고 인식한다. 이에 따라 기업의 채용과정에서 경쟁력 있는 여성 지원자보다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을 더 선호하거나(Heilman et al., 2004), 여성의 고유한 특성이 직장생활에 적합하지 않으며, 직장을 다니는 여성은 육아와 가정생활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등의 전통적 성역할에 대한 편견을 고수한다(Brescoll & Uhlmann, 2005; Christopher & Wojda, 2008). 이와 상반되게 온정적 성차별주의가 높을 경우, 여성의 재생산 권리. 동일임금, 육아휴직, 여성할당제 등에 대해 여성정책에 동의하는 경향을 보인다(Gothreau et al., 2022).
그러나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표면적으로 적대적 성차별주의에 비해 여성에 대해 긍정적 태도를 가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남성우위의 인식을 가진다. 때문에 남녀평등의 이슈에 있어서 일관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가령, 여성할당제에는 동의하지만 남성이 점유하고 있는 좋은 직종에 대해서는 여성할당제를 선호하지 않았다, 또 여성정책 중에서도 여성답게 대우하거나 보호하는 정책에 대해서만 선별적으로 긍정적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Hideg & Ferris, 2016; Gothreau et al., 2022). 정치적 영역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타났다.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 정치지도자를 선호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지만(안미영 외, 2005),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후보 선택에서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적대적 성차별주의와 마찬가지로 힐러리 클린터에 대한 부정적 태도를 강화하는데 영향을 주었다(Bock et al., 2017; Ratliff et al., 2019). 이러한 결과는 온정적 성차별주의가 표면적으로는 남녀평등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투사하며, 전통적인 성역할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김기동 외, 2020).
물론 성차별적 인식은 남성에게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사회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남성과 여성의 엄격한 성분화 속에 여성은 자기를 실현하는 남성과 달리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 타자화된 집단으로 존재했다. 한국사회에서도 지금의 부모세대는 ‘장남을 위해 여자 형제들이 희생’할 것을 공공연히 강요받았다(심귀연, 2010).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억압받는 이들 여성들이 기성체제를 비판하는 주체가 되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기성체제를 옹호하며 개혁에 반대하는 편에 선다. 체계정당화 이론(system justification theory)에 따르면, 어떤 체제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어 온 것은 위로부터의 압력만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자발적인 정당화가 이루어진다고 본다(Jost & Banaji, 1994). 그 이유는 사회적 약자들은 사회경제적으로 무력함(powerless)과 불확실성(uncertainty)을 경험하기 때문에, 현재 상태를 합리하고 방어하려고 한다(Van der Toorn et al., 2015). 이에 따라 부모세대의 여성들은 자발적으로 지배문화를 정당화하며, 지금의 젠더갈등에 대해 “이기적 젊은 여성들로 인해 남성이 피해를 본다”는 남성 중심의 시각을 물려 받는다
여성운동은 이러한 체계정당화에 맞서 여성들에게 사회구조적 피해자임을 자각하도록 권유해왔다. 여성 피해자 의식을 통해 가부장적 사회구조에 저항하고, 개혁의 주체로 서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로 지금의 젊은 여성은 가부장제의 억압으로부터 가장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이전 세대의 여성운동과는 선을 그으며 급진적 페미니즘을 주장하고 있다. 부모세대의 여성을 가부장제의 부역자로 지칭하며, 생물학적 여성과 여성의 피해자성을 중심에 두는 형국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피해자 의식을 둘러싸고 여성 내부에는 다양한 층위의 분열의 이루어지고, 여성정책에 대해 일치된 입장을 가지기 어려울 수 있다.
III. 연구 방법론
본 자료는 전국 20세∼65세의 남녀를 대상으로 2021년 3월 10일∼19일(10일) 동안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온라인을 통해 수집된 자료 중 결측치를 제외하고, 총 1,018명의 응답 자료를 분석대상으로 하였다. 응답자의 주요 인구사회학적 특성은 <표 1>과 같다.
양가적 성차별주의는 그릭과 피스크(Glick & Fiske, 1996)의 척도를 한국에 맞도록 개발한 안상수·김혜숙·안미영(2005)의 한국형 양가적 성차별주의 척도(K-ASI)를 사용하였다. 양가적 성차별주의는 크게 적대적 성차별주의(지배적 부성주의, 경쟁적 성역할 분화, 적대적 이성애)와 온정적 성차별주의(보호적 부성주의, 보완적 성역할 분화, 친밀한 이성애)로 구분된다.
하위문항인 지배적 부성주의는 “집의 소유주는 남자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 “모임의 리더는 남성이 맡는 것이 좋다”를 포함한 총 4문항, 경쟁적 성분화는 “요즘 여성 권익을 옹호하는 발언은 공평을 넘어서서 지나치다”를 포함한 5문항, 적대적 이성애는 “여자는 성공을 위해서 자신의 외모나 신체를 이용한다”를 포함한 4문항, 보호적 부성주의는 “신체 상 위험부담이 큰 일은 여성보다 남성이 감당해야 한다”를 포함한 4문항, 보완적 성분화는 “여성은 가정을 돌보는 섬세함을 지니고 있다”를 포함한 4문항, 친밀한 이성애는 “남성이라면 사랑하는 여자가 있어야 한다”의 4문항으로 구성하였으며, 각 문항에 7점 척도로 응답하도록 했다.
집단적 피해의식은 피해자화(victimization)하는 사회적 과정에서 발생한다. 개인적 수준에서 경험되는 피해를 집단적 수준의 피해로 인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피해 경험이 고의적이라 인지하고, 부당하고 부도덕한 행위로서 인지, 개인이 예방할 수 없는 것으로 인지하며, 심각하고 지속적인 결과로 인지하는 과정을 거친다(Schori-Eyal et al., 2014). 이러한 집단적 피해자 의식에 기초해 한국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피해자 의식의 문항을 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여성의 피해자 의식은 “동일한 조건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좋은 자리에 취업하기 유리하다”, “여성이 남성보다 교육수준이 높더라도 승진 순위에서 밀린다”, “성희롱으로 신고하면 여자만 손해다”, “가족 제도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성취하는데 불리하게 작용한다”, “법제도는 성 문제에 있어서 남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우리 사회는 남성보다 여성의 낮은 소득을 고의적으로 이용한다“의 6문항으로 구성했다. 남성의 피해자 의식은 “우리 사회는 남성에게는 더 많은 의무와 역할을 요구한다”, “여성만을 위한 정부 기구나 제도로 인해 남성들이 더 큰 피해를 본다”, “성평등 정책은 여성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유리하다”의 3문항으로 구성했다. 해당 문항은 각각 7점 척도로 응답하도록 했다.
연구모형의 검증은 AMOS 23을 사용하였고, 구조방정식 2단계 접근법(Anderson & Gerbing, 1988)에 따라 실시하였다. 먼저, 측정문항이 잠재변수를 잘 구인하고 있는지 측정 모형에 대한 확인적 요인분석을 실시하였고, 그런 다음 잠재변수 간의 관계를 검증하였다. 적대적 성차별주의와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각각 하위 척도를 총합하여 측정변수로 사용하였으며, 모수추정은 최대우도 추정법(maximum likelihood estimation)을 사용하였다.
모형의 적합도는 상대적 적합도 지수인 CFI(comparative fit index)와 TLI(tucker-lewis index), 절대적 적합도 지수인 RMSEA(root mean square error of approximation)와 SRMR(standardized root mean square residual)을 확인하였다. CFI와 TLI는 .90 이상(Bentler, 1990), RMSEA는 .08 이하, SRMR은 .10 이하(MacCallum et al., 1996)를 기준으로 모형 적합도를 판단하였다. 간접효과 검증을 위해서는 부트스트랩(bootstrap)을 1,000회 이상 실시하였으며(Shrout & Bolger, 2002), 신뢰구간 95% 수준에서 유의성을 확인했다.
각 변인 간의 구조적 관계의 성별 차이를 검증하기 위해 다중집단 분석을 실시하였다. 다중집단 분석에서는 형태동일성(configural invariance), 측정동일성(metric invariance)이 성립하는지 검증하였다. 남녀 집단의 동일성을 확인한 후, 각 집단 내에서 간접경로가 유의한지 검증하고자 부트스트랩(bootstrap)을 실시하였고, 간접경로의 집단 간 차이를 확인하기 위해 조절된 매개효과 검정을 실시하였다.
IV. 분석 결과
구조모형 검증에 앞서, 37개의 측정 변수들이 적대적 성차별주의, 온정적 성차별주의, 여성 피해자 의식, 남성 피해자 의식, 여성정책의 5개 잠재 변수들을 적절하게 구인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확인적 요인분석을 실시하였다. 문항 중 요인부하량이 낮은 항목으로, 적대적 성차별주의 중 ‘지배적 부성주의(4문항)’와 남성 피해의식 중 ‘우리 사회는 남성에게는 더 많은 의무와 역할을 요구한다(1문항)’, 여성정책 중 육아휴직, 임산부전용석(2문항)을 제거하고, 최종적으로 선별된 30개 문항으로 확인적 요인분석을 실시했다.
요인분석 결과, 적대적 성차별주의(Cronbach's α=.784), 온정적 성차별주의(Cronbach's α=.776), 여성 피해자 의식(Cronbach's α=.872), 남성 피해자 의식(Cronbach's α=.885), 여성정책(Cronbach's α=.858)의 5개 잠재 변수가 구성되었으며, 이들 변수들 사이의 상관관계는 <표 2>와 같다.
구체적으로,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온정적 성차별주의(r=.377. p<.001), 남성 피해자 의식(r=.810. p<.001), 여성정책(r=.598. p<.001)과 정적 상관을 나타내며, 여성 피해자 의식(r=-.530. p<.001)과는 정적 상관을 나타냈다.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 피해자 의식, 여성정책과의 상관이 유의미하지 않았으나, 남성 피해자 의식(r=.288. p<.001)과는 정적 상관을 보였다. 여성피해자 의식은 남성 피해자 의식(r=-.500. p<.001)과 여성정책(r=-.464. p<.001)과는 모두 부적 상관관계를 나타냈다. 남성 피해자 의식은 여성정책(r=.576. p<.001)과 정적 상관이 유의하게 나타났다.
다음으로 문항의 타당도 및 신뢰를 알아보았으며, 우선 집중타당도(convergent validity)를 확인하고자 평균분산추출(AVE; average variance extracted)과 개념 신뢰도(CR; construct reliability)를 검토하였다. AVE는 0.5 이상일 때(Fornell & Larcker, 1981), CR은 0.7 이상일 때(Anderson & Gerbing, 1988; Hu & Bentler, 1999) 측정 변수가 잠재 변수와 적절한 관련성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한다. 본 연구에서는 적대적 성차별주의 AVE=.662, CR=.794, 온정적 성차별주의 AVE=.536, CR=.776으로 양호하였다. 여성 피해자 의식은 AVE=.535, CR=.872였고, 남성 피해자 의식 AVE=.794, CR=.885, 여성정책 AVE=.673, CR=.858로 모두 기준에 부합하였다.
판별타당도(discriminant validity)를 확인하기 위해 AVE 값과 각 요인 간의 상관을 비교하였으며, 이때 AVE 값이 상관계수의 제곱 값보다 클 경우 판별타당도가 양호한 것으로 판단하였다(Fornell & Larcker, 1981). AVE 값의 제곱근 값과 각 요인 간 상관을 <표 2>에 제시하였다. 적대적 성차별주의, 온정적 성차별주의, 여성 피해자 의식, 남성 피해자 의식, 여성정책의 √AVE값은 모든 요인 간 상관보다 크게 나타나 판별타당도가 양호하였다.
성별에 따라 구조 모형의 경로에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구조방정식 모형의 다중집단매개(multiple group mediation) 분석을 실시하였다. 먼저 집단 간에 요인을 측정하는 지표변수들이 서로 같고, 요인 사이의 관계가 같은지 확인하기 위하여 형태동일성 검증을 실시하였다. 모형의 추정 결과, 모형 적합도는 χ2(df=186, p<.001)=615.141, CFI=.937, RMSEA=.05(90%, p<.01), SRMR=.089로 나타나, 구조 모형의 남녀 집단 간 형태동일성이 성립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다음으로 측정변수들의 잠재변수에 대한 요인 부하를 집단 간에 동일하게 설정하는 측정단위동일성 모형을 검증하였다. 이는 남녀집단에서 형태동일성이 확인된 기저모형의 CFI값과 측정변수들의 요인부하가 집단 간에 서로 같다는 제약을 더한 측정동일성 모형의 CFI값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한지 검증함으로써 확인하였다. 기저모형과 측정동일성 모형의 CFI 차이값이 .006(p<.01)으로 유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완전 측정동일성이 성립하는 것으로 보았다.
마지막으로 간접효과의 남녀 집단 간 차이를 검증하였다. 먼저 각 집단 별로 간접경로가 유의한지 검증하고자 경로제약을 설정하지 않은 측정동일성 모형에 부트스트랩(bootstrap)을 실시하였고, 간접경로의 집단 간 차이를 Wald 검정으로 검증하였다(김수영, 2016). 그 결과, 남성 집단에서는 적대적 성차별주의와 여성정책 간의 관계를 남성 피해자 의식이 매개하는 반면(β=.615, CI[0.261, 1.016]), 여성은 매개효과가 유의하지 않았다(β=.094, CI[-0.201, 0.365]). 그리고 두 경로 간에는 집단 간 차이가 유의하였다(적대적 성차별주의→남성 피해자 의식→여성정책, B=0.052*, p<.05). 남성 집단에서는 적대적 성차별주의와 여성정책 간의 관계를 여성 성 피해자 의식이 매개효과는 유의하지 않은 반면(β=-.013, CI[-0.16, 0.092]), 여성 집단은 매개효과가 유의하게 나타났다(β=.147, CI[0.049, 0.269]). 그리고 두 경로 간에는 집단 간 차이가 유의하였다(적대적 성차별주의→여성 피해자 의식→여성정책, B=-0.16*, p<.05).
Model | NFI | RFI | IFI | TLI | CFI | CFI delta |
---|---|---|---|---|---|---|
Delta1 | Rho1 | Delta2 | Rho2 | |||
Unconstrained | 0.881 | 0.848 | 0.905 | 0.878 | 0.904 | |
Measurement weights | 0.873 | 0.847 | 0.899 | 0.877 | 0.898 | 0.006 |
한편, 남성의 경우 온정적 성차별주의와 여성정책 간에 여성 피해자 의식의 매개효과는 유의미하지 않았지만(β=.017, CI[-0.126, 0.192]), 여성의 경우 매개효과가 유의미했다(β=-.095, CI[-0.235, -0.022]). 그러나 온정적 성차별주의 →여성 피해자 의식→여성정책의 경로는 남녀 간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온정적 성차별주의와 여성정책 간에 남성 피해자 의식이 매개효과는 남녀 모두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간접효과 분석 전에, 남녀 집단별 각 잠재변수 간 경로를 비교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여기서 굵은 선은 유의미하게 나타난 경로이며, 그렇지 못한 경로는 점선으로 표시했다. 간략히 정리하자면, 남성의 경우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정책에 직접적으로 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정책에 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성의 경우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정책에 부적인 영향을 미치는 반면, 온정적 성차별주의만 여성정책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녀 집단의 성차별주의가 피해자 의식을 경유해 여성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면, 남성의 경우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남성 피해자 의식을 통해 여성정책에 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로만 유의미하게 나타났다. 즉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높을수록 남성 피해자 의식을 통해 여성정책은 특혜라는 태도가 유의미하게 높아진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여성 피해자 의식을 경유해 여성정책에 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었으며,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 피해자 의식을 경유해 여성정책에 부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여성의 경우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높을수록 여성 피해자 의식을 낮추어 여성정책에 대해서는 남성과 마찬가지로 특혜라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반대로 온정적 성차별주의가 높을수록 여성 피해자 의식을 고양하며, 여성정책을 배려라는 태도를 가지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남녀 집단 간 차이가 유의미한 결과인지 확인하기 위채 집단간 차이 검증을 실시한 결과, 첫째, “적대적 성차별주의→여성피해자 의식→여성정책”의 경로는 남녀 간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은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여성정책에 미치는 영향에서 여성 피해자 의식은 유의미하지 않았지만, 여성은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여성정책에 미치는 영향에서 여성 피해자 의식이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둘째, “적대적 성차별주의→남성 피해자 의식→여성정책”의 경로에서도 남녀간 유의한 차이가 확인되었다. 남성의 경우,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여성정책에 미치는 영향에서 남성 피해자 의식은 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반면, 여성의 경우, 남성 피해의식은 적대적 성차별주의와 여성정책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V. 결론 및 제언
젠더갈등이 피해자 의식을 경쟁적으로 구축하며 여성정책에 대한 첨예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본 연구는 성차별주의가 남성 피해자 의식과 여성 피해자 의식을 경유해 여성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했다. 특히 성차별주의가 남성 우위의 적대적 성차별주의에서 남녀 사이에 상호보완적 역할을 중시하는 온정적 성차별주의가 확산되었다는 기성의 담론을 수용하여, 성차별주의를 양가적 성차별주의로 구분하여 피해자 의식과 여성정책과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차별주의와 여성정책 간의 직접 경로는 기존 연구의 결과와 유사하다. 남성집단과 여성집단 모두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높을수록 여성정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아진다. 즉 여성할당제, 생리휴가, 여성전용아파트와 같은 여성정책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가 아닌 특혜라고 본다는 것이다.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남녀집단 간 차이가 나타난다. 여성의 경우,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정책에 유의미한 영향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남성의 경우 온정적 성차별주의가 높을수록 여성정책을 배려라고 인식한다. 기성의 페미니즘 연구에서 온정적 성차별주의 역시 남성적 관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정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둘째, 피해자 의식이 적대적 성차별주의와 여성정책을 매개하는 모델을 살펴보면, “적대적 성차별주의 → 피해자 의식 → 여성정책”으로 가는 경로는 남녀 집단 간 유의미한 차이를 보였다. 남성의 경우, 남성 피해자 의식은 적대적 성차별주의와 여성정책을 매개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여성 피해자 의식은 유의미한 매개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남성들에게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남성 피해자 의식을 통해서만 여성정책에 대한 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반면, 여성의 경우, 여성 피해자 의식이 적대적 성차별주의와 여성정책을 매개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남성 피해자 의식은 유의미한 매개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즉,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높아질수록 여성 피해자 의식을 낮추어서 여성정책을 특혜로 보는 부정적 인식이 높아진다. 정리하자면, 적대적 성차별주의 하에서 남성은 남성 피해자 의식이 높아짐으로써, 여성은 여성 피해자 의식이 낮아짐으로써 여성정책을 특혜라고 인식하며, 남성과 여성은 여성정책을 반대하는 동일한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셋째, 온정적 성차별주의와 여성정책과의 관계에서 피해자 의식은 남녀 집단 간 유의미한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남성의 경우,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남성 피해자 의식 혹은 여성 피해자 의식을 통해 여성정책에 미치는 영향은 모두 유의미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 피해자 의식을 통해 여성정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는 온정적 성차별주의가 높은 여성일수록 여성 피해자 의식이 높아지며, 여성정책을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배려라는 인식이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이상의 결과는 사회적으로 학습된 성차별주의 하에서 피해자 의식은 여성정책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남성과 여성이 피해자 의식을 경쟁적으로 구축하고 있는 상황에서,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피해를 입은 자가 오히려 포용성이 낮아진다는 “피해의 역설”이 발견된다. 이는 여성의 태도와 관련해서인데, 남성 중심의 문화에서 적대적 성차별주의는 남성에 비해 여성을 열등하고 부차적으로 보는 입장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형성된다. 이러한 적대적 성차별주의를 내면화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여성이 소득과 일자리 기회 등에서 피해를 본다는 ‘여성 피해자 의식’을 부정하며, 여성정책을 반대하는 입장에 선다. 이는 여성 내부의 분열을 초래하며, 정치적으로도 여성을 동일한 이념성향을 가진 정체성 집단으로 묶어내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남녀간 여성정책에 대한 상반된 입장은 상이한 성차별주의 가치와 관련된다고 볼 수 있다. 남성의 경우, 여성정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남성 피해자 의식은 적대적 성차별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 피해자 의식에 정적 영향을 미치지만, 여성정책에 대한 긍정적 인식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이같은 사실은 남성의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의 역할과 관련되거나 자신과 경쟁적 관계에 놓이지 않는 여성정책에 대해 선별적으로 찬성한다는 기존 연구와 유사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반면 여성의 경우, 여성정책에 긍정적 인식을 강화하는 여성 피해자 의식은 온정적 성차별주의와 밀접히 관련된다. 페미니즘에서 온정적 성차별주의 역시 은폐된 여성차별의 원리를 내포한다고 지적함에도 불구하고, 적대적 성차별주의가 높은 여성은 여성 피해자 의식을 낮추어 여성정책에 부정적인 것과 달리, 온정적 성차별주의는 여성 피해자 의식을 높이며 여성정책에 대한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여성정책에 대한 남녀 간 차이는 성차별주의 가치의 수용에 있어 성별 간 지체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앞서 “보통 남성이 일베화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되짚어본다면, 우리가 일베의 언어에서 남녀 사이의 권력 관계에 대한 의식은 이같은 남녀 사이에 적대적 관계를 상정하고 있으며, 남녀평등의 논리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이러한 적대적 성차별주의 속에서 여성정책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이 나오며, 현재 여성정책은 과도하게 신장시켜온 여성 권한의 확장이며, 불공정성의 근원인 것이다. 보통남성의 일베화라고 한다면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욕설과 혐오의 문법에 있는 게 아니라, 그 내면에는 진보된 사회로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적대적 성차별주의를 고수하고자 하는 인식과 관련된다. 이는 “이미 남녀가 평등한 세상”이라는 인식 하에서 역차별 담론이 생성된 것이 아니라, 남녀평등에 대한 반발, 남성의 특권에 대한 상실에 대한 반발과 관련되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피해자 의식을 통해 보다 정의로운 사회로 변화할 수 있다는 낙관적 기대는 어렵다고 전망할 수 있다. 과거에만 하더라도 피해자의 목소리는 불의에 대한 저항이며, 이들을 위한 정책은 보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왔다. 그러나 남녀가 경쟁적 피해자 의식은 상대방의 부당함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함축한다. 그러한 이유로 단순한 정치적 갈등을 넘어서 상대방에 대한 혐오와 폭력을 정당화한다(Horowitz, 1975). 이는 피해자에게 권능을 부여해 정치적 변화를 이끌었던 방식이 유효하지 않다는 의미다. 더욱이 젠더갈등이 유사한 피해자 의식을 공유한 정체성 갈등이라는 점은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있는 “나눌 수 있는 갈등”의 형태가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적 균열을 심화할 것으로 예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