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며
산업혁명기인 1860년 영국 런던에서 노동자를 싣고 도심을 달리면서 시작된 지하철은 근대화의 상징이자 효율과 합리의 결집체였다. 최초의 지하철이 등장한 지 114년 후인 1974년 8월, 서울에의 땅 밑에도 새로운 길이 열렸다. 바로 서울지하철 1호선이다. 당시 이를 두고 언론은 교통혁명이라는 수식을 아끼지 않았다. 포화 상태였던 당시 서울의 교통상황을 해결할 새로운 이동수단에 대한 기대감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는 80년대에 들어서 순환선인 2호선과 한강 남북을 교차하며 가로지르는 3, 4호선이 개통하면서 이루어진다. 이후 1995년에는 5호선, 1996년 7, 8호선, 2001년 6호선이 개통했으며, 2009년에는 민자 지하철 9호선이, 2017년과 2022년에는 우이신설선과 신림선이 개통했다. 이 밖에도 동북선과 서부선이 각각 2025년과 2026년 개통을 목표로 공사 중에 있다.
어떤 이들은 지하철에 대하여 기호와 숫자로 이루어진 거대한 쇳덩이로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단순히 이동이라는 사용 가치만 바라본다면 그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2022년 한국에서 지하철은 더이상 이동이라는 기능에 충실한 곳이 아닌 그 이상의 곳이 되었다. 특히 400개 이상의 지하철역은 해당 지역의 작은 중심지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역을 중심으로 형성한 역세권은 해당 지역의 ‘대표지’로서 기능한다. 이들은 지역민들에게는 소속감과 타 지역민들과 구별하는 역할을 하고, 타 지역민들에게는 이들 지역민을 타자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지하철 역만큼이나 문화자본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파트다.
아파트를 문화자본으로 주목한 선행연구에 따르면, 아파트는 포드주의 효율성 전파, 공동체 의식 약화, 지위 구별짓기 강화, 여론의 쏠림과 불안정, 공동체의 이익집단화 등 5가지의 특징을 지적했다(강준만, 2004). 특히 구별짓기 강화를 바라봄에 있어 이 연구에서 주장하는 ‘브랜드 분리’ 현상은 지하철역 개명 연구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파트는 지위 구별짓기 강화에 큰 역할을 했는데, 다양한 인종, 민족이 모여 사는 사회와는 달리 한국 사회에서는 사람들을 구별할 만한 기준이 상대적으로 약하며, “너도 하면 나도 하겠다”는 평등 욕망이 일부 계층의 구별짓기를 추종하는 결과로 나타난다. 동질화되고 획일화된 주거 체제인 아파트가 오히려 아파트간 구별짓기를 부추기고 있는데, ‘거주지 분리’와 더불어 ‘브랜드 분리’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광고에서 보듯 거주지뿐만 아니라, 아파트 브랜드로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려 한다. 아파트라고 해서 다 같은 아파트가 아니라는 것을 시위하려는 것처럼 ‘아파트’라는 이름조차 싫다는 듯 다른 이름을 쓰려는 시도는, 90년대 말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빌, ∼빌리지’ 등의 이름이 유행했고, ‘∼힐, ∼뷰, ∼파크’ 등이 뒤를 이었으며, ‘∼팰리스, ∼캐슬’을 지나 현재는 ‘∼움, ∼오’ 등이 등장했다.
공공 공간으로 지하철에 대한 선행연구는 공적공간으로서 지하철에 대해 주목한다(전규찬, 2008, 2009, 2010). 이 연구는 공적공간으로서 지하철에 대해 주목한다. 거대 수도의 중요한 인프라이자 도시생활의 공간 및 사회 토대로서 기능하는 것이 지하철이다. 지하철은 물리적으로 건축된 시설,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공간, 그리고 동시에 끊임없이 뭔가를 매개하는 미디어로서 대중들의 삶에 참여한다. 지하철 공간의 복잡성은 주로 자본의 입장에서 진행하는 지하 아케이드, 상가들로 인해 심해진다. 3호선 고속버스터미널역은 호텔을 비롯한 서구 소비공간과 바로 접속되어 있고, 2호선 삼성역은 무역센터와 복잡하고 세련된 아케이드들로 연결한다. 5호선 목동 오목교역과 현대백화점 사이에는 지하철에서 나온 대중들은 지상의 높다란 주상복합 아래로 끌려간다. 여기에는 대자본이 경영하는 백화점과 아케이드의 고급소비 공간이 있고, 입장하는 이들은 물신주의 회랑을 통해 포스트/탈현대 지하 초소비 공간으로의 통과의례를 체험한다. 좌우에 설치된 프레임들이 고가의 상품을 선전한다면, 천정에 설치된 모니터들은 대중들이 소비할 수 있는 것들을 홍보한다.
지하 내부 공간뿐만 아니라 지상 도시 공간 자체의 재구성 과정에도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을 하는데, 근처의 부동산 가격을 천정부지로 뛰게 한 요인 중 하나도 인근의 지하철역이다. 서울의 공간적 문맥에서 지하철역은 부동산과 뉴타운, 난개발과 깊이 연관이 있다.1) 구로공단이 아파트촌으로 변모한 것도, 역세권에 아파트 대단지가 조성되는 것도, 9호선 개통으로 9호선의 상징색인 ‘골드라인’이라는 것이 뜨는 것도 모두 지하철역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하철 역사 이름이 갖는 의미와 문화자본으로 작동하는 것에 대한 연구는 학계나 사회에 큰 의미가 있다. 인천지역 지하철역 이름을 파악한 선행연구도 있지만(박덕유, 2007), 유래를 조사하는 데 그치고 있어 이 연구가 의미가 있다.
이 연구의 목표는 지하철 역사 이름이 갖는 의미와 지역민들의 구별짓기 과정을 구체화한 경험의 수준에서 밝히는 것이다. 지하철 역사 이름은 개통 전에 제정되는 경우와 개통 후 개정되는 크게 두 경우가 있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일괄 행정으로 확정되는 경우와 해당 지역민과의 협의를 거쳐 확정되는 경우가 있는데, 후자의 경우는 지역민들이 지하철 역사 이름을 문화자본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확연히 드러난다. 개통 전보다는 개통 후 변경되는 사례에서 이러한 양상이 빈번하게 나타나는데, 각각의 사례는 큰 차원에서는 구별짓기에 따른 행동이지만 세세한 사례는 차이가 다르다. 따라서 지하철 역사 이름의 제·개정의 사례들을 분석하고 범주화시키는 것이 본 연구의 세부 목표라 할 수 있다. 세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하철 역사 이름을 제·개정하는 과정의 주체 그리고 역사 이름이 갖는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로 구분한다.
Ⅱ. 이론 배경 및 연구방법
문화자본은 문화 취향이 자본의 역할울 할 수 있다는 뜻으로 개인의 취향이 희소 가치를 획득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Bourdieu, 2005). 문화 취향이 자본의 역할을 한다는 것은 경제 자본이나 사회 자본과 마찬가지로 문화자본 역시 계급 재생산의 기제가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즉, 상류계층은 그들만의 고급 취향을 문화자본으로 삼아 자신들과 중하류 계층과 구별을 짓고, 계급을 재생산한다. 문화자본으로 작동 가능한 것들은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는 식생활, 다양한 옷을 입고 다니는 의생활, 클래식 음악을 듣고, 영화나 오페라를 보고, 책을 읽고,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 여가 생활, 우수한 학업성적을 얻거나 졸업장을 받는 학교 생활, 나아가 사는 주거 생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람들의 개인 취향과 문화자본 소비 경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계층과 계급 영향이 크다. 사람들은 상류층/하류층과 같은 계급의 위치와 진보냐 보수냐와 같은 이념 성향, 다양한 취향이 비슷할수록 사이가 더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취향의 차이가 출신, 직업, 정치 성향의 차이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를 두고 문화와 계급이 상동구조(相同構造)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정일준, 2005). 그러나 문화적 취향 혹은 문화 소비행태가 반드시 사회계급과 기계적이고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고상한 취미나 스포츠가 중산층에 의해 채택될 때 상류층은 이를 버림으로써 이러한 고상한 취미는 더이상 상류층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다. 역으로 하류층의 문화적 취향이 상류층에 전파될 수도 있다. 청바지는 과거 미국의 하류층 노동자들이 즐겨 입었지만 이제 명품 청바지의 경우 일부 상류층만 구입할 수 있는 아이템이 되었다. 이런 문화생활은 개인적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상류층의 과시적이고 차별적 의도가 담긴 상징적인 행위일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을 “구별짓기”라고 한다.
경제자본이나 사회자본은 계급의 영향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하지만 문화자본은 계급의 영향에서 자유롭고, 개인의 노력과 성향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계급에 따라 상징의 측면에서 사회 우위를 결정하고, 상층계급과 다른 취향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제와 차별을 행할 수 있는 체화된 반응을 유발하기도 한다(오지현·차영화·김서현·박해란 ·최샛별, 2021). 이런 점에서 구별짓기는 상징 폭력을 통한 계급 재생산의 방식으로 사용되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명 “브랜드 아파트”를 선호하는 현상의 등장이 단순히 소비 성향이 아니라 계급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는 이 연구의 주제인 지하철 역명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연구는 우선 역사 이름을 변경하는 주체와 내용을 구분한다. 주체는 지하철 역사 이름을 제·개정하는 과정의 주체 그리고 내용은 역사 이름이 갖는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로 구분한다. 주체는 지역사회나 시민단체의 요구가 반영되어 협의가 이뤄지는 경우와 관(官) 주도로 제·개정하는 경우로 구분하고, 제·개정의 사유가 지하철 역사 명칭이 갖는 사용가치에 중점을 두는 경우와 교환가치에 중점을 두는 경우로 구분한다. 이후 각각의 차원에 속하는 사례들을 범주화시킴으로써 세부 목표를 달성코자 한다. 이 연구에서 말하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는 다음과 같다. 역명 제·개정에 있어서 역명을 바라보는 태도가 지하철 이용객이나 지역주민이 지하철역을 다른 역과 혼동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거나 제정 당시 지형지물이 사라져서 개정하는 경우는 사용가치로 구분하고, 지하철 이용객의 편의가 아닌 지역의 이미지나 홍보 등을 위한 제·개정하는 경우는 교환가치로 구분한다.2) <그림 1>은 x축을 사유로, y축을 제·개정 주체로 둔 분석틀이다.
지하철 역사 이름의 제·개정을 알아보기 위한 대상은 서울 권역의 전철역으로 한다. 국철 경인선과 경부선, 3호선, 4호선, 8호선의 경우 인천과 경기도 일대에 있는 역을 관리하기도 하지만, 이 연구에서는 2022년 12월 현재 행정구역상 서울에 있는 지하철역 332개 역을 대상으로 한다. 그중에서도 역명이 개정된 경우와 정식 개통 전 확정이 유력했으나 변경된 역을 중점으로 한다.
이들 과정에서 가장 빈번하게 사용되는 방법은 정부의 문서와 신문 등 1차 자료를 이용한 문헌 연구이다. 정부의 문서 경우 기초단체 지명위원회와 광역단체 지명위원회의 회의록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누구의 주도로, 어떠한 사유로 역사의 제·개정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고, 신문의 경우 제·개정 과정에 있어 지역사회의 욕구를 파악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지역민들이 모아 개설한 파크리오 입주자대표회의 카페와 잠실파크리오사랑방3)를 참여관찰을 통해 지역민들의 다양한 문화욕구를 확인한다. 이들 카페를 참여관찰하는 까닭은 이들이 민간 주도의 역 개명 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Ⅲ. 지하철 역사 이름 제·개정 규칙과 현황
지하철 역사 이름의 개정 및 제정 규칙은 관할구청의 주민의견을 수렴한 후 지명에 관하여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로 구성된 서울시 지명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하고 있다. 역사 이름의 제·개정은 다음의 우선순위에 따라 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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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거장 주변의 옛지명 또는 법정 및 행정구역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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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적·사적 등 문화재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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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주요 공공기관 또는 주요 공공시설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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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시민이 정거장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는 지역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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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득이 특정기관 명칭을 사용하고자 할 경우에는 역사주변 여건, 역사와의 거리, 시민의 인지도, 시설의 규모, 통행인구 등을 감안하여 정거장 고유명칭 하단에 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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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기 지하철4)부터는 대학명을 역명으로 정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다만, 역사가 대학 부지 내에 위치하거나 대학과 접하여 대표지역명으로 인지 가능한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대학명을 표기하고5), 국철구간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이격거리 500m 정도, 학교규모도 종합대학 이상으로 재학생 2,000명 수준인 경우에는 병기. (국철구간인 철도청은 전문대 이상, 재학생 3,000명 이상인 경우에 병기 사용) (출처: 서울시 지명위원회)
이후 절차는 정거장 위치를 선정하면서 지명 유래를 조사한 후, 구청 혹은 시청의 의견 및 이를 통한 주민의견 반영을 하여 정거장 명칭안을 선정한다. 그 다음 각 관할 지명위원회에 상정을 하고 지명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을 하게 된다.
1974년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된 이래 36년간 지하철역 이름이 바뀐 것은 총 35차례6)로 개명에 대한 지명위원회 입장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서울대로부터 1.5km 떨어진 서울대입구역이나 서초동과 역삼동 자리에 있는 강남역은 ‘뜬금없다’며 개명 대상 1호로 꼽히지만 이미 그 지역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됐기에 “되도록 바꾸지 말자”는 결론이 났다.7) 반면 개정이 쉽게 이루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다. 2004년 구로공단역이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가리봉역이 ‘가산디지털단지’로 바뀌었고, 동대문운동장역은 2009년 12월 역 이름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으로 바뀌었다. 5호선 김포공항역은 국문명은 변하지 않았으나 영문명이 ‘Gimpo International Airport’에서 2001년 ‘Gimpo Airport’로 한차례 개정되었다가8) 2004년 ‘International’을 넣어야 했다.
이외에도 2008년 국철 경부선 시흥역이 금천구청역으로, 8호선의 산성역과 남한산성입구역은 각각 남한산성역과 단대역으로 개통되었으나 1998년 개정됐고, 지하철 2호선 성내역은 2010년 잠실나루로, 같은 2호선 건대입구역은, 정식 역명이 화양역, 부역명이 건대입구역이었다가 1985년 부역명이 정식 역명으로 개정되었다. 5호선 청구역의 경우 개통한지 몇 달 되지 않아 광희문역에서 청구역으로 바뀌었다. 개롱역은 개농(開籠)역에서 2000년 개롱(開籠)역으로 개정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표 1>에서 확인 가능하다.
개정된 사례 이외에도 개통 전의 가칭과 개통 후의 역명이 바뀌는 경우도 존재한다. 6호선의 새절역은 개통 전에는 신사역이었으나 개통 후 새절역으로 제정되었고, 7호선의 뚝섬유원지는 개통 전에는 자양역이었다. 9호선의 구반포와 신목동의 경우, 구반포역의 첫 명칭은 ‘서릿개’였고, 신목동의 원래 이름은 용왕산역이었다. 9호선 신논현역의 경우 주변에 이미 널리 알려진 ‘교보빌딩사거리(구 제일생명사거리)’로 이름을 지으려 했으나 개통될 때에는 신논현역으로 된 경우이다.
이러한 지하철 역사 이름을 제·개정의 주체는 지역사회 또는 관청이다. 제·개정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요구가 반영되어 협의가 이뤄지는 경우와 지역사회 요구보다는 관 주도로 제·개정하는 경우의 한 축과 제·개정의 사유가 지하철 역사 명칭이 갖는 사용가치에 중점을 두는 경우와 교환가치에 중점을 두는 경우의 한 축으로 각각의 차원에 속하는 사례들을 범주화시켜보면 <그림 2>와 같은 유형을 발견할 수 있다.
1사분면은 관 주도 사용가치 중심의 역사 이름 제·개정의 사례들로 “공무원형”으로 볼 수 있다. 단순히 지형지물이 변해서, 역명이 혼동을 주기 때문에 바꾸는 것으로 주민이나 시민들의 입장보다는 행정중심으로 제·개정이 일어난다. 2사분면은 관 주도 교환가치 중심으로 “정치인형”으로 볼 수 있다. 제·개정의 사유는 공무원형과 다를 바 없지만, 제·개정을 통해 해당 지역들을 홍보하려는 이면의 목표가 있고, 때때로 해당 단체장의 업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3사분면은 민 주도 교환가치 중심으로 “복부인형”이다.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부녀회나 입주자대표회를 중심으로 역사 이름 제·개정을 통해 집값 상승이나 구별짓기를 시도하기 때문이다. 민 주도 사용가치 중심의 4사분면은 “시민운동가형”으로 관에서는 미처 신경쓰지 못한 부분을 찾아서 스스로 좋은 방향으로 제·개정을 이뤄내기 때문이다.
Ⅳ. 지하철 역사 이름 제·개정 범주화 및 분석
공무원형 개정 사례는 가장 빈번하게 발견할 수 있다. 지하철 공사 자체가 관 주도로 이뤄지고, 역사 이름 제·개정의 심의 및 결정 역시 관에서 주도하기 때문에 큰 무리 없이 제·개정이 이뤄진다. 이러한 제·개정의 주된 사유는 이용객의 편의 중심이다. 시흥역이 금천구청역9)으로, 단대역과 남한산성역이 남한산성입구역과 산성역으로 바뀐 것은 다른 지역 혹은 다른 역으로 혼동의 우려가 있고, 또 실제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2008년 개정된 금천구청역의 경우는 1908년 당시 역사가 위치한 행정구역은 경기도 시흥군으로, 지역의 이름을 따서 시흥역으로 시작을 했다. 이후 행정구역이 변하면서 서울시 시흥동으로 동네 이름은 계속 유지가 되었으나 경기도 시흥시와 혼동이 된다는 이유로 인근에 준공된 금천구청으로 개정된 사례라 하겠다. 8호선의 산성역과 남한산성입구역은 이용객들의 혼선을 줄이기 위해 개정되었다. 이 두 역은 각각 남한산성역과 단대역으로 개통되었으나 단대역이 옆 역인 단대오거리역과 혼동되기 쉽다는 이유로 개정되었고, 남한산성역 역시 개정된 남한산성입구역과 혼동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함께 개정했다.10)
휘경역이 외대앞역으로 바뀐 것 또한 이용객의 편의를 중심으로 바뀐 것으로 볼 수 있다. 외대앞역이 위치해 있는 곳은 이문동으로 휘경동과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 1974년 개통 당시 회기역이 개통되지 않아 휘경동 주민들이나 휘경동을 찾아가는 이용객들에게 큰 문제는 없었으나 이후 1980년 회기역이 휘경동에 개통되자 발음도 비슷하고 휘경동을 찾는 이용객들의 불편이 제기됐다. 이후 1984년 열차사고11)로 이미지가 좋지 않게 되자 역명 개정의 요구가 늘었고, 결국 1996년 인근의 대학교이자 부역명으로 사용되었던 외대앞역으로 개정되었다. 외대앞역 개정의 경우 이미지 쇄신이라는 교환가치로 보기에는 사고시점과 개정시점의 기간이 오래고, 부역명을 정식역명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사용가치로 봐야함이 옳겠다.
공무원형 개정의 또다른 사유는 역사 이름 제정 당시와 현재의 상황이 변한 것도 있다. 5호선 김포공항역의 경우 1996년 개통 당시 국제공항으로서 기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문명에 International이 들어갔으나, 2001년 국제선 기능이 인천공항으로 넘어가면서 삭제되었다. 그 후 2003년 일본 하네다 노선이 취항하고,12) 2007년 상하이 홍차오 노선이 취항하는13) 등 국제선 기능을 일부 회복하여 다시 International을 추가하는 개정이 일어났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의 경우도 김포공항과 비슷하다. 1983년 개통 당시에는 서울운동장역이었으나 1985년 서울운동장이 동대문운동장으로 개명되면서14) 역명 또한 개정되었다. 이후 2007년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 후에도 높은 인지도로 인해 개정되지 않았으나, 2009년 운동장 부지에 지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이 개장15)하는 관계로 역명을 개정하게 되었다.
개롱역은 앞의 사례들과 달리 특이한 경우지만, 공무원형 범주에 넣기에 부족하지 않다. 역사가 위치해 있는 개농(開籠)동의 발음 표기법이 개롱(開籠)동으로 바뀐 관계로 2000년 역명 개정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16) 이는 인근 시설물의 이름이 변경되어 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행정지명 자체의 변화가 역명 개정으로 이어진 사례라 하겠다. 개통 후 개정되는 사례 이외에도 개통 전에 지명위원회에서 마련한 역명을 바꾸는 경우도 존재한다. 9호선 신논현역의 경우 이미 널리 알려진 ‘교보빌딩사거리(구 제일생명사거리)’로 이름을 지으려 했으나17) 국가기관이나 관청이 아닌 사기업의 이름을 역명에 넣을 수 없다는 이유로 신논현역으로 개통했다.
관 주도와 달리 민간 주도의 개정은 쉽지 않다. 5호선 광희문역이 청구역으로 바뀐 것 이외에는 개통 전에 변경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청구역은 개통할 때까지는 광희문역이었으나, 같은 5호선의 광화문역과 이름이 비슷하고, 실제 광희문은 청구역보다는 동대문운동장역과 가깝다는 주민들의 민원과 시민단체의 노력으로18) 개통한지 몇 달 되지 않은 1997년 개정되었다.19) 6호선의 새절역 같은 경우 역이 위치한 곳이 은평구 신사동이어서 개통 전에는 신사역이었으나 3호선에 신사역이 이미 존재하고 있어 혼동이 된다는 주민들의 민원 때문에 신사(新寺)동의 한글 뜻인 새절역으로 제정하고 개통되었다. 7호선 뚝섬유원지역도 주민들의 민원으로 역명이 개통 전에 변경됐다. 최초 계획은 역사가 위치한 자양동에서 유래한 자양역이었으나 주민들이 자양역보다는 뚝섬유원지가 더 찾아오기 쉽다는 이유로 변경을 요청해서 뚝섬유원지역으로 제정하여 개통했다.20)
시민운동가형의 경우, 공무원형보다 역명 개정이 쉽지 않은데, 지금은 잠실나루로 변경된 성내역의 개정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1980년 인근에 성내천이 흐른다고 해서 성내역으로 제정할 때까지는 어떠한 문제가 없었으나, 성내역이 위치한 신천동이 강동구에서 송파구로 1988년 분구가 되면서 이용객들의 혼란이 생겼다. 분구가 되기 전까지는 강동구 성내동에 가기 위해 강동구 신천동의 성내역을 이용하는 것에 큰 불편이 존재하지 않았으나, 분구 이후 강동구 성내동에 가기 위해 송파구 신천동에 위치한 성내역을 이용하는 것에 불편을 느끼기 시작했다. 또한 같은 강동구 내의 다른 동과 강동구와 송파구라는 다른 구에서의 역명과 지명 혼동은 지역 내에 사는 주민과 이용객들에게 큰 불만이었다. 90년 대에 들어 지역주민들은 역명과 지명의 불일치를 이유로 역명 개정을 요청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는데, 그 이유는 성내역의 ‘성내’는 성내동의 ‘성내’가 아닌 성내천의 ‘성내’에서 유래된 것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상실되지 않았다는 이유다.
정치인형의 사례로는 구로디지털단지역과 가산디지털단지역, 광운대역이다. 두 역이 역사 이름 개정 신청을 하게 된 공통된 이유는 ‘시대 변화에 따른 이미지 쇄신’이다. 과거 공장 밀집 지역이었던 구로공단역은 2000년 이후 정보기술(IT) 업체들이 들어서면서 ‘IT 밸리’를 형성하자 구로구청은 기존의 구로공단과 시대상황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직접 역명 개정을 요구했다. 구로구에서 분구되면서 기존의 가리봉동의 대부분을 포함한 금천구청은 가리봉동을 가산동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에 맞춰 가리봉역의 역명 개정을 요구를 했다. 구로공단과 가리봉의 이미지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신경숙의 ‘외딴방’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의 모티브가 되는 지역이었다는 말로 이미지가 어떠한 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고, 또한 구로디지털단지역 제막식에서 양대웅 구로구청장은 “산업화와 근대화를 상징했던 구로공단이 이제는 첨단산업단지로 발돋움하면서 구로는 이제 명실상부한 디지털도시로 변모했다”며 “역명을 바꾼 것을 계기로 구로구는 새롭게 태어날 것”이라고 밝혔다.21)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공단이 없어지고, 첨단산업단지로서 구로의 이미지를 찾는 구청장의 말에서 구로구에 대한, 구로공단에 대한 낡고, 가난하며 낙후된 이른바 ‘공순이’ 이미지를 벗어버리겠다는 이면의 의도가 역명 개정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리봉역의 개정 작업도 구로공단역과 마찬가지로, 표면으로는 가산동에 있는 역에 대한 제이름을 찾아준다는 사유지만 이면에는 가리봉역이 가지는 구로공단과 같은 이미지를 지워버리고자 하는 데 있다. 가리봉동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지 않다면 1995년 구로구에서 분구를 했을 때, 대부분의 가리봉동을 포함한 금천구가 동 이름을 가산동으로 바꿀 이유가 없는 것은 이에 대한 방증이라 하겠다. 또한 2003년 한차례 가리봉에서 가산으로 이름을 바꾼22) 이후 다시 2005년에 가산디지털단지라는 이름으로 개명하는 것은23) ‘제이름찾기’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음의 금천구청장의 발언도, 구로구청장의 발언과 마찬가지로 역이름을 통해 구를 홍보하려는 목적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금천구가 태어난 지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번에 이름이 바뀐 가산디지털산업단지역을 중심으로 최첨단 IT산업 메카인 금천구를 널리 알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24)
이처럼 두 역은 ‘시대 변화에 따른 이미지 쇄신’, ‘역명 제이름 찾기’ 등의 표면의 이유보다는 구로구청과 금천구청이라는 관에서 주도하여 구의 이미지를 높이는 일환으로 역명을 개정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역명 개정에 있어 역에 대한 교환가치가 높은 사례라 하겠다. 게다가 구로구청장과 금천구청장은 역명 개정을 구청장 역임 당시 업적으로 홍보하는 등 역명 개정을 통해 자신들의 선거 운동에 활용하기도 했다.
복부인형의 사례는 개정과 제정 두 부분으로 나눠 살펴봐야 한다. 문화자본으로서 역을 바라보고, 구별짓교환가치 수단으로서 지하철역을 이용하려는 모습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역명 개정에서 이 유형에 들 수 있는 사례는 건대입구역과 잠실나루역 그리고 잠실새내역이다. 1980년 2호선 개통과 함께 화양역으로 출발한 건대입구역은 1985년 부역명이었던 건대입구를 정식 역명을 삼게 된다. 1기 지하철 역명에서는 대학교 이름을 역명으로 사용하던 시대에 건국대학교가 민원을 제기했다는 표면의 이유가 있지만 이면의 이유는 화양리가 당시 유명한 윤락가였기 때문이다. 1999년 윤락가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화양동=화양리 윤락가’25)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성업하던 80년대에는 지금보다 더 심각했다. 이에 건대입구역 주변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때마침 건국대학교의 노력으로 역명 개정에 이르게 된다. 지역 이미지를 위해 역명 개정을 하게 된, 복부인형 사례라 할 수 있다.
잠실나루역과 잠실새내역의 경우, 민 주도의 교환가치 중심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사례다. 앞서 설명했듯이 성내역의 개명운동은 역사가 깊다. 그러나 2010년에 와서야 개정에 성공한 것은, 전국에서 세대수가 가장 많은 단지인 파크리오의 새로운 입주자들의 힘이 컸다. 성내역 개통 시기 때부터 살던 주민들은 성내역에 대한 교환가치가 높은 사람과 낮은 사람들의 비율이 비슷했으나 새롭게 입주한 사람들은 성내역에 대한 교환가치가 높았다. 특히나 주변사람들이 강동구 성내동으로 오해를 한다는 이유로 성내역에 대한 개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고, 성내역이라는 이름으로는 집값이 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의 공식 개명 사유는 재건축 등 지역개발로 인한 주변 여건 변화로 성내천의 의미 유지는 상실되었고, 강동구 성내동과 이름이 같아 주민, 외부시민, 관광객에게 혼란 및 시간, 경제적 낭비 초래, 실제 행정구역과 상이한 명칭, 주변지역 교통혼잡 가중이었다.26)
2008년 8월 입주가 시작되고 2009년 4월부터 입주자 대표회의와 부녀회에서는 성내역 개명을 위해 회의와 구청방문을 시작했다. 파크리오 입주자들을 중심으로 성내역 개명에 대한 의견 조사표 및 탄원서를 제출하는데 그 수가 5,600부였다.27) 송파구청의 그전까지의 입장은 성내천에 대한 의미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그 당시의 탄원서는 수백 장에 불과했다. 그러나 수천 장의 탄원서가 접수가 되자 송파구청에서는 성내역의 역사 이름 개정에 대해 움직이기 시작한다.28) 지역 주민 공감대형성 및 여론조성이 되자 구의원이 역사 이름칭 개정안을 발의하고, 이 발의안을 송파구의회에서 의결, 서울시는 서울메트로로 의결안을 송부를 하고 송파구청에 주민의견 여론주사 요청 및 실시를 하게 된다. 주민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로 송파구 지명위원회를 개최해서 심의통과하고 다시 서울시 지명위원회에서 심의 및 확정에 이르는 과정은 1년이 걸렸지만 그동안 성내역 개명에 있어 걸린 시간에 비하면 짧다고 할 수 있다. 이상의 내용에서 봤을 때 성내역이 잠실나루로 개정된 것은 파크리오 입주자들의 구별짓기를 통해 역사를 높은 수준의 교환가치 대상으로 바라본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성내역의 이러한 성공 이후에 잠실엘스입주자모임(http://cafe.naver.com/jsls)에서는 신천역 개명을 위해 노력했고, 그 결실로 잠실새내역으로 개칭이었다. 또한 가든파이브를사랑하는모임(cafe.daum.net/G5LOVE)에서는 장지역을 개명하자는 움직임이 있다.29)
민자 지하철 9호선의 두 역인 신목동과 구반포는 역시 역사 이름 제정에 있어서 복부인형 사례에 적합한 역들이다. 지하철 역사 이름 제정 규칙에 의거해서 두 역은 각각 용왕산역과 서릿개역으로 잠정 결정이 나 있었다.30) 용왕산은 역 반경 200m에 있는 산으로 그 역 주변을 대표할만한 지형지물이었고, 서릿개는 구반포역이 위치한 곳의 옛지명으로 역사 이름 제정 규칙에 어떠한 위반도 하지 않은 이름들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역을 이용하는 주민들의 입장은 그렇지 않았다.
역사 이름을 교환가치로서 바라본 주민들은 부동산과 주거지 구별짓기에 불리한 용왕산과 서릿개보다는 ‘목동’과 ‘반포’가 가지고 있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택했다. 반포(盤浦)의 우리말이자 ‘개울물이 굽이쳐 흐른다’는 뜻의 ‘서릿개’는 어감이 욕설로 비춰질 소지가 있고 남의 과일을 훔치는 ‘서리’를 떠올리게 한다며 일대 아파트 주민 6,700여 명31)이, 용왕산 역시 목동1단지 아파트 주민 2,800여 세대32)가 용왕산이라는 이름이 목동과 연계가 되지 않고 생소하다는 이유로 역명 변경을 요구했다. 결국 서울시 지명위원회는 실제로 이용하는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역사 이름을 변경하라는 지침을 내렸고, 해당 관청은 서울시 지명위원회의 권고대로 역명을 구반포역과 신목동역으로 결정했다. 복부인형 역사 이름 개정의 사례를 볼 때, 지하철 역을 역 이상의 무엇, 교환가치로 보는 경향이 뚜렷했다. ‘잠실’, ‘반포’, ‘목동’에서 역명 개정을 추진한 배경에는 이들 이름의 반사 효과, 즉 서울에서도 ‘부동산 강세 지역’이라는 것에 중점을 뒀기 때문이다.
<표 2>에서 봤을 때 지하철 역사 이름 제·개정은 주로 공무원형이 많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초창기는 대부분 공무원형이었으나 2000년 대 들어 정치가형이 나타났고, 2010년 들어 복부인형이 등장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이름이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로 전환했음을 알 수 있는 경험 증거다.
Ⅴ. 결론
지하철 역사 이름을 제·개정하는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요구가 반영되어 협의가 이뤄지는 경우와 지역사회 요구보다는 관주도로 제·개정하는 경우의 한 축과 제·개정의 사유가 지하철 역사 명칭이 갖는 사용가치에 중점을 두는 경우와 교환가치에 중점을 두는 경우의 한 축으로 각각의 차원에 속하는 사례들을 범주화를 시켜 본 결과, 많은 수의 제·개정은 관 주도 사용가치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개정 사유만 놓고 보면 모든 제·개정은 이용객의 편의 및 시대 흐름에 따른 지형지물의 변화라 할 수 있겠지만 그 이면을 보면 단순히 사유 그대로 믿기에는 어렵다는 것이 밝혀졌다.
특히 민 주도 교환가치중심의 사례에서는 인터넷 카페에서 그들만의 이야기를 분석해봤을 때, ‘좋은 동네 vs 후진 동네’, ‘부동산’이라는 이유로 지하철 역사 이름 제·개정을 시도했음을 알 수 있었다. 지하철 역을 통해 주거지의 구별짓기가 이뤄지고, 지하철 역을 통해 ‘집값상승’을 추구하고 있는 모습은 표면에서 알 수 없는 이면의 모습이었다.
이 연구는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내에서의 지하철 역사 이름 제·개정을 중심으로 다뤘지만 수도권 지하철이나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인천 등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 지역까지 사례로 연구하면 보다 풍부한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대학교들이 지하철 역사 이름에 자신들의 학교 이름을 넣기 위한 민원들을 본 논문의 분석틀로 바라보면 또다른 논문이 나올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종교계나 기업과 관계 또한 지하철 역사 이름의 제·개정에 영향을 끼쳤음을 봤을 때. 대상의 범위를 확장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하철 역사 이름의 가치 변화는 결국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사용가치보다는 교환가치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즉 사용가치의 교환가치로 이동, 즉 지하철 역사 이름도 자본주의로 이행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