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논문

거리 예술을 통해 본 정치적 주체화: 제이알(JR)의 얼굴 사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양소연 1 , **
So yeon Yang 1 , **
Author Information & Copyright
1양소연_국제사이버대학 인터넷방송학과 겸임교수
1Gukje Cyber University
**Corresponding Author : soyeony@gmail.com

© Copyright 2022 Social Integration Research Center, Kangwon National University.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 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May 25, 2022; Revised: Jun 10, 2022; Accepted: Jun 12, 2022

Published Online: Jun 30, 2022

국문초록

2000년대 초반부터 거대 인물 초상 사진을 거리에 전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제이알(JR)은 평범한 개인을 정치 담론 위로 끌어올리는 시민 참여적 거리 예술을 펼치고 있다. 특정 직업, 계층, 연령, 성별 등 집단의 정체성으로만 이해되던 개인의 얼굴을 거대 초상으로 극대화함으로써 대중의 일원일 뿐이었던 개인을 개성을 가진 주체로 드러나게 한다. 이러한 제이알의 작업은 익명으로 존재하던 대중이 예술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담론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서 랑시에르의 미학 정치의 주요 개념인 정치적 주체화와 맞닿아 있다. 본 연구는 제이알의 얼굴 사진 프로젝트 사례를 통해 거리 예술이 갖는 실천적 함의를 주체화 개념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랑시에르는 정치를 주체들의 문제 혹은 주체화 양식들의 문제라 언급하며 평범한 개인들의 정치적 주체화를 현대 사회의 정치적 실천 방안으로 제시한다. 제이알의 작품에 등장하는 개인들은 집단의 정체성이나 계급성 등 자신에게 부여된 의미를 탈피하거나 전복시키는 경험을 통해 특정 정체성을 가진 집단의 일원이 아닌 고유한 개성을 가진 존재로 사회에 목소리를 낸다. 이는 랑시에르가 말한 정치적 주체화 과정의 사례로서 예술을 통한 정치, 예술이 갖는 실천적 속성을 보여준다.

Abstract

Since the early 2000s, JR has been working on a project to display portraits of giant figures on the street and engaging in citizen-participatory street art projects that make ordinary individuals express their voices on political discourses. JR take pictures of anonymous citizens and print out them in huge size. By showing individual's face pictures in the street, he tries to make people recognized as a subject who has its own personality and experiences while they usually have been only understood as a group identity, such as a specific occupation, class, age, and gender. JR's work is in contact with Rancière's aesthetic politics as an example of the politics of visibility in which the anonymous public reveals themselves through artistic acts and becomes the subject of discourse. In accordance with Rancière's discussion referring to politics as a problem of subjects or a problem of subjectivization styles, this study analyze characteristics of JR's artistic activity as a new aesthetic practice case that changes everyday life, JR uses his portrait projects as a strategy to illuminate the lives of marginalized or distorted communities. It seeks to discover the political implications of street art activities by viewing it as a process of political subjectivization through the subversion of group identity.

Keywords: 도시 예술; 제이알(JR); 그라피티; 주체성; 얼굴초상
Keywords: Urban Art; JR; Graffiti; Subjectivation; Portrait

I. 들어가며

일상의 삶이 펼쳐지는 도시 공간에서 펼쳐지는 거리 예술은 작품의 존재 자체가 도시를 바꾼다. 어느 순간 등장한 거리의 그라피티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주변 환경과 맞물려 새로운 이미지와 의미를 만들어내고, 이러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사유는 끊임없이 자극받는다. 익숙한 현실의 공간에 나타난 낯선 이미지를 우연히 접하고는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공간을 새롭게 감각하게 된다. 어느 날 거리에 불쑥 등장한 그라피티는 거리라는 일상생활 공간을 이질적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현실의 삶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처럼 도시 예술은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를 다르게 감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실천적 의미를 갖게 된다. 미학을 “특정한 식별 체제이자 사유 체계(Ranciére, 2008a)”로 인식하고 예술이 가진 실천적 함의를 주장한 랑시에르의 미학 정치의 관점에서 본다면, 거리 예술 역시 일상과 예술, 그리고 정치의 경계를 뒤흔들며 새로운 시선과 생각을 갖게 하는 정치의 한 사례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는 2000년대 초반부터 거대 인물 초상 사진을 거리에 전시하는 프로젝트를 전세계적으로 진행해 온 프랑스 출신 거리 예술가 제이알(JR)의 작품 활동을 중심으로 거리 예술이 갖는 실천적 속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이알의 얼굴 사진 프로젝트에서 일반인들이 얼굴 초상으로 등장하는 과정을 통해 어떻게 타자에 의해 부여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고유한 개성을 가진 존재로 스스로를 드러내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이것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랑시에르(Jacques Ranciére)의 정치적 주체화 개념을 통해 분석해 보고자 한다. 랑시에르는 오늘날 정치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합의 체계 및 정당화 기제로 주로 이해되고 있지만 이러한 통치체계 중심의 개념은 치안(police)으로 구분할 것을 주장하며, 정치의 본질을 미학에서 찾는다. 랑시에르에게 정치란 공동적인 것을 나누는 사유와 행위 전반과 관련되어 있다. 정치는 공동의 것이 존재하고 그것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 논의하고 자신의 몫을 다투는 것에서 시작하며, 그러한 정치 행위에는 나눔에 대한 감각 즉 미학적 사유가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치는 곧 미학일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감각을 위해서는 사람들 모두가 분배를 앞에 둔 갈등의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자신의 몫을 다투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정치는 “주체들의 문제 혹은 주체화 양식들의 문제”(Ranciére, 2015: 71)라고 설명한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공통적인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몫을 다투는 것이 정치이고, 그러한 몫을 다투는 과정은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사유와 그러한 감각에 따른 실천으로서 미학과 연결되고, 그러한 갈등과 투쟁의 과정에서 개인은 다양한 균열을 만들어내는 주체화 과정을 경험한다. 단지 자신이 속한 집단 안에서 자신을 자각하고 집단의 정체성에 따라 목소리를 내는 것을 넘어서, 공통적인 것의 나눔이라는 것에 기입된 의미와 관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다.

제이알은 스스로를 예술가(artist)와 사회활동가(activist)를 조합해 예술활동가(artivist)로 규정하고 있듯이 자신의 예술 활동 목적을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는데 있다고 명시한다1). 그리고 예술을 통한 사회 변화를 실천하기 위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사진 기술을 활용해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을 찍고 그것을 크게 확대해 거리에 전시한다. 빈민, 난민, 노인, 여성, 아동 등 차별과 소외를 받아왔던 사람들의 얼굴을 다른 사회적 맥락을 드러내는 요소들을 전부 배제한 채 얼굴만을 드러냄으로써 빈민이나 난민 등 이들에게 부여된 집단적 정체성이 아닌 각자의 고유한 경험과 개성을 가진 존재로 해석될 수 있도록 한다. 얼굴만을 클로즈업한 사진 안에서 기존의 사회적 맥락이나 의미 체계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고 사람들은 고유한 경험과 개성을 가진 주체로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게 된다.

십대 시절 학교를 그만둔 후 친구들과 거리에서 스프레이로 그래피티 태깅을 해왔던 제이알은 우연히 지하철에서 사진기를 습득하게 되고, 이후 회화가 아닌 사진으로 거리 예술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2004년 프랑스의 빈민가인 Montfermeil 거리에서 거대 초상화를 붙이는 게릴라 전시를 벌였다. 이후 2005년 친구이자 동료인 지역 영화제작자 레드 리 (Ladj Ly)와 함께 28밀리 카메라로 지역 청년과 노동자들을 인터뷰하는 내용을 찍고 전시하는 작업 <28 Millimeter Project>를 시작했다. 이후 파리 교외 노동 계급 거주지인 Clichy-sous-Bois에서 온 청년들의 모습을 촬영하고 그들의 초상을 거대 포스터로 인쇄해 건물 벽에 붙이는 거리 미술 퍼포먼스 <세대의 초상 Portrait of a Generation>(2005년-2006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에서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의 얼굴 사진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분리장벽에 전시하는 프로젝트 <페이스투페이스(Face 2 Face)>(2006년-2007년), 브라질, 케냐, 리베리아, 시에라리온 등지에서 빈민가 여성들의 모습을 찍어 전시하는 <여성은 모두 영웅이다(Women Are Heroes)>(2008년-2010년) 등 거리에 대형 사진을 인쇄해 붙이는 그라피티 작업을 해왔다. 2010년 이후에는 사진 작업 외에도 평범한 사람들의 존재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나 단편 영화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사회문제 해결하는 참여적 활동을 조직하는데 많은 관심을 가지고 <Can Art Change the World? INC>라는 비영리조직을 만들어 사회 인식 제고와 사회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예술,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본 연구는 제이알의 거리 예술활동을 집단의 획일화된 정체성을 벗어나 익명의 개인들이 주체로서 자신의 실존을 드러내는 정치적 실천 사례로 보고 그 특징을 분석할 것이다. 제이알은 사진 기술을 거리 예술에 적용해 획일화된 집단의 정체성으로만 존재하던 개인이 다양한 경험을 가진 주체로 드러날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정치를 주체들의 문제 혹은 주체화 양식들의 문제라 언급하며 평범한 개인들이 정치적 주체화를 실천적 대안으로 제시하는 랑시에르의 논의에 비추어 보면 제이알의 예술 활동은 일상적 삶에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미학적 실천 사례로 볼 수 있다. 얼굴 초상, 사진 기술, 거리미술 기법을 활용해 주변화되거나 왜곡된 공동체들의 삶을 조명하는 제이알의 전략을 집단의 정체성 전복을 통한 정치적 주체화 과정으로 보고 거리 예술 활동이 갖는 정치적 함의를 발견하고자 한다.

Ⅱ. 랑시에르의 미학 정치와 정치적 주체화

랑시에르는 미학을 “예술에 대한 어떤 특유한 식별 및 사유체제”로 정의한다(Ranciére, 2008a). 랑시에르에게 미학은 예술에 대한 일반 이론이 아니라 담론의 모태가 되는 식별 체제로서 본질적으로 정치적 속성을 갖는다. 미학이 “세계가 지각되는 방식, 권력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방식”을 다루고 있다면 미학은 정치의 바깥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Ranciére, 2008b). 랑시에르는 아이가 물수제비를 뜨는 행위를 자연의 표면을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는 표면으로 만드는 것이라 언급하며 이를 예술의 기원이라고 언급한 헤겔의 비유를 들어 미학은 감성에 대한 생각이 아니라 실천이라는 점을 강조한다(Ranciére, 2008b). 랑시에르에게 예술이 정치적인 것은 예술이 사회 구조, 갈등, 사회집단들의 정체성을 재현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유 체계를 만들어냄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구성해 나가는 데 있다. 랑시에르에게 정치는 권력 행사나 권력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그러한 새로운 사유 체계를 드러내는 것이며, “특수한 공간의 구성, 경험의 특수한 영역을 분할하는 것”으로서 미학과 연결된다.

랑시에르는 오늘날 정치는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합의 체계 및 정당화 기제로 주로 이해되고 있지만, 고대 철학에서 정의한 정치란 본래 공동의 것을 나누는 것이었다고 보고 결국 정치란 이러한 경계선을 다투는 것, 분할의 경계선을 감각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공동의 것을 나누는 분할의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정치와 미학, 그리고 실천의 문제에 대해 접근한다. 그리고 현대의 통치 체계(분배 및 정당화 체계) 중심의 정치를 치안(police)으로 구분해 부를 것을 제안하며(Ranciére, 2015) 정치의 본질을 법적 다툼을 의미하는 계쟁(litige)과 불화의 개념으로 재조명함으로써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정치와 그 실천 방식을 미학과 연결해 제시한다.

랑시에르의 미학과 정치에 대한 접근은 주체의 문제로 향한다. 공동의 것을 인식하고 그 분배의 몫을 나누는 것, 재현된 혹은 분배된 관계를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사유 체계를 가지고 새로운 관계를 구성해 내는 것이 정치라면 그것은 주체의 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랑시에르에게 정치란 기존의 법, 규율, 제도와 같은 나눔을 규정하는 질서나 체계가 아니라 그러한 체계에 문제 제기를 하고 그러한 나눔의 방식에 대해 입장을 다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몫의 배치에 대한 다툼 즉 계쟁을 통해 규율로 합리화된 질서와 체계 안에 드러나지 않는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를 드러나게 하고, 그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몫을 다투고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게 하는 것이다. 랑시에르는 제도나 체계로서의 정치와 실천적 행위로서 투쟁인 정치를 구분함으로써 자유와 평등과 같은 공허한 통념과 동일시되는 민중이 계쟁의 주체로서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가시화시키는 방법 즉 주체화와 주체의 실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치안과 정치를 구분하고 정치의 투쟁적 실천적 속성을 강조하는 것은 치안의 일상적 형태로 여론 조사를 드는 데서 잘 드러난다. 랑시에르는 치안이 여론 조사를 통해 수집된 의견 및 현실적인 것의 지속적인 노출로 이루어진 체제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사회 질서나 제도, 체계를 의미하는 치안은 결국 여론이라는 기존의 통념의 반영일 뿐으로 몫의 다툼의 과정인 실천으로서 정치와 구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Ranciére, 2013).

대중을 자유로 동일시 한 데 민주주의와 정치를 둘러싼 근본적 착오가 존재한다고 분석한 랑시에르에게 어떤 실재로서 ‘대중’은 존재하지 않는다(Ranciére, 2014b). 랑시에르는 대중과 관련해 존재하는 것은 “대중의 형상들, 집합 양식, 변별적 특질, 어떤 능력과 무능력을 특권화하면서 구축된 형상들”(Ranciére, 2014b)일 뿐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계쟁의 주체로서 대중은 권력 관계 속에서 투쟁의 과정을 통해 가시화되는 것이지 어떤 사실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로서 대중이란 그저 민족적, 종교의 신자, 혹은 민주주의의 대상이자 외양으로서 민주주의에 의해 활용될 뿐인 대중, 과두 지배자가 원하는 무지한 대중 등으로 권력 관계 속 어떤 외양이나 수사로서 존재할 뿐으로 랑시에르는 대중에서 이러한 수사적 외양의 의미를 벗겨내고 정치의 주체이자 계급 투쟁의 주체로서 어떻게 가시화 될 것인지를 고민하고 그러한 가시화가 정치 곧 실천이라고 보고 있다. 랑시에르는 우리가 기존에 이해하고 있는 정치를 치안, 정치(해방), 정치적인 것으로 구분하며 해방의 과정으로서 정치를 강조한다.

Ⅲ. 제이알의 거리 예술과 주체화 과정으로서의 정치

그라피티 활동가 제이알은 1983년 프랑스에서 튀니지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십대 시절 스프레이 그라피티를 시작한 이후 사진 그라피티 활동가로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오늘날까지 거리 미술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여러 번 체포된 경험이 있는 제이알은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익명의 존재로 활동하고 있다. 익명이긴 하지만 여러 방송과 인터뷰나 연설, SNS 등을 통해 활발하게 사람들과 소통한다. 제이알이 이처럼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것은 자신의 작품을 널리 알리려는 취지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 활동의 취지에 공감하거나 동참하게 하는 데 있다. 제이알은 자신이 사진을 찍고 전시하는 활동을 하는 이유를 “내가 여기 있다는 것,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언급하며 자신의 작품 활동을 사회적 실천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얼굴을 찍어서 올리는 이유를 빈민, 여성, 이민자 등의 피상적으로 일반화된 특정 집단 모습이 아닌 각 개인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2). 제이알의 인물 사진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단지 사진 모델이 아니라 이러한 제이알의 작품 취지에 동의하고 함께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다. 작품에 참여함으로써 외부로 드러나지 않던 대중에 속한 익명적 존재, 혹은 외부가 호명하는 정체성으로 대상화된 존재에서 자신만의 고유성과 특이성을 가진 주체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

1. 주체화 과정

랑시에르의 주체화는 정체화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탈정체화 혹은 탈계급화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Ranciére, 2013: 119). 개인이나 집단에 행위나 사고방식 혹은 존재 양식에 따라 붙이는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 정체화라면, 주체화는 이러한 노동자, 여성 등으로 부여된 정체성이나 계급 질서를 거부하는 데서 시작해 이러한 정체성과 계급을 형성하는 행위 양식, 존재 양식, 말하기 양식 사이의 관계를 해체하고 새로이 재구성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Ranciére, 2015: 78). 사회가 부여한 집단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요소들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 개인의 얼굴만을 클로즈업해 찍은 제이알의 사진 작업은 랑시에르의 주체화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 도시의 익명의 존재로 살아가는 일반의 평범한 시민들은 어떠한 집단의 정체성도 아닌 타인과 자신을 구별해 주는 고유한 신체인 얼굴로 자신을 드러낸다. 계급이나 인종 등 타자가 부과한 획일화된 정체성을 부인하고 수많은 정체성들을 스스로 재규정해 볼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제이알은 이를 위해 인위적으로 꾸민 얼굴이 아닌 평소의 모습 그대로를 클로즈업해서 찍는다. 그리고 36인치×53인치의 거대한 크기로 인쇄해 모두가 볼 수 있는 거리에 붙인다. 포스터 속 얼굴은 사진을 찍기 위해 한껏 차려 입고 단장한 모습도 아니고, 증명사진에 쓰일 법한 밋밋하고 경직된 천편일률적인 얼굴도 아니다. 제이알의 사진 속 인물들은 정면을 응시하거나 익살스런 표정을 짓는 등 얼굴만으로 이야기한다. 제이알은 자신의 작업을 일반 시민들의 이미지를 훼손하고 함부로 왜곡하는 언론에 대한 풍자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이는 랑시에르가 언급한 타자가 부과한 정체성을 거부하는 것으로써 정치적 실천의 속성을 갖는다.

제이알은 2005년 프랑스 파리 근교 클리시스부아(Clichy-sous-Bois)의 이주민 청년들이 일으킨 시위에 대한 언론 보도에 비친 청년들의 모습을 보고 인물 사진을 거리에 전시하는 퍼포먼스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시위가 일어나기 한 해 전부터 이미 이 지역의 청소년들을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는 작업을 해왔던 제이알은 평범한 청소년들이 언론에서 범죄자와 같은 왜곡된 이미지로 보도되는 것에 충격을 받고, 이들 청소년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가난한 이주 노동자가 많이 살고 있는 빈민가 청년들 전체가 폭도나 불량배로 호명되어 낙인찍히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 것이다. 기자들이 망원렌즈를 통해 훔쳐보듯 찍은 청년들은 후드티를 뒤집어 쓴 채 위협적 눈빛으로 쏘아보는 불량한 모습을 하고 있었고, 이렇게 생산된 이미지는 빈민가 청년들에게 덧씌워진 지역 사회에 위험을 가하는 잠재적 범죄자라는 왜곡된 정체성을 더욱 강화했다. 제이알은 이러한 언론의 관행에 맞서 아무런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이들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했고, 이를 위해 28밀리 카메라로 이들의 얼굴 정면을 프레임에 가득 채워 찍었다. 사진의 배경이나 표정 등에 담길 수 있는 선입견을 가져올 수 있는 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이유였다3).

제이알은 클리시스부아 시위가 일어나기 한 해 전인 2004년부터 <28 Millimeter Project>를 진행하고 있었다. 클라시스부아 지역의 청년과 노동자들을 직접 인터뷰하고 그들의 모습과 목소리를 28밀리 비디오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 초상을 크게 인쇄한 사진을 거리에 전시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 이듬해인 2005년 클라시스부아 출신 소년 두 명이 경찰의 추격을 피하다가 감전사하는 일이 발생했고, 이를 계기로 소요 사태가 일어났다. 언론은 두 소년의 죽음에 주목하기보다는 흥분한 시민들의 모습만을 부각시켰다. 제이알은 자신이 인터뷰까지 했던 주민들이 폭도로 비춰지는 데 충격을 받았다. 언론은 빈민가 지역인 클라스부아의 시민들 전체를 빈민, 불량배, 이주민, 폭도들로 규정하고 그에 걸맞은 클리셰적인 이미지를 계속 생산해 냈고 이들을 증오와 배제의 대상으로 사회로부터 분리시켜 나갔다. 하지만 시위 이전에 이들을 실제로 만나 사진 작업을 해왔던 제이알은 이들이 시위대 폭도이기 이전에 요리사이고 학생인 우리 주변의 평범한 청년일 뿐이라고 생각했고, 제이알은 언론이 만들어내는 구태의연함(media cliche)이 만들어내는 선입견이나 편견 등에 맞서 사회의 위협적인 존재로 왜곡된 청년들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자 했다.

당시 제이알은 28밀리 카메라를 갖고 있었고 이들의 모습을 자세히 담기 위해서는 기술적 제약 때문에라도 가까이에서 찍을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사람들에게 편견을 줄 수 있는 배경 요소를 없애고 청년들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 주기 위해서 얼굴을 가까이에서 찍었다. 그리고 밋밋한 표정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표정을 담으려는 목적에 따라 이들은 다소 작위적인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 정면을 응시한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언뜻 보면 총을 겨누고 있는 듯한 모습의 사진 <그림 1>은 총을 든 유색 인종이라는 클리셰로 굳어진 폭도의 이미지를 재현하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청년이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총이 아니라 카메라일 뿐이다. 제이알은 평범한 지역 청년들에게 시위대나 폭도로 읽힐 수 있는 자세를 취하게 한 후 사진을 찍어 그 사람의 이름, 직업 등을 주석으로 달아 전시했다. 제이알은 언론에서 폭도로 규정한 이들은 학생이나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그저 평범한 이웃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특정 집단에 부여된 낙인이나 통념의 부당함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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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28 Millimeters, Portrait of a Generation, Hold-up (Ladj Ly by JR, Les Bosquets, Montfermeil,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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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제이알의 작업은 이들 이주민, 불량청소년, 노동자, 빈민 등으로 규정되어 범주로 존재하는 이들을 그 범주에 드리워진 이데올로기나 선입견을 깨고 고유한 개별적 존재로 드러내게 한다는 점에서 랑시에르의 주체화 과정의 사례로 볼 수 있다. 랑시에르는 정치를 “평등이라는 보편성을 입증하는 해방의 과정(Ranciére, 2013)”으로 설명하면서 이는 곧 주체화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 사이의 평등을 입증한다는 것은 노동자나 여성 등 차별적 정체성으로 범주화된 사람들이 그 범주를 넘어서 인간 혹은 시민으로서 보편적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는 기존에 외부에서 부여된 정체성이나 계급성을 부인하는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정치적 행위나 실천이 집단의 특정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비춰지긴 하지만 결국 이들이 얻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보편적 권리를 가진 아무나임을 입증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랑시에르의 미학 정치를 설명하는 핵심 개념이기도 한 감각의 분할, 감각의 경계선을 다시 나누는 과정이기도 하다. 결국 실천으로서의 정치는 ‘그들만의 특정한 속성’을 가진 집단으로 분리해 감각함으로써 차별적으로 인식해왔던 판단을 중지하고, 그러한 기존의 감각의 경계선을 허물어버림으로써 자유와 평등이라는 보편성을 가진 존재임을 입증하고 주장하는 작업인 것이다. 랑시에르의 정치는 단지 평등이라는 보편성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입증하는 과정으로서 그것을 드러내는 실천이 핵심을 이룬다.

랑시에르가 “평등이란 인간성이나 이성의 본질에 각인되어 있는 하나의 가치가 아니고 그것이 현실태로 만들어지는 한에서만 존재하며, 보편성의 효과를 낸다”(Ranciére, 2013: 119)고 언급하고 있듯이 정치는 단지 선언이나 주장이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키는 과정 즉 실천을 통해 구현된다. 랑시에르가 말하는 주체화는 남성, 여성, 아동, 노인 등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호명된 정체화를 넘어서는 것을 의미한다. 주체화란 정체성을 만들거나 한 집단의 종별적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의 사례를 구축하는 것이다(Ranciére, 2013). 랑시에르에 따르면 주체는 이름, 지위 혹은 정체성 사이에, 그리고 인간성과 비인간성, 시민성과 그것의 부인 사이에 존재한다. 빈민, 이주민 등 평등이라는 보편성이 적용되지 않는 범주에 속한 이들로 불리는 것, 타자가 부과한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 정치적 주체화이며, 이러한 주체화 과정은 담론이나 실천 형태로 나타난다.

제이알의 작업은 누군가에 의해 무언가로 규정되어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과정으로서 타자의 논리에 의해 규정된 정체성을 거부하는 실천이 된다. 제이알은 얼굴을 찍는 이유를 자신을 드러낼 기회가 거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말한다4). 언론에 의해 범죄자 혹은 폭도로 규정된 존재가 아닌 고유성을 가진 개인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나누는 분리 장벽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며 살아가는 서로 증오해야 할 민족의 원수가 아니라 그저 같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일 뿐임을 사진으로 증명하고 있다. 2007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양쪽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찍어 분리장벽에 전시한 <페이스 투 페이스(Face 2 Face)> 프로젝트는 “한 집단의 종별적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닌 평등의 사례를 구축”하는 랑시에르의 해방의 정치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그림 2>). <페이스 투 페이스> 프로젝트를 통해 제이알은 양국이 함께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했고 2005년 동료 한 명과 함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여행하면서 이 두 지역 사람들은 갈등과 반목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결국은 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지역에 분리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찍어서 나란히 전시하는 작업을 통해 모두가 평등한 존재라는 보편성을 입증하고자 했다. 제이알의 작업은 랑시에르가 말한 평등이라는 보편성을 현실태로 드러내는 작업으로서 곧 정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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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Face 2 Face, Separation wall, security fence, Israeli side (Abu Dis, Jerusalem,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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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지구에 거주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거대한 장벽을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이질적 집단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랑시에르의 표현대로 ‘아무나’인 익명의 존재들로서 보편성을 공유한다. 제이알은 두 지역에 살고 있는 동일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이 보편성을 입증한다. 제이알이 보기에 두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각각 팔레스타인이나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으로 호명되고 있지만, 그 정체성을 거둬내면 익살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내 주변의 이웃,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다.

언론이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특정 민족, 빈민, 난민, 폭도, 노동자 등 단일한 정체성을 부각시키며 기존의 관습과 권력 구조에 따라 경계선을 긋고 있지만 이러한 개인 존재의 드러내는 과정은 정체성과 계급으로 분할된 경계선을 넘는 실천이 된다. 제이알은 이들 사진 속 주인공들의 얼굴에 집중하거나 눈을 부각시키는 작업을 통해 기존의 의미 체계로 동일시 된 정체성이 아니라 개인 주체가 갖는 차이를 드러내게 한다. 이러한 차이의 드러내기는 2011년부터 전세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주변지역의 사람들의 얼굴을 찍어 포스터로 붙이는 거리 퍼포먼스 프로젝트 <인사이드아웃>에서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프로젝트팀이 제시하고 있는 포스터 사진에 대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사진에는 얼굴 전체가 들어갈 것, 눈을 감거나 옆으로 돌린 모습이 아닌 정면을 응시할 것, 무표정한 얼굴보다는 개성과 스토리를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을 권고하고 있는데 이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그 어떤 단일한 정체성으로 호명된 존재로 동일시되지 않고 각자의 개성 즉 차이를 생성하는 과정으로 이끈다. 제이알 작품 속 나타난 다양한 인물, 주제, 집단의 표현은 공적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개인을 나타내는 시각적 수사(visual trope)가 되는 것이다(Orpana, 2014).

제이알은 <세대의 초상(Portrait of a Generation)> 사진 포스터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편견을 성찰해 볼 것을 주문한다. 언론에 보도된 청년들이 전도유망한 학생일지 아니면 폭력배인지 식별할 수 있는지, 한 발 더 나아가 이들이 프랑스의 미래일지 위협이 될지 알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그림 1>).5) 제이알은 이 작품을 통해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편견, 기존의 의미 체계 안에 작동하는 권력 관계의 문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한다. 랑시에르의 분석을 따라 보자면 제이알의 작업은 어느 한 쪽으로 동화되기를 거부한 채 평등이라는 보편성을 논증하는 과정으로서 해방의 정치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주변화되거나 왜곡된 빈민, 청소년,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작업은 랑시에르의 표현에 따라 보자면 익명으로 존재하는 데모스를 예술 행위를 통해 드러나게 한 정치적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제이알은 이처럼 기존에는 눈에 띄지 않는 이미지(invisible image)로 존재했던 이들이 그들 자신으로 드러나게 하는 과정으로서 사진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며, 곧 미학 정치의 실천적 사례가 된다.

제이알의 작품 활동을 해방의 과정으로서 정치라 볼 수 있는 것은 작품 속 인물들이 타자에 의해 호명된 주체로 대상화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평등이라는 보편성을 가진 주체적 존재임을 스스로 입증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제이알의 작품은 거리에 자신의 얼굴이 전시될 것이라는 데에 동의하고 스스로 작품의 일부가 될 것을 결정한 참여자들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성립된다. 제이알이 작품을 기획한 것이기는 하지만 사진의 촬영에서부터 전시하는 행위까지 사진 속 인물들의 적극적 참여가 필수적이다. 사진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표정을 만들고, 자신만의 고유함을 드러내고자 하며, 작품의 제작과 전시 행위 전반에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인사이드아웃> 프로젝트의 경우, 기본적으로 제이알이 낸 아이디어에 기반하고 있고, 프로젝트 진행에 드는 비용을 제이알이 받은 TED Prize 상금이나 후원금 등으로 충당하기는 하지만, 프로젝트는 전적으로 익명의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제이알은 프로젝트 홈페이지를 통해 사람들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제공하고 개인이 쉽게 할 수 없는 대형 사진의 프린트 작업만을 대행해 줄 뿐, 어떤 주제를 다룰 것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지, 언제 어떻게 만나 포스터를 전시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과 실제 포스터를 붙이고 담론을 형성하는 실행은 참여자인 일반 시민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을 보면 전 세계 각 지역에서 <인사이드아웃>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은 일정 규모 이상의 사람들(통상 50명 이상을 권고)을 모아 프로젝트팀에 참여 기획안을 지원서 형태로 제출한다. 신청서를 제출하면 제이알의 프로젝트팀에서 승인을 하고 제출한 기획대로 사진을 찍고 붙이는 퍼포먼스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시민들이 관심 있는 주제를 정해 제출하면 그 주제에 맞춰 프로젝트는 진행된다. <인사이드아웃>팀에서 지원하는 것은 참여자 사진들을 파일로 받아서 크게 확대해 인쇄한 후 우편으로 배송해 주는 것이다. 배송받은 사진들은 약속된 장소에 정해진 시간에 만나 직접 사진을 붙이고 해당 활동을 SNS에 올리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제이알은 인사이드아웃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 자체가 사람들이 유명한 아티스트인 자신을 제외하고도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를 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특정 리더가 앞장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한다6). 이는 민중의 공적 공간에서의 정치 참여를 강조하며 실재로서 민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랑시에르의 언급을 떠올리게 한다. 랑시에르는 고대 그리스어로 민중을 뜻하는 데모스(demos)는 그리스 정치 철학에서 공동체 전체 그리고 자유라는 개념으로 동일시되고 있지만 실제 민중은 권력과 부를 가진 지배층들과 달리 일과 재생산을 떠맡은 익명인일 뿐으로 이들의 존재 자체만으로 민주주의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들은 공동체 내에 존재하긴 하지만 자신의 몫을 분배하는 데 참여하거나 언어로 몫을 분배하는 논쟁 과정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민중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즉 이들이 민중으로서 존재할 때는 몫을 나누는 정치의 과정에 존재할 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낼 때 존재한다는 것이다. 랑시에르는 “논변 능력과 은유 능력의 공동성이 누군가의 행위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정치가 존재한다”(Ranciére, 2015)고 언급하며 정치를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논증 과정으로 정의한다. 그리고 민중이 집단을 정의하는 개념이 아닌 현실태로 드러나는 것은 집단 속에서 ‘몫을 논쟁하는 계쟁’의 주체가 될 때이며 그것이 정치라고 주장했는데, 제이알의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목소리를 내는 민중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랑시에르의 표현대로 “민중에게 자유란 외양으로만 존재하는 통념일 뿐이고 실제 자유란 그것을 논쟁하고 따져 물을 때 얻어지는 것”(Ranciére, 2015)이라면, 사진을 찍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사회의 왜곡된 시선과 편견에 이의 제기를 하는 실천이고, 공동체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자기의 몫을 지각하고 논쟁하는 정치 행위가 된다.

랑시에르는 고대 그리스의 정치가 공적 공간을 계쟁의 공간으로 열어놓는 데 있다면, 근대 정치는 “감각적 차이의 세계들인 공동성의 세계들을 발명하는 주체화 작용의 다수화” 즉 자기의 몫을 다투는 주체화 작용이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정의한다. 랑시에르는 사람들이 “우리 노동자들” 혹은 “우리 여성들”이라고 부르는 집단은 일반적 의미의 노동자들이나 여성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언표 행위를 하는 주체가 해당 집단과 맺고 있는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누군가로 지칭하는 인칭에는 이미 그들 집합과 맺는 관계가 작용하고, 그 안에는 정체성들과 타자성들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Ranciére, 2015). 단지 특정 이름으로 불리는 집단의 이름 자체만으로는 그 주체를 드러낼 수 없고 그 집단의 이름을 부르는 나와의 관계 속에서 그 주체의 속성이 결정된다. 랑시에르는 이처럼 정치적 주체화 양식이란 사람들간의 관계 맺기 속에서 일어나는 전체적인 작용에 존재하는 것으로 주체화란 규정된 집단의 정체성과는 구분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랑시에르에 따르면 개인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동일시되는 상황을 거부하고 쇄신하는 것이 독특한 주체화이며 곧 정치가 된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평등이라는 보편성을 시민 고유의 본질로 보는 것은 민주주의의 계산 착오일 뿐이며 시민은 권력과 부를 가진 자들에 비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들일 뿐이다. 정치란 이러한 계산 착오의 왜곡을 드러내고 몫을 따져 묻는 계쟁을 벌일 때 존재한다. 따라서 정치는 결국 빈민들과 부자들 사이의 투쟁, 즉 계급투쟁의 속성을 띨 수밖에 없다. 랑시에르는 개인들과 인간성(인류) 사이에는 항상 감각적인 것의 나눔이, 부분들이 공동체에 참여하는 방식을 규정하는 하나의 짜임이 존재하기 때문에 합의가 정치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합의 체계가 존재할 수 있는 곳은 주거, 일자리 등 친근함의 장소나 성, 종교, 인종 내지 문화 등의 정체성의 장소 밖에 없다는 것이다. 랑시에르는 공감과 선의지는 정치적 주체화의 끈들을 만들어내기에는 충분치 못하며, 정치적 유대를 위해서는 계쟁을 실행하기에 적합한 주체를 구성하는 정체성의 비전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Ranciére, 2015), 제이알의 작품에 참여하는 과정을 통해 익명의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자신을 주장하는 행위는 곧 정체성을 비전유하는 것이자 주어진 정체성을 거부하는 것으로서 정치적 실천이 된다.

랑시에르의 논의를 종합하면 정치란 하나의 정체성으로 동일시 된 존재들이 자신의 목소리 즉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계쟁을 벌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 노인, 불량배, 노숙자 등의 어떤 하나의 정체성으로 범주화되고 규정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그러한 호명이 전제하고 있는 이데올로기나 권력의 매커니즘에 균열을 일으키는 실천이 정치인 것인다. <인사이드아웃> 프로젝트의 경우, 2011부터 2021년 7월 현재까지 전 세계에 걸쳐 40만 명 이상이 참여해 2,000여 회 이상의 사진 전시 퍼포먼스를 벌였다. 참여 인원만큼이나 이들이 다룬 주제는 다양성, 공동체, 페미니즘, 인종주의, 기후변화 등 다양하다. 인사이드아웃 홈페이지는 참여자들이 다룬 주제를 키워드별로 분류해 공유하고 있는데 대략 60여 개 정도로 범주화할 수 있으며, 청년, 젠더, 지역, 이주자, 난민, 장애, 원주민, 인종차별문제 등 개인이나 집단의 정체성과 관련된 주제들을 많이 다루고 있다. 이는 이러한 용어들로 범주화함으로써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분리 혹은 구분, 나아가 차별과 배제의 함의가 존재함을 반증하는 것으로,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범주에 속한 사람들의 모습이 겉모습만으로는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집단의 정체성으로 동일시 될 수 없는 개인의 특이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또한 프로젝트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은 현장에서 직접 참여이다.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은 참여자들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에도 있지만 포스터를 붙이는 당일에 함께 모여 해당 장소에서 함께 붙이는 행위를 벌인다는 데에 있다. 집단의 리더가 포스터 붙이는 퍼포먼스와 관련된 제반 일정을 조율하면 이 일정에 맞춰 사진 주인공들이 정해진 시간에 현장에 나와 준비된 풀, 사다리 등을 이용해 직접 포스터를 붙이고, 단체 사진을 찍은 후 포스터 행사에 대한 내용을 SNS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는 진행된다. 이처럼 사진의 주인공들이 직접 거리 미술 퍼포먼스에 참여한다는 것은 집단의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개인의 주체화 과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지역에 거대한 사진을 붙이는 프로젝트로서 제이알의 작업은 작가가 단독으로 추진할 수 없다. 또한 불법적 성격을 띠는 것이기 때문에 사진 그라피티 작업을 위해 초상을 붙일 건물 관계자나 기관과 사전 협의나 지역 주민들과 대화를 통해 자발적 참여가 필요하다. 2008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Favela Morro Da Providencia, Rio de Janeiro, 2008)에서 작업한 <여성은 영웅(Women are Heroes)> 프로젝트는 제이알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결과물들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그림 3>). 제이알은 한 인터뷰7)에서 계단에 그린 유명한 작업 과정을 설명한다.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한 제이알은 무장한 마약거래 갱단이 판치는 빈민가에서 상대편 갱단에 살해된 손자를 둔 한 여성을 만난다. 여성은 제이알의 제안에 따라 자신의 사진을 80개로 된 마을의 긴 계단에 부착하는 것을 허락했고 제이알은 지역 아이들과 함께 계단의 층마다 그 여성의 사진을 붙이는 작업을 했다. 맨처음 주민들이나 지역 갱단에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한 제이알은 작업 도중 경찰과 갱단이 총격전을 벌이는 상황에 휩싸이게 되었다. 하지만 그 다음날에도 작업을 계속 이어가자 주민들은 제이알 프로젝트팀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여성의 얼굴이 계단에 포스터로 완성된 것을 보자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하나둘씩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결국은 자신의 얼굴 포스터가 전체 동네 벽면에 걸리는 것을 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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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28 Millimètres, Women are Heroes, Action in Favela Morro da Providencia, Favela byday, Rio de Janeiro,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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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알은 2011년 테드 연설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작업의 목표를 전복적이고 예술적인 방식의 협업을 통해 “집단행동 group actions”을 독려하는 참여 예술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8). 제이알은 일반 시민들과 함께 하는 작업의 목표는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자신들 고유의 지식과 담론 생산에 기여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이미지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진가, 사회 활동가, 지역공동체 활동가, 사회복지사, 교수,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공유하고자 하는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함께 모여 인물의 얼굴 사진을 찍고 거대한 포스터로 인쇄에 거리에 직접 붙이고 다시 그 집단 행동을 SNS를 통해 공유한다. 이러한 제이알 작품에 참여하는 행위는 집단의 창조적 행위로서 제이알이 만드는 예술 행위에 그저 수동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실천하는 행위다. 이들은 직접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참여함으로써 각 지역과 모인 사람들과 이질적 접합을 만들어냄으로써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생성해낸다. 즉 예술의 참여가 곧 정치 행위가 되는 것이다.

또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일정 금액의 후원금을 직접 모집해야 하는데 이는 프로젝트 참여의 자발성이나 주도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볼 수 있다. <인사이드아웃> 프로젝트팀은 참여자들이 모은 후원금이 모자랄 경우 면제해 주거나 금액을 조정해 주기도 하지만, 참여자들은 마치 비영리단체 활동가들처럼 사진 한 장 당 20달러의 후원금을 모으는 협업 작업을 해야 한다. 이는 이 프로젝트가 작가의 일방적 작품 활동이 아닌 참여자가 자발적으로 개입해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얼굴을 찍고 직접 거리에 붙이는 퍼포먼스를 통해 집단에 속하면서도 창조적 개인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작품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들뢰즈가 “무리로 움직이면서도 개인의 특이성을 잃지 않는 늑대들”(Deleuze & Guattari, 2001)이라고 언급한 다양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각국의 상황에 따라 인사이드아웃은 시위 피켓으로 활용되는 등 저항을 위한 플랫폼이 되기도 하는 등 일상의 표면을 뚫고 나오는 특이점이자 문턱으로서 개인과 집단을 둘러싼 가치 체계에 대해 새롭게 사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제이알은 자신의 프로젝트 전과정을 디지털아카이브 형태로 자신의 홈페이지(www.jr-art.net)에 공개하고 있다. 작품 외에도 제작 과정을 담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함께 올려놓아서 관람자들은 결과물 사진뿐만 아니라 프로젝트 진행 과정 전체를 볼 수 있다. 다양한 소셜미디어와 언론 매체를 활용해 다양한 방식으로 공유한다. 이처럼 불특정 개인이 산발적으로 참여해 집단적 결과물을 내는 제이알의 사진프로젝트는 알튀세르의 ‘주체 없는 주체성’9)을 드러내는 과정으로서의 실천 활동이 된다. 집단의 회합, 집회, 시위 등 소위 대중민주주의 혹은 대중 주권으로 인식되는 대중의 정치적 활동이라기보다 집단의 사유의 과정으로서의 정치라고 볼 수 있다. 바디우에 따르면 주체도 대상도 없는 주체성이란 과학적 대상성에 의해 결정되지도 않고 이데올로기적 주체의 효과에 종속되지도 않는, 투쟁적인 물질적 형상 속에 존재하는 어떤 동질적인 사유 과정을 의미하며(Badiou, 2018), 제이알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개인들은 이데올로기라는 국가적 관념에 종속된 주체가 아니라 동질적 사유의 과정 속에 있는 주체적 존재들이 된다. 맹목적인 밀집성을 가진 대중도 아니고 각각의 특이성을 가진 존재들인 것이다. 랑시에르에게 정치적 주체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각하는 어떤 집단이 아니다. 그리고 정치란 “주어진 경험의 짜임 속에서 실존하는 지역들과 정체성들, 기능들, 능력들을 결합하고 분리하는 것”(Ranciére, 2015)라고 볼 때, 제이알의 작품에 참여하는 행위는 곧 정치가 된다. 시민들은 자신에 대해 자각하는 집단이기 보다 현재의 당면한 문제나 주제에 대해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그 문제를 드러내고 있으며 이는 랑시에르가 말한 비가시적인 것들의 현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2. 얼굴과 주체성

제이알의 작품 활동이 정치적 주체화의 과정이 되는 데에는 개인의 얼굴 초상 사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상화에서 가장 감수성이 고조되는 때는 주인공의 이미지가 유형이 아니라 개인으로 느껴질 때이다(Vaughan, 2003). 얼굴이야말로 개인의 고유성을 드러내는 신체로서 얼굴에 집중하는 것은 나와 타자의 관계 속에서 주체적으로 세계를 사유하는 일이 된다. 따라서 미술사에서도 초상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개인 초상화의 등장은 신의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 보기도 한다. 드브레는 재현이라는 단어가 “장례 의식을 위해 검은 포장인 덮인 텅 빈 관”을 가리킨다는 데서 유래한다고 지적하면서 빠르게 부패된 시신을 대신하던 텅 빈 관보다 초상이 몸의 주인을 훨씬 유용하게 상징하게 되었다고 분석하며 초상 즉 이미지가 갖는 정치적 힘을 분석했다(Debray, 2011). 드브레는 교황이나 군주의 사후 초상화가 그를 대체해 권력의 상징으로 영향력과 힘을 발휘하는 사례들을 들어, 서구인에게 최고의 순간은 자신이 이미지로 표현될 때라며 초상이 갖는 영향력과 힘을 설명한다. 초상화가 권력을 가진 자의 죽음 이후 과거 살아있던 권력의 재현을 위해 그려진 점에 주목하면서, 초상화가 산 자와 죽은 자 사이, 인간과 신 사이에 존재하면서 가시적인 주체들을 구속하는 보이지 않는 권능적 속성을 갖고 있다고 본 것이다(Debray, 2011). 이처럼 성상과 같은 권력이나 권위를 재현하던 조각에 뒤를 이어 나타난 초상화는 대상이 갖고 있는 영향력을 이미지를 통해 행사한다. 몸의 주인을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얼굴에 초점을 둔 제이알의 작품은 소위 배제되거나 차별받는 계층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상징적 행위로서 국가나 주류 이데올로기에 의해 특정 정체성으로만 인식될 뿐인 개인들이 갖는 특이성을 가시화함으로써 주체로서 존재하게 한다.

또한 인물화는 풍경화와 함께 기독교적 신성이나 플라톤주의적 인간 형상에 대한 미화를 거부한다. 이름 없는 사람과 장소를 그림 안에 들여놓는 인물화와 풍경화가 보여주는 것은 영웅적 평범성이다(Debray, 2011). 초상화를 신성의 맥락에서 자유로워진 독립된 장르로서 중세를 지배하던 권위에 대한 거부이자 개인의 등장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면, 제이알의 초상 역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파편화되고 몰 개성화되어 소비자, 노동자, 이주자 등 집단의 정체성만으로 존재하는 개인의 특이성을 수면위로 끌어올려 주체로서 존재하게 하고 스스로 주체성을 논증하도록 한다.

제이알 작품에서 얼굴 초상이 갖는 정치성은 레비나스의 얼굴과 주체성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레비나스에게 얼굴은 나 자신과 나의 동일성/정체성을 문제시하게 만듦으로써 동일자와 타자 사이에서 ‘차이’가 드러나는 곳이며(조종화, 2014),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타자의 얼굴을 인식하는 것은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된다. 레비나스에게 있어서 얼굴은 이미 언어이며, 명확히 발음된 단어들에 앞선 ‘근원적 언어’이자 모든 가치와 선의 근원이자 일자와 타자 사이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을 통해 동일자의 자기 분열, 즉 주체의 분열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는데 제이알의 사진 초상 작업은 이러한 주체의 분열 과정으로서 타자와의 관계 설정을 보여주는 정치적 의미를 갖게 된다.

레비나스의 이러한 주체의 분열, 어떤 한계나 결점을 넘는 것은 타자의 인식에서 시작된다. 레비나스는 타인의 얼굴의 출현이 곧 윤리적 사건(Levinas, 2018)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제이알의 얼굴 초상 작업은 레비나스의 얼굴에 대한 논의를 통해 설명해 볼 수 있다. 타인이란 나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으로 나의 사고 체계, 맥락 안에서 이해될 수 없는 존재다. 현상학의 관점에서 사물을 이해하는 것이란 내가 구축해 온 맥락과 지평, 그리고 의미 전체에서 의미를 가질 때라면, 타자라는 것은 그 모든 맥락을 떠난 의미화 안에 존재하며, 타자성은 동일성에 결코 포섭되거나 환원되지 않는다. 따라서 얼굴의 현현 즉 드러냄은 나의 의미세계를 벗어나는 것이고 계열화된 사고를 벗어던지는 일이 된다. 정치적 실천을 기존의 가치 체계, 편견, 선입견을 깨고 새로운 사유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제이알의 사진 초상은 얼굴을 드러내고 타자성에 대한 인식을 통해 새로운 사유 체계를 만드는 사회적 실천으로서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타자의 등장은 자아의 폐쇄성을 뛰어넘어 타자와 세계에 대해 직접적으로 자아의 의식을 개방하는 것을 말한다. 레비나스는 주체성을 ‘향유, 노동, 거주, 인식 등에서 형성되는 자기성 또는 내재성으로서의 주체성’과 또 하나는 ‘타자와의 윤리적 관계를 통해 얻어 지는 주체성’으로 구분해 제시하고 있는데, 개인은 타자와 관계를 통한 주체성 즉 타자를 받아들이는 ‘환대로서의 주체성’ 획득을 통해 세계와 관계를 맺고 즐길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타자를 받아들이는 것이 주체화의 과정이며 이는 향유에 기원을 둔다고 설명한다(강영안, 2005). 레비나스는 음식이나 대화, 옷이나 생각 등 일상생활의 요소들은 그 기능이나 유용성의 관점에 따라 평가할 수 없고 그 자체가 즐김 즉 즉 향유의 대상이라고 바라보면서 이러한 일상적인 것들의 향유를 통해 개인의 주체가 드러난다고 본다.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내가 즐기고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고, 그러한 즐기는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이다. 주체란 ‘향유의 개별성’을 통해 성립되며 이러한 향유의 분리를 드러내는 것을 통해 다른 주체와 구분된다고 보면서, 주체란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즐김을 드러내는 것 향유를 통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Levinas, 2018).

결국 레비나스가 보는 주체화 과정은 좋고 싫음이라는 감각의 과정이이고, 이는 랑시에르의 ‘감각의 분할’ 개념과 맞닿아 있으며 들뢰즈가 말한 ‘차이를 통한 생성’ 개념과도 유사하다. 레비나스의 논의를 따르면 개인은 나의 감각을 통해 즉 향유를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고 타자와 구분되는 주체로서 존재하게 된다.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은 내가 먹고 대화하고 생각하는 것이며, 이런 나와 다른 내가 향유하지 못하는 즉 감각하지 못하는 다른 사유 체계 안에 존재하는 타자의 등장을 통해 나는 나와의 동일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개인은 저마다 향유의 주체로서 종족, 혈통, 사회집단, 또는 누구와의 관계로 환원될 수 없다. 개인이 주체로 살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향유를 통해 주체성을 확립할 때이며, 인간은 이러한 개별화의 원리를 따라 자기를 실현하고 그 가운데에서 타인들을 만난다(강영안, 2005).

제이알의 사진 초상 작업은 얼굴을 통해 주체성을 확립하게 된다고 본 레비나스의 논의를 통해 설명할 수 있다. 레비나스에 따르면 얼굴은 그 자체로 유일한 것으로서 예측이나 표상이 불가능하다. 얼굴은 내면으로 환원할 수 없는 외재성 그 자체로 사람들은 타인의 얼굴을 인식하는 과정 즉 타자화를 통해 무한성을 인식하고 관계 속에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레비나스에게 타자의 얼굴은 우리 ‘밖에서’ 우리의 유한성의 테두리를 깨뜨리고 우리의 삶에 개입하게 한다(강영안, 2005). 이는 곧 얼굴을 통해 익명의 존재들이 실천적 주체로서 세계와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어떤 편견이나 계열화가 만든 종족, 집단 등의 정체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주체로서 자립성을 확립하게 되고 자기를 실현할 수 있게 되는 데에 얼굴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얼굴은 현실 가운데서 매우 특이한 현상으로 얼굴의 현현은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또는 심리학적 지시 체계로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의미를 지님으로써 익명의 개인이 고유한 존재로 개별성을 획득하게 한다(강영안, 2005). 개인의 얼굴 사진을 찍고 크게 확대해 누구나 볼 수 있게 하는 제이알의 작업은 사진을 찍히는 사람들로서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과정이자 찍힌 자신의 사진을 보며 자신 안의 타자를 분리해서 바라보는 기회로 작용한다. 개인은 포스터로 인쇄된 자신의 얼굴을 보고 타자화 된 자신을 인식하고, 또 거리의 사람들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내가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존재의 존재 즉 무한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진 속 인물들 즉 타자의 얼굴을 보며 존재의 익명성으로부터 벗어나 자기성, 자립성, 혹은 주체성을 확립하기도 하지만, 레비나스가 얼굴의 현현의 주목했던 것처럼 타인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면서 인간의 보편성과 평등의 차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제이알의 얼굴 초상 사진 작업이 갖는 정치성은 가타리(Felix Guattari)의 주체 개념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가타리는 사람들을 흑인 또는 백인, 여성 또는 남성 등의 범주로 환원하려는 것은 선입관 즉 이원론적 환원과정을 통해 우리의 권력을 이들에게 행사하려는 욕구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주체의 특이화를 통한 사회적 실천을 주장한다(Guattari, 1977). 제이알의 작업은 가타리의 논의에 근거해 보면 집단의 정체성의 범주로의 환원을 거부하고 특이성의 주체로 솟아오르는 과정으로서 볼 수 있다. 특히나 제이알 작품의 얼굴은 무표정한 얼굴이 아니라 일부러 얼굴을 변형시킨 표정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언급한 얼굴성의 해체(Deleuze & Guattari, 2001)와 연결해 이해할 수 있다. 제이알의 사진 초상 속 얼굴은 혀를 내밀거나, 아래 눈꺼풀을 잡아당기는 등 일부러 우스꽝스럽거나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그림 4>, <그림 5> 참고). 혹은 얼굴 중에서도 눈만을 부각해 표현하고 있기도 한데 이는 들뢰즈가 얼굴을 ‘의미 생성의 벽’으로 표현하며 얼굴에 담긴 지배적 기표작용을 비판한 논의를 통해 그 정치적 함의를 파악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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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28 Millimètres, Face 2 Face, Holy Triptych,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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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28 Millimètres, Face 2 Face, Boxer and Soccer player,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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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알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공감할 수 없는 이해불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양쪽 지역에서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 초상을 제작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분리장벽에 전시하는 프로젝트 <Face 2 Face>를 추진했다. 이는 기존의 통념화되고 계열화된 의미체계를 따르지 않는 신체성을 논하며 권력의 배치물이 강조하는 의미의 공간으로 얼굴을 언급했던 들뢰즈의 분석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이알의 작품 속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두 지역에 사는 동일 직업의 사람들이 동일한 표정으로 일그러뜨린 얼굴은 개인은 민족, 직업, 성별, 지위 등 특정 정체성으로 덧코드화되지 않으며, 얼굴 역시도 “검은 구멍과 흰 벽으로 된 기계”(Deleuze & Guattari, 2001)일 뿐으로 정체성으로 계열화된 코드를 탈주하는 공간으로서 실천성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천개의 고원>에서 기관 없는 신체 개념을 논의하는 연장선 상에서 의미 생성과 주체화를 얼굴을 통해 분석한다. 의미생성과 주체화를 강요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권력 배치물들(Deleuze & Guattari, 2001)이라고 보고 얼굴에 부여된 코드화와 덧코드화를 지적한다. 즉, 우리가 개인을 인종이나 성별, 지위 등 통념에 따라 판단하고 규정짓고 있다면 이미 얼굴은 두 개의 검은 구멍과 흰 벽이라는 얼굴 기계가 아니라 권력의 배치물의 권력 관계가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고 그러한 배치관계를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얼굴을 의미 작용의 공간으로 보면서 이러한 기표화 과정을 얼굴화로 설명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얼굴을 “구멍-표현들, 구멍 뚫린 표면”으로 설명하며 머리와도 구분한다. “얼굴은 표면이자 하나의 지도로서 머리를 포함해 몸체가 탈코드화되고 ‘얼굴’이라 불리는 어떤 것에 의해 덧코드화 되어야만 할 때 얼굴이 생산된다”(Deleuze & Guattari, 2001: 326)는 언급은 얼굴이 의미 작용의 공간으로써 권력 관계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얼굴을 ‘잉여’로 설명하는 것도 얼굴에 덧코드화되는 기표화 작용에 대한 언급이라고 볼 수 있다. 얼굴을 통해 권력의 배치물들은 의미 생산을 하고 따라서 얼굴은 보편적일 수가 없다. 얼굴화를 통해 나타나는 개별화, 정체성 등은 권력의 계열화를 통한 의미 생산 결과물이고 얼굴 역시 그러한 탈영토화, 재영토화가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 표면으로서의 얼굴이 매끄러운 공간이라면, 기존 의미 체계로 계열화된 얼굴, 즉 누구 혹은 무언가로 집단의 획일화된 특질로 환원된 얼굴은 홈 패인 공간, 재영토화된 공간인 것이다. 얼굴은 흰 벽과 검은 구멍이라는 추상화 기계이기도 하지만 권력의 배치물들이 필요에 따라 만들어내는 의미 작용이 특정 정체성으로 계열화된 얼굴화를 일으킨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언급한 얼굴화는 제이알이 사람들의 얼굴을 정면으로 그대로 찍어 전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이알은 언론에 비춰진 빈민가 청년들의 얼굴에서 계열화된 권력 관계와 의미 작용을 보았고 그러한 언론의 얼굴화 작용을 비판하고자 한 것이다. 남자와 여자, 주인과 하인, 성인과 아이 등 다른 얼굴과의 일대일 대응을 통해 사람들을 인식하는 도식화된 이분법적 사고를 벗어나 얼굴성이라는 추상적 기계라는 보편성을 가진 존재로 드러나게 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얼굴화라는 것은 인종주의, 부자와 빈자, 남성과 여성 등의 코드가 덧코드화되는 것이고 얼굴화는 계열화된 의미 작용의 결과이자 권력 배치물들의 강요에 의해 나타난다. 사람들의 얼굴을 덧코드화된 방식으로 읽고 그의 정체성을 판단한다는 것은 권력의 배치 관계를 통해 기표화된 의미를 읽는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얼굴화에 나타난 의미 작용 체계를 벗어나는 것은 새로운 의미 생성을 위한 실천으로서 정치적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제이알이 사람들의 얼굴을 그대로 사진에 담고자 했던 것은 그저 피부라는 표면 위에 눈과 코와 입을 가진 보편성을 드러내고자 한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들뢰즈는 “얼굴은 하나의 정치”로 언급하며, 얼굴을 포함한 우리 신체에 독재적으로 의미생성과 주체화를 강요하는 권력 장치를 분석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아시아인, 흑인, 또는 인디언적인 의미생성의 독재적인 구성체들이 있다. 한편 주체화의 권위적 과정은 유대 민족의 운명에서 가장 순수하게 나타난다. 주체성의 씨앗을 포함하지 않은 의미생성은 없다. 기표의 잔재들을 끌고 다니지 않는 주체화는 없다”(Deleuze & Guattari, 2001: 347)고 언급하며 계열화된 의미 체계로서의 얼굴이 아닌 다양체로의 얼굴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탈기표작용, 탈주체화, 얼굴해체의 과정들을 긍정적인 탈영토화로 언급하며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예술은 결코 목적이 아니라 삶의 선들을 그리기 위한 도구”이고, 예술은 능동적인 도주로서 실재적 생성을 만들어낸다. 분열증 환자들의 얼굴에서는 지배적인 기표작용들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며, 기존의 가치, 의미작용, 권력 관계의 체계를 벗어나려는 해체의 과정으로서 얼굴이 곧 정치가 된다고 주장한다. 얼굴은 직사각형이나 동그라미 안에 특징들 전체, 포섭해서 의미생성과 주체화에 이용할 얼굴성의 특징들을 취한다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Deleuze & Guattari, 2001). 들뢰즈와 가타리는 얼굴이 탈영토화와 재영토화가 일어나는 공간으로서 얼굴을 해체하는 것 역시 정치가 되고, 실재적 생성들이 된다고 본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얼굴 해체하기란 기표의 벽을 통과하기, 주체화의 검은 구멍에서 빠져나오기와 같은 것이고, 따라서 분열분석의 프로그램은 당신의 얼굴들을 인식하는데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모든 기억, 모든 지식작용, 가능한 모든 기표작용과 주어질 수 있는 모든 해석을 무화시키는 탈의미 생성의 선을 긋기”가 바로 얼굴 해체하기이며, “의미생성의 벽을 관통하고 주체화의 구멍들에서 분출”하기가 곧 탈얼굴화이다(Deleuze & Guattari, 2001). 즉 얼굴에 부여된 이분법들, 이항성들, 양극적 가치들을 거부하고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제이알의 초상화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얼굴들은 바로 이처럼 탈얼굴화된 얼굴이자 그러한 초상화사진을 만드는 과정은 얼굴 해체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제이알의 벽화에 표현된 얼굴은 소위 ‘일반적’, ‘평범한’, ‘보통의’라는 ‘으레 그럴 것이다’라는 통상적 가치평가를 거부하는 듯 보인다. 사진 속 얼굴들은 혀를 내밀거나, 눈을 찡그리고, 또는 짐짓 험상궂은 표정을 짓거나 익살을 부린다. 나이, 성별, 직업, 거주지 등 개인의 정체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의미 생성의 벽을 통과해 각자의 개성을 표출한다. 바로 주체화의 검은 구멍 즉 통념에 의해 주어진 정체성을 거부하고 새로운 의미 생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제이알의 얼굴 초상은 재현에 초점을 둔 판에 박힌 진부한 이미지가 아니다.

제이알의 사진 그라피티 속 큰 얼굴 초상은 “말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Orpana, 2014). 제이알 인물 초상 속 얼굴들은 기존의 의미 체계를 거부하는 생성으로서 특이성을 떠오르게 하는 표면이 된다. 인물 초상의 얼굴은 특정 무리의 정체성으로 구획화된 공간이 아니라 모종의 모호한 “마주침의 공간”으로서 기표의 공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기호의 공간이다. 또한 얼굴 초상의 이미지는 기존의 통념을 드러내는 클리셰로서의 이미지가 아니라 사유하게 하는 이미지로서 새로운 의미 생성을 하는 실천이 된다.

제이알의 인물 초상은 정면 사진을 통해 계급적 정체성이 아닌 개인의 삶과 대면하도록 함으로써 개인의 주체화 과정으로 작용하고 따라서 정치성을 갖는다. 손탁은 <사진에 관하여>에서 사진에 드러나는 계급성과 주체화의 문제를 분석한다(Sontag, 2005). 손탁은 인물 사진을 찍는데 집중해왔던 독일의 사진작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의 작품이 기존의 권력 구조와 가치체계로 전형화된 인물 사진의 원형이라고 설명하면서 인물 사진을 통해 드러날 수 있는 계급적 정체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모든 종류의 인간 군상을 찍겠다는 목적으로 인물 사진을 찍어왔던 잔더는 ‘카메라는 얼굴이 일종의 사회적 가면’이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그의 사진 속에서는 인물들이 속한 계급, 생업, 직업 등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기호들을 의도적으로 배치했다. 부유한 전문직 종사자들의 경우 실내에서 아무런 소도구 없이 인물만을 부각시켰으나, 노동자들은 야외에서 배경을 꾸미고 찍었다.

손탁은 이를 잔더가 중류 계급 이상은 배경이 중요하지 않을 만큼 자신의 독립된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노동자들이나 낙오자들은 정체성을 가질 수 없다는 듯이 취급했기 때문이라고 분석(Sontag, 2005)하고 있는데, 이는 제이알의 인물 초상과 대척점에서 인물 사진이 가질 수 있는 얼굴성을 반증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잔더는 인물의 얼굴 자체에 계급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르주아 계급의 정체성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배경 없이 인물 사진만 찍었던 것이고, 제이알은 얼굴엔 그러한 계급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잘못된 편견이나 통념을 드러낼 수 있는 맥락이 드러나지 않도록 얼굴 표정에 집중했던 것이다.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 작품에서도 장애인, 정신병 환자, 나체주의자, 기형, 성소수자 등 소외된 사람들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에 정면 사진이 활용되고 있다. 사진 속 인물들 역시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으며, 아버스는 소위 정상이라는 기준 바깥에 존재하는 소외된 이들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갇히지 않고 자신 그 자체로 드러나게 하고자 카메라의 정면을 응시하도록 했다(Sontag, 2005). 손탁에 따르면 아버스는 이들 소외된 사람들을 동정이나 비난, 멸시가 아닌 그 자체의 존재로 드러나길 바랐고, 이들의 존재를 사진을 통해 표면 위로 드러나게 함으로써 비로소 실재할 수 있게 했다. 아버스의 사진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분할의 명확한 경계선을 통해 은폐되었던 존재들을 드러냄으로써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흐리게 하고 있으며, 제이알의 인물 초상 속 이미지들도 분할의 경계선을 솟아오르는 특이점으로 기능한다고 볼 수 있다.

Ⅳ. 나가며

자본주의 체계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강력한 추세 속에서 사람, 상품, 관념, 정보를 넘어 우리의 경험, 느낌 그리고 감각까지도 국경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운동하도록 강제한다. 권력의 지배 양상이 미시적 형태를 띠면서 혁명과 저항의 양상 역시 미시적이어야 한다는 논의 속에서 예술 혹은 일상의 저항과 실천이 갖는 잠재력에 대한 논의는 랑시에르를 위시해 미학을 정치와 연결해 설명하는 여러 실천적 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하지만 여전히 예술이나 일상의 실천들이 정치적 행위로서는 한계를 갖는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며, 그러한 실천이나 정치를 주장하는 이론들은 현실과 괴리가 있는 사변적 주장으로 간과되기도 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상황에서 미학을 곧 정치로 보며 예술과 일상에서의 다양한 실천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주장한 랑시에르의 논의를 실제 예술 사례에 적용해 살펴보고자 했다. 미학이 실천이 될 수 있는 이유를 사유의 전복성이 갖는 정치적 함의에서 찾고 그러한 실천이 일상의 수준에서 드러난 사례로 제이알의 거리 예술 프로젝트에서 살펴보고자 한 것이다.

사진을 활용해 주변 공간 콜라주를 시도하는 제이알의 작업은 사진으로 기억된 장면들의 의미와 공간이 갖는 의미를 다시 조합하고 새롭게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창출한다. 마치 도시 공간에서 영화의 편집이나 몽타주 기법과 유사한 효과를 냄으로써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랑시에르는 작가의 의도가 강하게 담긴 회화와 달리 사진 이미지에는 작가의 의도가 아닌 부분들까지 담길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관객의 의미 해석의 여지도 높아진다(Ranciére, 2012)고 분석하고 있는데, 제이알의 사진은 그 어떤 지시 작용을 하거나 재현하지 않고 관람객 각자가 직접 감각하고 사유할 수 있도록 한다. 예술을 “공동체의 의미를 기입하는 형태”로 보고 이 형태들이 사회 구조 또는 운동을 반영하는 방식을 규정한다고 보는 랑시에르의 논의를 따르자면 제이알의 사진 작업은 공동체의 의미를 기입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제이알의 거리 예술에 등장하는 인물 사진은 제이알 스스로도 밝히고 있듯이 ‘인물 각자가 가진 서사’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둔 것으로 작가가 그 인물 피사체에게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읽었는지 그 의도나 관점은 잘 드러나지도 않을 뿐더러 중요하지도 않다. 의상이나 화장 등 최소한의 설정도 없이 인물 그 자체의 얼굴을 찍은 사진에서는 피사체가 된 인물 스스로가 만들어낸 표정으로 이야기할 뿐, 작가만의 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제이알의 거리 사진들은 사진작가가 갖는 관점을 넘어 사진에 찍히는 피사체 스스로가 의도한 표정 즉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다양한 의미 생산의 가능성을 더욱더 열어 놓는다고 볼 수 있다.

제이알은 평범한 개인들이 사진을 찍고 전시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고정된 정체성을 탈피하고 스스로 다양한 정체성을 실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거리를 걷는 일상적 행위를 통해 내 삶을 지배하는 논리에 문제 의식을 가지고 그 의미를 다르게 사유할 수 있다면 주체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실천이란 지배적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문제제기하고 바꾸어나가는 삶을 사는 일이며, 제이알의 거리 예술 사례는 이러한 정치가 일상의 예술을 통해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Notes

* 본 논문은 양소연의 2022년도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추가 연구해 작성한 것임.

2) CBS 60mits 앤더슨 쿠퍼 인터뷰 내용 참고, https://youtu.be/SNcwspO7sWE

4) 출처: 알자지라 방송 인터뷰 내용, https://youtu.be/OtebT9KVuk8

6) 출처: 알자지라 방송 인터뷰, https://youtu.be/OtebT9KVuk8

7) 출처: <60minutes overtime> 앤더슨 쿠퍼(Anderson Cooper)와 인터뷰, 2018년 2월 25일, https://youtu.be/SNcwspO7sWE

9) 알튀세의 주체 없는 과정으로서의 정치란 정치적 실천을 이데올로기적 실천이나 과학적 실천과 구별하고 모든 과정이 관계 아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알튀세는 이데올로기란 개인을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장치들에 종속시키는 주체 관념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보고 이를 주체의 호명이라는 주제로 논의한다. 장치들로부터 물질성을 제공받는 이데올로기는 국가적 관념이며 정치적인 관념이 아니라고 본다. 알튀세의 의미에서 주체란 국가의 기능이므로 정치적 주체는 존재하지 않는다(Badiou,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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