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한국에서 2009년 <슈퍼스타 K>를 시작으로 <위대한 탄생>, <쇼미더머니>, <프로듀스101>,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등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을 통해 대중문화 영역에서 대중들에게 지속적인 인기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러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은 대중문화를 포함한 산업, 정치 등 다양한 사회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대중적 성공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존재한다. 신자유주의적 경쟁과 승자 독식의 이데올로기가 내포되어 있는 ‘서바이벌’요소, Zizek이 주장한 자본이 제공하는 향락의 ‘이데올로기적 환상’개념이 내포된 누더기에서 부자의 ‘신데렐라 신드롬’ 요소, 출연자를 관음의 대상이자 관찰 대상으로 위치시키는 ‘리얼리티’ 요소 등이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포맷을 성공적으로 이끈 요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서바이벌, 신데렐라 신드롬, 리얼리티 요소들은 문자가 영상으로 전환된 서사 구조의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서사(narrative)는 다양한 콘텐츠의 토대를 이루는 중요한 형식이다. 서사 구조를 통해 대중들은 콘텐츠에 관해 관심을 가지기도, 콘텐츠로서의 가치를 논하기도 한다. 대중문화 텍스트는 서사 코드와 영상언어 코드가 접합된 서사구조의 텍스트이다. 따라서 시각화되는 서사소를 기반으로 형성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영상’ 또한 ‘문자’와 마찬가지로 분석의 대상이 된다. TV 프로그램의 서사 분석은 주로 채트먼(S. Chatman)의 서사 분석, 그래마스(J. Greimas)의 기호학 분석, 토도로프(Todorov)의 통합체 분석 등의 구조주의 서사분석 혹은 조셉 캠벨(J. Campbell)의 영웅의 19단계 여정, 노스럽 프라이(H. Northrop Frye)의 신화 분석 등의 신화 원형 서사분석이 사용되어 왔다. 대중문화로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많은 기존의 연구들 또한 구조주의 서사 이론을 사용하여 분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정민희, 2011; 함현, 2012; 김영찬·김지희, 2012; 강대한·정운갑, 2017).
본 연구에서는 원용진(2019)에 의해 수정된 대화주의 서사학으로 분류되는 미하일 바흐친(M. Bakhtin)의 크로노토프 서사 분석 방법을 통해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텍스트를 분석함으로써 서사물 장르와 사회의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점을 탐색하고자 한다. 오디션 서바이벌 TV 프로그램이 지닌 크로노토프를 분석함으로써 오디션 서바이벌 TV 프로그램의 크로노토프가 시청자, 더 나아가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이끌어낼 수 있다.
II. 이론적 배경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혹은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 오디션 TV 프로그램 등으로도 불리는 TV 방송 프로그램 포맷은 2000년도부터 대중들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포맷 중 하나이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해 수용자들의 시청과 참여 동기, 서사적인 구조분석 등 다양한 선행연구들이 이루어져 왔다(정민희, 2011; 함현, 2012; 김영찬·김지희, 2012; 강대한·정운갑, 2017).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오래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꾸준한 인기를 얻어왔다. 2000년대부터 제작된 <슈퍼스타 K>, <위대한 탄생>, <K팝 스타> 등의 국내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2002년의 <American Idol>과 같은 서구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 중, 2009년 Mnet에서 방영된 <슈퍼스타 K>는 케이블 TV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매우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후 <슈퍼스타 K>의 시즌들과 <위대한 탄생>, <K팝 스타>, <쇼미더머니> 등의 다양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제작되었다.
이남미(2017)는 국내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크게 세 가지의 유형으로 나누어 분류하고, 살펴보고자 하였다. 제1유형으로는 ‘일반인 대상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제2유형으로는 ‘가수 대상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제3유형은 ‘일반인과 가수가 협업하는 형태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분류하였다. 본 연구에서 다뤄질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바로 제1유형인 ‘일반인 대상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고자 한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국내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1970년대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1977년 MBC의 <대학가요제>를 시작으로 1979년 TBC의 <해변가요제>, 1979 MBC의 <MBC FM 강변축제> 등이 제작되었는데, 해당 프로그램들은 현재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다양한 부분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1970년대의 프로그램과 2000년대 이후 프로그램 간의 차이는 시대적 흐름을 살펴봄으로써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의 1970년대는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정책 아래 급속히 진행된 산업화 시기였다.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큰 인기를 누린 대학가요제는 1975년 12월 터진 연예계에서 가수들의 대마초 혐의 사건을 통해 그들의 음악을 퇴폐적이고 건강하지 못하다는 담론을 형성하고자 대학생들을 주체로 삼았다. 지배 권력은 대마초 가수들의 반대편에 존재했던 대학생들을 주체 삼아 가수들의 대마초 합법화 주장 등의 정치적 저항에 대해 막고자 하였다. 대학가요제의 제작을 통해 기성 가수(퇴폐)와 대학생(건전)이라는 대립적 구도를 형성하였고, ‘캠퍼스’라는 물질적 장소를 통해 형성된 캠퍼스 밴드의 기수 형태 (예: 황소 82, 황소 85, 활주로 10기, 활주로 16기 등)를 통한 팀 이름 공유는 ‘팀워크’라는 이데올로기와 전통이 당시 산업화 시기의 포드주의적 방식과 맞닿아 있기도 하며, 제1회 대학가요제 시상내역을 통해서 보았을 때도 우승자에게만 상금 등의 보상이 집중되지 않은 산업화 시기의 경쟁은 경쟁자의 제거와 승자 독식만을 요구하는 구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신민희, 2018).
반면 탈산업화 시기의 <슈퍼스타 K>와 같은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나이, 성별, 국적 등 모든 요소에 제한을 두지 않고 대학생이라는 특정한 신분을 건전함으로 내세우던 것에서 벗어나 ‘대국민 오디션’이라는 홍보문구처럼 누구나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스타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또한 <대학가요제>가 본선 무대만을 방영했던 것과는 달리 <슈퍼스타 K>는 예선 무대부터, 무대 준비 과정, 세트장 밖 일상 인터뷰 등까지 촬영하며 무대 바깥의 서사를 도입시킨다. 따라서 일상 전체를 서사(노동)로 전환시킴과 동시에 일상에서의 모든 감정이 노동으로 전환되는 탈산업화 형식의 노동 형태를 띠게 된다. 심사위원의 방식 또한 두 시기에서 확연한 차이가 나는데, 산업화 시기의 <대학가요제>에서의 심사는 주로 음악 평론가, MBC 제작국 PD, 가수, 작곡가 등의 실력이 있는 전문가의 권위로부터만 형성되었다(이민철, 2006). 하지만 탈산업화 시기에서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심사에는 기존의 가수와 작곡가의 비율이 그대로 존재하지만, 특이한 부분은 심사위원에는 ‘시청자’라는 심사 단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청자의 투표 제도는 단순히 인기상을 위한 인기를 알아보는 척도가 아닌 일종의 공정성을 만들어 내는 장치로 작동한다. 즉, 자본의 결속이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바우만, 2010a, 2010b). 따라서 시청자 투표로 인해 경쟁의 구도는 참가자들만의 경쟁이라기보다 소비자로서의 시청자의 구매 욕구에 부합하기 위해 집중하는 경쟁 구도라고 볼 수 있다(신민희, 2018).
이와 같은 탈산업화 시기부터 제작된 국내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9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 대중문화 산업의 연예인 생산 및 관리 시스템에 새로운 시스템을 추가하게 되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거치기만 하면 일반인이 유명인(celebrity)으로 변하며 전국적인 스타가 생산되는 것은 신자유주의와 함께 새롭게 변신한 연예계의 풍경이라고 볼 수 있다(원용진, 2012a). 탈산업화 시기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신자유주의는 그야말로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산업화 시기의 권위주의 정권 당시 억압되었던 개인의 자율성과 자유주의적인 욕구가 신자유주의의 이념과 절묘하게 접합하며 탈산업화가 되었고, 접합된 결과물이 바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강력한 개인 사유 재산권을 보장함과 동시에 시장의 기능을 중시하며 경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장의 기능과 역할을 최상의 가치로 두는 체제이다. 신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개인이 지닌 자유와 자율성, 그리고 기업화이며 국민은 끊임없는 자기 주도적인 삶과 능력 계발을 통해 ‘경쟁력 있는’ 국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요소와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구조는 유사한 부분을 지닌다. 참가자들은 개인으로서 참가하며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전문가의 조언 수용과 자기 발전을 위한 노력, 그리고 특별한 아이디어를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각 참가자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최종 승리자가 되기 위해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모습을 보인다(류웅재·박진우, 2012).
2000년대 이후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드러나는 특징은 크게 장르적 특징, 서사적 특징, 판타지적 특징, 참여적 특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장르적 특징은 바로 혼성(hybridization)이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기존의 대결(contest) 장르와 리얼리티(reality) 장르가 접합된 혼성 장르(hybrid genre)이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장학퀴즈>, <도전 골든벨>, <전국노래자랑>과 같은 기존의 경연 장르가 지닌 ‘긴장감’과 리얼리티 장르가 지닌 ‘서사성’이 드러난다(원용진, 2012b; 최영준, 2015).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큰 보상이 걸려있는 만큼 경연에서 벌어지는 긴장감과 동시에 심사위원들의 담소, 참가자들의 대화와 갈등, 다양한 서사가 녹아있어 시청자들에게 하여금 재미가 더욱 더해진다. 특히, 기존의 경연 프로그램에 부가적인 요소로 더해진 리얼리티의 서사적인 요소에는 참가자의 과거, 가족사, 생활 등이 엮여진 담론(discourse)이 존재하고 있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드라마틱하게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담론을 통한 참가자의 캐릭터의 꾸밈이 중요하다. 또한 이야기(story)의 국내파 vs 해외파, 남성 vs 여성, 심사 위원 vs 참가자, 실력자 vs 비실력자 등의 이항대립성(binary opposition)과 ‘안정-불안정-안정’ 패턴의 배열을 통해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스토리텔링과 유사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특징이 존재한다(원용진, 2012b).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일반인 신분의 참가자가 무대에 올라 연예인이 되는 “누더기에서 부자되기”라는 공통적인 이야기를 지님으로써 시청자들에게 긍정적인 환상을 심어주는 판타지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Booker, 2004; 오미영, 2010). 신자유주의의 주요 특성 중 하나는 시장의 영역이 확장되어 모든 것을 시장 영역에 포섭시키는 ‘만물의 상품화’인데, 방송사들은 참가자들의 담론들로 구성된 서사의 상품화, 참가자들의 캐릭터 상품화를 통해 프로그램 자체의 상품성을 높여 이익을 거둔다(정진웅, 2014).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전화, 문자, 온라인 투표 등을 통한 시청자의 참여적 특징 또한 존재한다. 스마트 기기의 보급화로 매체의 연결이 수월해짐에 따라 재매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참여 의식을 높일 수 있었는데, 시청자들은 자신의 투표 행위를 통해 직접 스타를 만든다는 점에서 늘어져서 보기(lean back)보다 적극적인 보기(lean forward) 자세로 능동적인 수용자의 하이퍼텍스트 즐기기가 성립된다. 시청자들은 능동적인 행위를 통해 ‘팬덤’으로 확장되기도 하며 인터넷상에서 의견을 공유하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참여 모습을 보여준다(최영준, 2015). 능동적인 수용자 모습의 시청자 투표는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공정성’을 대표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시청자들 또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투명하고 공정한 규칙 적용에 대해 기대하는데(박신영, 2011), 김미영(2012)은 프로그램에서 이루어지는 심사평가의 전 과정이 객관적이지 않으며 공정성은 과장된 서술인 것으로 지적하였다. 정진웅(2014)은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공정성의 원칙은 단순하게 표방되는 것일 뿐 철저히 지켜지지 않으며, 실질적으로는 일종의 신화라고 제시한다. 또한 그는 이러한 공정성 경쟁의 신화는 신자유주의식 경쟁 구조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장치이기 때문에 방송사는 불공정성의 핵심을 은폐하고, 정당성 유지 신화를 고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본 연구에서는 탈산업화와 신자유주의 사상과 맞물려 제작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서사적인 특징에 초점을 맞추어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지니고 있는 의미와 공통적인 장르적 특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해당 장르가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에 대해 크로노토프 분석법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서사는 시공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크로노토프(chronotope)는 고전 서사학의 해설 이론에서 대화주의 서사학으로 분류된다. 크로노토프는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모스(chromos)와 장소를 의미하는 토포스(topos)가 접합된 합성어로, 러시아의 사실주의 문학이론가인 바흐친의 <소설 속의 시간과 크로노토프 형식: 역사적 시학을 위한 소고> 논문을 통해 처음 제시된 개념이다. 바흐친은 칸트를 비롯해 아인슈타인의 시공성, 우흐톰스키 등의 이론들을 활용하여 크로노토프 이론을 정립하였다. 바흐친의 정의에 따르면 크로노토프는 “공간적 지표와 시간적 지표가 용의주도하게 짜인 구체적 전체로서 융합”, 즉, 크로노토프는 서사 내 예술적으로 표현된 시간과 공간의 연관성을 일컫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바흐친, 전승희 외 역, 1998). 크로노토프의 종류는 바흐친과 레딘(Ladin)을 비롯한 후속 연구자들에 의해 미시적(micro), 지엽적(local), 도미넌트(dominat), 장르적(generic), 플롯공간(plotspace)으로 분류되었다(Bemong et al., 2010).
미시적 크로노토프는 크로노토프적 상향식 독해의 첫 단계이다. 미시적 크로노토프는 문장보다 작은 단위인 개별적인 단어와 구절로부터 생성되는 크로노토프로 언어의 작은 부분들은 함축된 크로노토프를 지닐 수 있으며, 크로노토프적 에너지로 채워진 단어들은 함축된 크로노토프의 지속적이고 일관된 흐름을 형성할 수 있다(바흐친, 전승희 외 역, 1998). 라딘(Ladin)에 따르면 크로노토프적 에너지는 개별 단어들이 지닌 원심적인(centrifugal) 힘과 일관된 의미를 지향하는 구심적인(centripetal) 힘 사이의 긴장으로 발전된다. 미시적 크로노토프는 원심적인 특징을 가진 서정시에서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는데, 서정시의 기법인 행, 운, 율, 문법 불완전, 비통사적 합성어, 줄표(-) 등이 크로노토프의 함축인 원심적인 힘을 더해준다. 그리고 원심적인 힘은 크로노토프의 함축을 제거해주는 구심적인 힘에 의해 크로노토프적 상향식 독해의 두 번째 단계인 지엽적 크로노토프로 통합된다(Bemong et al., 2010).
지엽적 크로노토프는 단일 작가의 전체 문학 작품, 혹은 단일 작품 내에서 부여된 수많은 하위 크로노토프가 포함된 크로노토프들이 존재하는데 크로노토프들은 서로 접합, 절합되기도 하며 대립하거나, 대체되거나, 공존하는 등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크로노토프이다. Ladin에 따르면 지엽적 크로노토프는 반복적인 시공간적 지표의 제시, 공간 영역에서 존재하는 시간적 지표를 구체화함에 따라 서사를 구성하는 핵심 사건의 구체적인 재현, 물질적인 비유에 빗댄 추상적인 개념의 제시를 통해 의미가 생긴다. 특히 지엽적 크로노토프의 중요한 특징은 상호작용이 대화적이라는 점이다. 로컬(지엽적) 크로노토프를 찾는 작업은 사건을 구성하는 시공간의 교차점으로 시공간 내의 가시화 방식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Ladin, 1999). 바흐친은 로컬(지엽적) 크로노토프의 다섯 가지 하위 크로노토프로 ‘길의 크로노토프(The encounter on road Chronotope)’, ‘고딕 성의 클로노토프(The Gothic castle Chronotope)’, ‘응접실 혹은 살롱의 크로노토프(The parlor or the salon Chronotope), 지방도시의 크로노토프(The provincial town Chronotope), ‘문턱의 크로노토프(The threshold Chronotope)’를 제시하였다(바흐친, 전승희 외 역, 1998). 길의 크로노토프와 응접실 혹은 살롱의 크로노토프는 등장인물간의 대면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자 사건이 구체화되거나 해결되는 서사 속 핵심 장소이다. 길의 크로노토프에서 우연이라는 초자연적인 힘이 발생했다면, 응접실의 크로노토프에서는 필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박진후·임대근, 2020).
크로노토프적 상향식 독해의 세 번째 단계인 지배적 크로노토프는 서사의 텍스트 내에서 발생하는 지엽적 크로노토프 간의 경쟁 및 관계를 통해 나오며 지엽적 크로노토프를 통합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지배적 크로노토프는 크로노토프간의 상호작용이 독자에게 중요한 인상을 남길 때 생성되는데, 지배적 크로노토프는 지엽적 크로노토프의 통합을 통해 독자가 작가 혹은 독자의 세계로 진입하는 초주제적 크로노토프가 된다. 장르적 크로노토프는 크로노토프적 상향식 독해의 제일 위 단계에 해당하며, Ladin에 따르면 장르적 크로노토프는 지배적 크로노토프를 개별적인 작품들로부터 추출하여 작품들을 범주화시키고 비교할 수 있는 역할을 하는데, 이것은 바흐친이 언급한 “문학의 형식적 구성범주”이자 장르를 분류시킬 수 있는 크로노토프라고 정리할 수 있다(바흐친, 전승희 역, 1988). 플롯 공간의 크로노토프는 Keunen에 의해 장르적 크로노토프를 더 추상적인 단계로 나눈 크로노토프이다. 플롯 공간의 크로노토프는 허구 세계의 추상적 전체 내에서 “목적론적 크로노토프”와 “대화적 크로노토프”를 지니고 있는데, “목적론적 크로노토프”는 전체적인 서사가 최후를 향해 전개해 나가는 전통적인 서사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위 크로노토프로 ‘임무의 크로노토프, 재생의 크로노토프, 타락의 크로노토프’가 존재한다. “대화적 크로노토프”는 갈등의 사건 속에서 인물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교차점을 구성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하위로 ‘비극적 크로노토프, 희극적 크로노토프, 희비극적인 크로노토프’가 존재한다 (Keunen, 2000). 바흐친과 레딘(Ladin)을 비롯한 후속 연구자들에 의해 분류된 크로노토프의 종류는 다음의 <표 1>과 같다.
바흐친이 제시한 크로노토프 개념은 범위가 방대하고 추상적이기 때문에, 일관성 있게 적용되는 방법론을 구성하기는 쉽지 않다. 국내 크로노토프 연구에서는 주로 국문학 분야에서 작품에 대한 크로노토프들을 찾아내고, 작품은 전체를 파악하는 연구들이 주로 이루어져 왔다(김병우, 2001; 이소운, 2007; 정은주, 2020; 최순종, 2021; 조미숙, 2021). 영상 텍스트에 크로노토프를 적용한 국내 연구로는 먼저 박진후·임대근(2020)의 크로노토프 연구가 있다. 박진후·임대근(2020)은 영화 <기생충>에 나타난 지엽적 크로노토프인 길의 크로노토프와 살롱의 크로노토프를 통해 분석함으로써 ‘봉준호 장르’라는 새로운 한국적 장르 영화의 형성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한 바 있다. 원용진 외 3인(2019)은 드라마의 개별 텍스트와 장르의 크로노토프를 체계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크로노토프 분석 방법론을 제시하며, 메디컬 드라마의 크로노토프에 대해 분석하였다. 서사물의 일반적 크로노토프를 찾아내 분석하는 작업이 서사물과 사회의 공명 과정을 밝히게 된다는 바흐친의 주장을 기반으로 그는 먼저 라딘의 상향식 크로노토프 독해 방법과 토도로프의 시퀀스 분석법을 바흐친적 의미의 사건을 밝혀내는 데 제한적으로 활용하여 지엽적 크로노토프를 밝혀내고, 공통성을 종합하여 각 드라마의 지배적 크로노토프를 읽는 작업을 하였다. 그리고 각 드라마의 지배적 크로노토프들의 공통된 시공간적 토대인 일반적 크로노토프와 공명하는 사회, 시대적 크로노토프를 파악하여 해당 장르와 공진화를 읽어내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였다.
바흐친이 프로이트주의, 형식주의, 구조주의를 비판하고, 특유의 패러다임을 확립한 부분에 있어 바흐친의 크로노토프와 토도로프의 시퀀스 분석을 함께 사용하는 부분에 대해 의아함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바흐친의 저작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에서는 바흐친은 구조주의와 마찬가지로‘언어의 편재성’을 받아들인다. 바흐친 학파는 사실상 프로이트주의, 형식주의, 구조주의 언어의 ‘편재성’,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 사회성, 역사성이 결합된 혼합물이라고 볼 수 있다. 바흐친과 후기구조주의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바흐친이 마르크스주의와 언어를 접맥시킨 부분이다(최진석, 2011). 바흐친 학파는 소쉬르와 반대 입장의 볼로쉬노프가 주장한 언어의 가변성에 대해 받아들이며, 구조주의자들과 차별화를 위해 ‘언어’가 아닌 ‘말’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말’이란 사회변동의 가장 민감한 지표이자 사회변화의 단계들을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데, 바흐친 학파는 구조주의자들이 무시한 개별 발화를 사회적 삶의 물질적인 장으로 복원시켜 보고자 했다. 또한 바흐친은 지배계급은 말의 다강세성을 억압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의들은 바흐친의 다성성, 카니발 개념으로 발전되는데, 다성성, 다강세성 개념은 미결정성 개념으로 확대 해석되어 포스트구조주의로 전유되기도 한다(이기웅, 2001).
이러한 바흐친의 대화주의 이론에서 설명되는 이어성과 다성성은 상호텍스트성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근원이라고 할 수 있다. 바흐친의 다성성 개념은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스트 크리에스테바에 의해 상호텍스트성이라는 용어로 변화된다. 토도로프 또한 바흐친의 이론을 설명하면서, 크리에스테바의 상호텍스트성 용어를 빌려 함께 사용하게 된다. 토도로프는 바흐친의 대화이론이 상호텍스트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서정시의 경우도 모든 담론의 언어적인 재현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바흐친의 크로노토프 분석과 토도로프의 텍스트 분석 또한 상호텍스트성을 고려하는 분석법이라고 볼 수 있다(김영란, 2014; 서정철, 2001; 김도남, 2000). 비록 바흐친이 구조주의, 포스트구조주의와 차이가 있지만, 바흐친이 마르크스주의와 러시아 형식주의를 결합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프랑스 구조주의나 현대의 탈구조주의 이론이 이러한 형식주의의 일정한 연장선에 있다는 점, 토도로프의 분석법과 상호텍스트성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부분에서 토도로프의 시퀀스 분석법을 바흐친의 크로노토프 분석과 결합해 볼 수 있다. 원용진 외(2019)가 정리한 토도로프의 시퀀스 분석을 활용한 크로노토프 서사 분석법은 <표 2>와 같다.
본 연구에서는 원용진 외(2019)가 제안한 크로노토프 서사 분석법을 활용하여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텍스트와 장르의 크로노토프 분석을 통해 서바이벌 오디션 TV 프로그램과 사회의 공명 과정을 밝히고자 한다.
III. 연구방법
기존의 구조주의 서사 분석 도구들을 활용한 분석은 장르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 아닌 해당 서사물의 보편적인 구조를 중점적으로 보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본 연구는 크로노토프 분석 방법의 활용도를 검증함과 동시에 크로노토프 분석 기법을 활용해 해당 분석의 장짐인 장르의 특성을 파악하고, 해당 장르가 사회의 어떤 범주들과 공명화 되는지에 관해 설명하고자 한다.
본 연구는 원용진 외(2019)의 연구에서 제시한 크로노토프 분석 방법을 활용해 국내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분석한다. 국내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분석 대상으로 삼은 이유로는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는 경쟁과 관음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근본을 구성하는 주요소가 핵심적인 장치로 재현되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중문화가 포함되어 있는 사회에서 대중들은 시청을 통해 경쟁과 관음에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실시간 참여 등의 행위를 통해 감시 속에서 승자가 된다면 향락을 취하는 이데올로기적 환상에 대한 지지를 보이고 있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과 사회 간의 연결을 파악하기 위해선 크로노토프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먼저 국내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크로노토프를 분석하기 위해 화제성, 경쟁성 리얼리티, 수용자의 참여 등의 요소들이 들어간 3개의 TV 프로그램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첫 번째 분석 대상은 <슈퍼스타 K(2009)>로 국내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시초라고 여겨지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오디션 포맷과 서바이벌 포맷의 프로그램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 오디션 포맷을 중점으로 따진다면 1970년대에 시작되었던 강변가요제(1979-2001)와 대학가요제(1977-2012)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이고,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도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박진영의 영재육성프로젝트(2001)>, <악동클럽(2001)>, <MC서바이벌(2004)> 등의 지상파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존재한다. 하지만 2009년 방영된 <슈퍼스타 K>는 엠넷의 채널 인지도, 프로그램의 브랜드화, 압도적인 시청률 등의 유례없는 대성공을 기록했기에 국내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형성기에서 분석할만한 가치가 있다.
두 번째 분석 대상은 <프로듀스 101(2016)>이다. 오디션 서바이벌의 흥행에 방송사들은 높은 예산으로 앞다투어 프로그램을 제작하였지만, 계속되는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의 방영에 시청자들은 피로감을 느끼기에 이르렀고, 프로그램의 우승자 혹은 출연자들 또한 대중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오디션 서바이벌 포맷은 침체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보이스 코리아 1,2(2012-2013)>프로그램은 나름의 성적을 거두었지만, 일반인 출신의 출연자들은 더이상 대중들의 큰 관심을 얻지 못하였다. 그로 인하여 방송사에서는 여러 가지 종류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을 실험하였고, 이미 어느 정도의 자질이 갖추어진 아이돌 연습생, 혹은 전&현역 아이돌을 출연시켜 스타로 만들고자 하는 <프로듀스 101(2016)>, <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유닛(2017)> 등의 프로그램들이 제작되기 시작하였다. 특히 기존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포맷과 크게 달라진 점은 대중들에게 프로듀서들의 평가와 판단보다 더 큰 권력이 쥐어졌다는 점이다. 문자/온라인 투표를 통한 대중들의 선호도는 출연자들의 데뷔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선호도를 기존보다 더욱더 높게 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프로듀스 101> 프로그램이 침체기에 접어들었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부활에 힘을 실어 주었다는 점에서 <프로듀스 101>은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 분석 대상은 <쇼미더머니 9(2020)>이다. 2019년도에는 트로트 음악 장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내일은 미스트롯(2019)>이라는 프로그램이 흥행을 달리면서 국내에서는 트로트 열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수많은 트로트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 속에서도 <쇼미더머니 9>은 ‘VVS’곡 등을 포함한 프로그램 음원들의 음원차트 상위권 진입, 높은 시청률과 유튜브 조회 수가 나오는 등 대중들에게 여전한 인기를 얻고 있다. 쇼미더머니 시리즈는 2012년도부터 시작되어 2021년 현재 쇼미더머니 10까지 방영 중인 장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 <슈퍼스타 K> 등의 장수 시리즈들은 대부분 막이 내렸지만, 쇼미더머니 시리즈는 약 10년간 꾸준히 방영되고 있다. 이는 쇼미더머니의 대중적인 선호도와 관심이 꾸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수 시리즈이자 현재 2021년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쇼미더머니> 시리즈는 들여다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시기를 초기, 부흥기, 현재로 나누어 각 시기를 대표할 수 있는 <슈퍼스타 K>, <프로듀스 101> 그리고 <쇼미더머니 9>을 크로노토프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분석 대상을 정리하면 <표 3>과 같다.
시기 | 프로그램 명 | 방송 기간 | 회차 | 방송시간 |
---|---|---|---|---|
초기 | 슈퍼스타 K | 2009년 7월 24일 ~ 2009년 10월 10일 | 총 6회 |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 |
부흥기 | 프로듀스 101 | 2016년 1월 22일 ~ 4월 1일 | 총 11회 |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 |
현재 | 쇼미더머니 10 | 2021년 10월 01일 ~ 2021년 12월 03일 | 총 10회 |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 |
IV. 연구 결과
<슈퍼스타 K>의 서사는 1회부터 4회까지 약 134만 명의 지원자들이 공개 오디션 형식의 지역별 예선을 통해 151개의 팀(혹은 개인)이 뽑히고, 4회부터 6회까지 최종 본선에 진출할 11개의 팀을 선정하는 슈퍼위크(super-week)라는 과정이 진행된다. 9회부터 최종회인 14회까지는 최후의 TOP 11이 숙소에서 합숙하며 매회 주어진 일정한 과제를 수행하며 최후의 1인을 가려내는 서사를 가지고 있다. 즉, <슈퍼스타 K2>의 주요 서사는 스타가 되기 위한 지원자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며 평가받아 최후의 1인, 가수이자 스타로 되어가는 과정이다. 토도로프의 시퀀스 분석을 통해 <슈퍼스타 K>의 서사를 분절한다면 다음과 같다. 지원자들은 각자의 배경 스토리를 가진 일반인들이다(서사 명제1). 지원자들은 개인의 실수, 심사위원의 혹평, 압박감, 타 지원자와의 갈등 등과 마주한다(서사 명제2). 지원자들은 내적, 외적 갈등상태에 놓인다(서사 명제3). 지원자들은 연습을 통해 노력하며 갈등한다(서사 명제4). 살아남게 된 지원자는 최초 안정상태였던 일반인 시절보다 좋은 음악가이자 승자가 된다(서사 명제5). 여기서 바흐친적인 사건은 안정 상태가 깨지는 상황을 묘사하는 서사 명제2와 또 하나의 힘이 반대 방향으로 가해지며 갈등이 해소되는 서사 명제4이다.
먼저 반복적인 시공간적 지표의 제시인 지엽적 크로노토프는 다음과 같다. 슈퍼스타 K의 공간적 축이 되는 것은 무대와 그리고 연습장이다. 해당 공간들은 참가자들 입장에서 심사위원들에게 지적이나 질책 받거나 갈등이 생기는 공간이다. 무대에는 예선 오디션장도 포함되는데, 무대의 크로노토프는 심사위원이 참가자들에 대한 평가와 성장을 위한 과제를 제시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카메라 앵글은 참가자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담기 위한 롱숏(long shot), 노래 부르는 참가자의 호소력 담긴 표정을 보기 위한 클로즈업숏(close up shot), 그리고 심사위원의 감상 표정과 평가 전달력을 위한 바스트 숏(bust shot) 등이 주로 쓰인다(<그림 1>).
연습장의 크로노토프는 슈퍼위크 혹은 본선 무대를 위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습하며 노력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연습장에서는 슈퍼위크 그룹 미션에서 타 참가자와의 의견 충돌로 인한 갈등이 생겨 과제를 충분히 이행하지 못하거나 개인의 한계와 컨디션 저하로 인한 문제가 일어나기도 한다. 갈등과 한계에 봉착한 순간에는 참가자의 내적, 외적 갈등을 통한 감정을 시청자에게 전달하고자 카메라는 참가자의 표정을 집중적으로 비추는 구도를 선택한다(<그림 2>).
이러한 공간들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참가자들은 ‘평가를 통한 생존’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성장을 통한 생존’, ‘경쟁을 통한 생존’ 또한 존재하지만, 참가자들의 생존을 절대적으로 결정짓는 것은 심사위원들과 시청자의 평가이다. 이와 같이 <슈퍼스타 K>의 지엽적 크로노토프들은 공통적으로 ‘평가받는 시간성’을 가지게 되는데, 해당 프로그램은 갈등과 혹평, 투표 결과 등과 같은 평가를 통해 시간을 흐르게 만들며, 시간은 참가자들이 1억원 상금과 음원 제작의 승자가 되는 평가 과정으로 표현된다(<그림 3>).
따라서 평가의 시간성과 무대, 연습장의 공간들이 교차하며 만들어지는 <슈퍼스타 K> 텍스트의 지배적 크로노토프를 ‘평가의 크로노토프’라고 명명할 수 있다. <슈퍼스타 K>의 ‘평가의 크로노토프’는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의 공통적이자 핵심적인 시공간 축으로 활용된다.
2016년 엠넷에서 방영된 <프로듀스 101>의 서사는 국내외 약 50여개의 연예 기획사에 소속되어 있는 101명의 여자 연습생들이 경쟁과 투표를 통해 최후의 11명이 되어 새로운 아이돌 그룹(아이오아이)으로 데뷔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이다. 1∼2회는 연습생 소개 및 등급평가, 3∼4회는 과제 무대와 2차 평가, 5회는 1차 순위 발표, 6∼7회는 포지션 평가 연습 및 공연, 8∼9회는 2차 순위발표와 컨셉 평가 연습 및 공연, 10회에는 3차 순위발표식과 생방송 공연 연습, 11회는 생방송과 최종멤버 11인 발표가 진행된다. 일반인과 연예인의 사이의 경계에 놓여있는 이미 어느 정도의 자질이 갖추어진 아이돌 연습생, 혹은 무명의 전&현역 아이돌은 시청자가 만들어가는 아이돌이라는 설정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된다.
<프로듀스 101>의 서사명제는 다음과 같다. 각자의 배경이 있는 101명의 여자 연습생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서사 명제1). 연습생들은 연습실에서 트레이너에게 혹평을 받는다(서사 명제2). 낮은 등급 혹은 높은 등급을 받은 연습생들은 위기에서 모면, 상위권 유지를 하고자 내적, 외적 갈등 상태에 놓인다(서사 명제3). 연습생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고자 노력과 연습을 하게 되고, 대중들의 투표를 받는다(서사 명제4). 연습생들은 국민 인기투표를 통해 최종 11순위권을 이루고 데뷔한다(서사 명제5). 연습생들에게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은 <슈퍼스타 K>와 비슷하게 연습생이 대중 투표 평가를 받는 무대와 그룹별 클래스가 진행되는 연습실이다. <프로듀스101>은 <슈퍼스타 K>의 지엽적 크로노토프와 공간적인 지표가 유사하지만, 명확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차이점은 먼저 <슈퍼스타 K>의‘평가하는 시간성’과는 달리 <프로듀스 101>은 ‘성장하는 시간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다. <프로듀스 101>에서의 시간은 연습생들의 내면적인 성숙과 더불어 아이돌 스타로서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적 과정이 중심이 된다. 또한 <슈퍼스타 K>의 무대와 연습실이 지닌 크로노토프와는 반대로 <프로듀스 101>에서 주된 내적 갈등과 질책을 당하는 공간은 주로 연습실이다. 연습실에 트레이너(상급자)가 등장함으로써 연습생들의 성장을 위한 과제가 주어지며, 호통과 질책을 당하는 공간이다. 트레이너들은 주로 표정이 격양되고 경직되어 있다(<그림 4>).
반면 무대의 크로노토프에서 연습생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대중들에게 평가받으며 성장에 대해 증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증명한 이들은 대중의 선택을 통해 살아남게 된다. ‘성장(연습)하는 시간성’과 투표 시스템을 함께 들여다보면, 노력이 승리하는 공정한 경쟁을 지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림 5>).
2019년 검찰에서 <프로듀스 101>의 시리즈 전부 순위 조작이 있었음을 결론짓고, 배후에는 <프로듀스 101>의 담당 PD와 CP, 연예기획사가 있었음이 공식적으로 밝혀졌다. 투표조작이 있었다고 해서 <프로듀스101>이 지녔던 서사와 크로노토프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중들의 투표는 결국 권력에 의해 조작되었고, 신자유주의의 ‘공정’이라는 헤게모니 아래 여전히 대중들이 피지배 입장에 놓여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프로듀스 101>의 서사를 가능하게 하는 지엽적 크로노토프는 ‘연습실’과 ‘무대’의 크로노토프이다. ‘연습실’의 크로노토프를 통해 연습실들에게 위기가 도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인물들의 연습의 시간, 성장의 시간이 교차한다. 또한 연습과 성장을 증명하기 위한 요소들은 ‘무대’에서 얽히게 된다. <프로듀스 101>의 ‘연습실’과 ‘무대’의 지엽적 크로노토프들을 하나의 주제적 의식으로 묶은 지배적 크로노토프는 ‘성장’의 크로노토프라고 할 수 있겠다. 연습생들은 자신의 피나는 노력을 통한 성장을 트레이너(상급자)와 국민들에게 증명하기 위해 공간과 시간이 교차하며 주체적으로 자신의 가치에 대한 증명을 이끌어내고자 한다.
Mnet의 힙합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시리즈의 10번째 시즌인 <쇼미더머니 10>은 타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처럼 일반인들의 참여로 시작되나, 이미 힙합음악을 하던 사람들이 대중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을 뽐내고 유명세를 얻을 수 있는 기회로 해당 프로그램을 활용하고 있다. <쇼미더머니 10>은 총 10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1회는 무반주 랩 심사 예선, 2∼3회는 60초 2차 예선, 4회는 1:1 배틀 미션, 5회는 래퍼 캐스팅(소속 프로듀서 팀 구성), 6회는 프로듀서 팀간의 음원 미션, 7회는 디스배틀 미션, 8∼10회는 본선 무대, 세미파이널무대, 파이널무대로 구성되어 있다.
<쇼미더머니 10>의 서사는 다음과 같다. 래퍼들은 각자의 참가계기를 가지고 쇼미더머니에 자신의 의도를 실현시키기 위해 참여한다(서사 명제1). 래퍼들은 60초 불구덩이 심사, 1대1 배틀, 디스배틀 등의 미션 등의 시련을 겪는다(서사 명제2). 참가자 래퍼들은 컨디션 저하, 가사숙지, 말싸움 등으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을 받는다(서사 명제3). 참가자 래퍼들은 프로듀서와 함께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본선 이후의 무대에서부터는 래퍼들(조력자)의 도움도 받으며 상대방을 이긴다(서사 명제4). 최후의 1인이 된 참가자 래퍼는 약 5억원 우승 혜택의 주인공이 된다. 이때 바흐친적 사건들로 볼 수 있는 서사명제는 2번과 4번이다.
<쇼미더머니 10>의 서사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공간은 ‘무대’와 ‘프로듀서의 작업실’이다. 참가자 래퍼들은 서사 명제2의 불구덩이 심사, 1대1 배틀, 디스 배틀, 본선 등이 이루어지는 ‘무대’라는 공간에서 시련을 겪는다. 참가자 래퍼들은 무대 위에서 가사를 잊어버리기도 하고, 상대방 래퍼를 이기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기도 한다. 또한 프로듀서들에게 극찬을 받으며 다음 라운드에 대한 압박감을 받기도 하고, 혹평을 받으며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무대에서 탈락할 경우 불구덩이 밑으로 내려가거나, 감옥 창살이 탈락자 앞으로 내려오는 등 다이나믹한 연출로 패배자는 더욱 패배감을 느끼게 되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카메라가 무대에서 랩을 하는 참가자를 비출 때는 주로 니샷(knee shot), 미들샷(medium shot), 웨스트 샷(waist shot)을 많이 활용하여 래퍼의 제스쳐를 담으려고 한다. 반면 무대를 평가하는 프로듀서들은 바스트 샷(bust shot)과 클로즈업(close up) 기법을 사용하여 프로듀서의 표정(감정)을 명료하게 나타낸다(<그림 6>).
참가자 래퍼들은 이내 스스로의 노력과 프로듀서들의 도움으로 압박감과 갈등을 극복하고 ‘인정’받는 래퍼가 된다. 반대편으로 가해지는 힘이 주로 행해지는 공간은 ‘프로듀서의 작업실’인데, 해당 공간에서 참가자 래퍼들은 주로 프로듀서와 회의하고 조언을 들으며 의견을 나눈다. 카메라가 프로듀서의 작업실에서 참가자와 프로듀서를 비출 때는 주로 미디엄 클로즈업샷(medium close-up)과 미디엄 롱샷(medium long shot) 기법을 활용하여 프로듀서와 참가자가 처한 상황을 표현한다(<그림 7>).
<쇼미더머니 10>내 참가자 래퍼의 서사에서는 지속적으로 경쟁적인 시간성을 보여준다. <쇼미더머니 10>에서 갈등이 생기는 방식은 주로 프로듀서(상급자) 혹은 자기 자신이 아닌, 경쟁자와의 대결이 초점이 된다. ‘무대’와 ‘프로듀서 작업실’의 지엽적 크로노토프를 묶어서 본다면 <쇼미더머니 10>의 ‘지배적 크로노토프’를 ‘경쟁의 크로노토프’라고 명명할 수 있다. 물론 <쇼미더머니 10>에서도 프로듀서의 평가, 관객 투표, 온라인 투표 등을 통해 <슈퍼스타 K>의 ‘평가의 크로노토프’와 우승후보로 거론되지 않은 실력이 애매했던 참가자 래퍼들의 ‘성장의 크로노토프’가 존재하지만, 참가자 래퍼들은 무대 위에서 함께 공연하더라도 상대방을 오직 이기고 살아남으려는 경쟁을 반복하며 그것을 고수한다. 이때 참가자 래퍼들에게는 도덕적인 차원이나 가치는 크게 인식되거나 강조되지 않으며, 경쟁자 간의 갈등이 윤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보다, 서로 살아남아 승자가 되기 위한 투쟁으로 그려진다. 따라서 <쇼미더머니 10>에서는 ‘경쟁의 크로노토프’가 중심적으로 존재한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장르 형식은 처음에는 생산적으로 시작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창조되는 일정한 규칙성 혹은 전통성에 의해 강화되었다. 그리고 처음의 크로노토프와 현실 사회의 흐름이 반영된 크로노토프들과의 대화를 통해 지속되는 과정이 존재하기도 하고, 변화되는 과정이 존재하기도 한다. 즉, 크로노토프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통해 현재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장르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텍스트들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공간은 ‘평가를 받는 무대 공간’과 ‘갈등과 시련의 연습실 공간’이다. 또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시간성은 ‘평가의 시간성’, ‘성장의 시간성’, ‘경쟁의 시간성’이 확인되었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은 각각 평가, 성장, 경쟁에 중심을 두고 있었다. <슈퍼스타 K>에서는 심사위원과 국민 투표를 통한 평가를 중심으로 참가자들의 성장과 경쟁이 뒷받침되어 참가자가 어떤 평가를 받으며 올라갈지가 관건이었다. <슈퍼스타 K>에서는 최종 10인의 위치에 들기 전까지 대중들의 투표는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심사위원 집단의 평가가 절대적이었다. 즉, 상급자 집단이 뽑은 10명만이 대중들의 선택을 받을 수가 있다는 점이었고, 최종 10인 무대에서도 각 무대가 끝날 때마다 심사위원들이 심사평을 내리는 등 심사위원들의 권력성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프로듀스 101>에서는 트레이너(상급자)에게서 평가자의 역할을 배제시킨 뒤 철저한 공정성을 위해 국민 투표로만 평가를 받게 하는 시도를 하였고,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평가자 역할을 선택받은 극소수집단(심사위원)에서 누구나 평가할 수 있는 대중으로 확대시킨 부분은 <프로듀스 101>의 독특한 지점이라고 볼 수 있다. <프로듀스 101>에서는 연습생들의 데뷔를 위한 성장이 중심이 되어 연습생이 피나는 노력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할지가 중심이 되었다. 또한 <프로듀스 101>에서도 대중투표를 통한 평가와 선택받은 집단에 속하기 위한 연습생들의 경쟁이 존재하기도 한다.
한편, <쇼미더머니 10>은 ‘평가의 크로노토프’와 ‘성장의 크로노토프’를 수용함과 동시에 ‘경쟁의 크로노토프’에 중점을 둔다. <쇼미더머니10>의 경쟁의 크로노토프는 <슈퍼스타 K>, <프로듀스 101>프로그램의 심층적인 부분에 존재하는 경쟁 요소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표면적인 층에 위치시킨다. <쇼미더머니 10>의 참가자 래퍼들은 오직 경쟁상대의 래퍼를 탈락시키고 살아남으려는 압도적인 힘에 집중하는 형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결과들을 통해 한국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장르의 장르적 크로노토프(generic chronotope)는 ‘평가의 크로노토프’, ‘성장의 크로노토프’, ‘경쟁의 크로노토프’가 반복적으로 순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각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마다 마치 천제에서 자전 중심 역할의 자전축이 되는 크로노토프가 존재하고, 자전축을 따라 회전하는 크로노토프들이 존재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자전의 예로 쇼미더머니의 ‘경쟁의 크로노토프’가 자전축이 되고, 그 주변에는 ‘평가의 크로노토프’와 ‘성장의 크로노토프’가 자전하며 ‘경쟁의 크로노토프’와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으로 들 수 있다. 예시의 그림은 다음의 <그림 8>과 같다.
따라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장르적 크로노토프는 ‘성장과 평가를 통한 경쟁의 크로노토프’라고 할 수 있겠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공간들은 공통적으로 ‘연습실’이라는 공간에서 성장에 대한 노력이 행해지고, ‘무대’라는 공간에서 성장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연습실’의 공간에는 다양한 등장인물들과 수많은 갈등 관계들이 개입되어 확장된다. 또한 ‘무대’의 공간에서는 점차 심사위원의 권력이 약해지고, 대중들에게로 투표 권한이 점점 더 확장됨에 따라 커지게 된다. 한편, 시간적인 차원에서는 큰 단위의 서사에서 점차 각 참가자의 가족사, 사연과 갈등 등의 세부 사건 단위로 응집된다. 해당 사건들을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리얼리티’요소로 풀어나가는 것인데, <슈퍼스타 K> 이후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에서는 작은 단위의 사건(성장의 흐름, 경쟁의 흐름) 자체가 중요해지며, 텍스트의 서사를 주도하기 시작한다. 참가자들이 서로 견제하며 경쟁하는, 성장을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한 사건이면서 극의 목적이 된 것이다. 또한, 심사위원의 권력이 약화되고 대중들에게 더욱더 많은 권한이 확장되며, 기존의 평가로서의 크로노토프는 점차 변화되기 시작한다. 바흐친은 장르의 크로노토프가 사회의 변화와 상호작용을 통해 발생함을 의미하였다. 그렇다면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텍스트들에서 나타난 장르의 크로노토프는 사회와 상호작용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장르의 크로노토프 특징과 변화로부터 특정한 사회의 연결점을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장르 내에서의 성장과 경쟁이 점차 강조되는 것과 평가하는 주체가 변화하는 것의 크로노토프 변화는 신자유주의와 밀접하게 관련된다.
1960년의 박정희 유신정권에 의해 시작된 산업화는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초고속 경제성장을 성취하였다. 하지만 과도한 중앙집권적 국가 모델로 이루어진 초고속 경제성장은 생활 경제 부실화, 지역 경제 부실화, 재벌의 증가, 문어발식 투자로 인한 독과점 등으로 인해 1990년대 후반에 IMF 경제 위기를 맞이하였다. 박정희의 권위주의 정권으로 인해 억압되었던 개개인의 자율, 자유성에 대한 욕구는 신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와 절묘하게 접합되었다. 박소진(2009)은 국내 신자유주의가 단순한 경제체제를 넘어 시민들의 의식에 주입되어 사회 전반에 파급이 되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국내 신자유주의의 초기 단계는 서구처럼 오랫동안 조직화되어 온 정치적 보수와 신자유주의파에 의해 치밀하게 준비된 것이 아닌 구제 금융을 받기 위해 신자유주의의 핵심적인 이념을 급히 받아들이며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추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는 국내에 도래한 지 약 20년 남짓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기능과 역할을 중요시하며,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적하효과가 일어나게 되고, 경제를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을 강화시켰다. 신자유주의에서는 누구에게나 선택과 기회의 자유는 존재하며, 각자의 선택과 능력으로 인한 결과에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시스템이 존재한다. 즉,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지만, 경쟁에서 낙오되고 실패한 사람에 대해 사회가 돌봐주지 않는 무한 경쟁의 논리를 지니고 있다. 신자유주의에 소속된 구성원들은 공정한 경쟁을 벌일 기회를 얻기 위해서 시장의 규칙과 규범에 대한 복종이 요구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의 울타리 안에 속해 있는 국민들은 보장받는 삶을 살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성장을 통해 능력을 계발하여 경쟁력을 얻어야 한다. 또한 타인과의 경쟁은 불가피하게 생성되며 타인과의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상급자 혹은 전문가의 평가와 조언을 수용하는 것은 신자유주의의 섭리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사회는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장르적 크로노토프와 연결된다.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평가와 성장을 통한 경쟁의 크로노토프’는 말 그대로 신자유주의의 자기계발, 개인주의, 경쟁, 전문가의 조언 등의 요소들이 전부 내포되어 있다. <슈퍼스타 K>의 심사위원들의 존재는 신자유주의의 전문가들이며, <프로듀스 101>에서의 연습생들의 노력과 성장은 시장에서의 가치를 올리기 위한 성장이며, <쇼미더머니10>에서 최종 승리자가 되기 위한 래퍼들 간의 치열한 경쟁은 철저히 개인주의적이자 타인과의 경쟁이다. 오늘날의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공간들은 미시적인 참가자들의 일상에서부터 구조적인 정치경제까지 내포시키는 거대한 신자유주의적 공간까지 아우르는 공간이 되며, 공간의 확장에 따라 현재의 신자유주의 사회와 상호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장르는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사회의 구조와 규칙, 그리고 특징이 드러나는 지점으로 볼 수 있다.
V. 결론 및 한계점
본 연구에서는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는 크로노토프를 파악한 후, 장르와 사회 양자 간의 연결점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는 TV 프로그램 포맷에 토도로프의 시퀀스 분석법을 활용한 크로노토프 분석법을 사용하여 장르를 추출하고, 장르를 통해 현 사회를 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사건들을 살펴보고, 사건 속에 담겨 있는 시간과 공간의 지표를 파악하여 분석 대상 프로그램들의 시공간에서 재현되는 것들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장르의 크로노토프는 평가, 성장, 그리고 경쟁의 세 크로노토프를 중심으로 하며, 프로그램의 성향에 따라 세 크로노토프 중 한 개의 크로노토프가 자전축이 되고, 나머지 크로노토프가 핵심 크로노토프의 주위를 맴돌며 서로 상호작용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세 개의 크로노토프는 신자유주의에서 노력과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한 성장, 성장의 상품화, 개인주의적인 경쟁, 승자 독식의 구조와 같은 현실의 크로노토프와 함께 공명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금융 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 도래하여 현재의 한국 사회에 깊숙이 존재하는 신자유주의는 TV 프로그램 텍스트의 크로노토프까지 침투해있었다.
본 연구에서 드러난 한계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장르의 크로노토프에 관해 본 연구의 분석에서 추출하려고 노력했지만, 분석에서 사용된 일부 프로그램들과 장면들만으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장르를 일반화시키기에는 다소 한계가 있다. 또한, 분석 대상이었던 세 프로그램은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시기(초기, 부흥기, 현재)와 흥행성을 기준으로 채택하였지만, 분석 대상 프로그램 모두 동일한 방송사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으로, 크로노토프의 서사나 연출 방식 및 전략이 동일 방송사의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유사하게 나타날 수도 있었던 부분이 본 연구의 한계점이기도 하다.
둘째,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 장르의 크로노토프와 사회와의 공진화 과정을 명확하게 해석해내지 못하였다. 즉, 본 연구는 장르의 크로노토프와 사회와의 연결점만 해석하였고, 변화해가는 크로노토프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못하였다. 구체적으로 서술하지 못한 원인은 마지막 분석 대상을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형성기 때부터 제작된 쇼미더머니가 시즌 2부터의 초창기 포맷만 고수하고 있어 변화된 사회를 담고 있지 않을 가능성에 있다. 따라서 슈퍼스타 K - 프로듀스 101 - 쇼미더머니 10의 순으로 분석하였을 때, 변화된 사회와의 공진화를 포착하기 다소 힘든 부분들이 존재하였다.
앞으로의 후속 연구에서는 지속적으로 변화되는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크로노토프에 대해 꾸준히 관찰하고, 사회 양자 간에서 공진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통해 더 다양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대한 대중문화 연구에 더 풍부한 해석이 이루어지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