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2020년 1월 국내 주요 매체들은 외신을 인용하여 중국 후베이성 우한에서 집단 발생한 원인 불명의 바이러스성 폐렴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판정되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신종 바이러스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스(SARS)를 일으키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포함해 이미 발견된 것과 다른 종류로 판명되면서 추가 연구의 필요성이 언급되었고,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을 인정하였다(한국일보, 2020. 1. 9.). 코로나 팬데믹(COVID-19 pandemic)이 시작된 것이다. 2020년 2월 국내 신규 확진자는 73명에서 시작해 4차에 걸친 대유행을 지나 점차 안정을 되찾는 듯 하였으나,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 오미크론(Omicron)의 출현으로 2021년 12월 16일 기준 국내 신규 확진자는 7,000명 이상, 누적 확진자는 약 90,000명, 사망자는 약 4,500명을 넘어섰다. 전 세계적으로는 하루 70만 명 이상이 확진을 받으면서 누적 확진자는 2억 7천만 명을 넘어섰고, 5백만 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고 있다.1)
코로나19는 복잡한 인과성, 불확실성, 시공간의 무제약성, 비가시성 등 위험사회의 특징(Beck, 1997)을 잘 대변하는 사례 중 하나이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과학기술과 유연 생산에 기초한 사회체계의 전환은 전례 없는 물질적 풍요와 편의를 증대시켰지만, 전 지구적 규모의 잠재적 위험도 동시에 가중시키고 있다(Ungar, 2001).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위험 앞에 무력해진 국가 시스템, 경제 불평등의 가속화, 공동체에 대한 신뢰 약화와 같은 후기 자본주의 체제로의 전환적 특징은 개인들에게 삶에 대한 통제감 상실과 상시적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석승혜·장안식, 2016).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출현은 무엇보다 개인의 일상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팬데믹 선언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로 지칭되는 물리적 통제로 인해 국내외 여행 자제는 물론 카페·음식점·예배·쇼핑·영화·스포츠관람 등 다중이용시설 이용은 최소화된 반면, 배달·택배·온라인수업·재택근무와 같은 비대면 활동은 그 비중이 크게 증가하였다(한국리서치, 2020). 이러한 일상의 변화는 여타 사회적 행위와 마찬가지로 범죄현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범죄현상도 사회적 상호작용의 한 유형이기 때문에 행위의 조건이 바뀐다면 범죄발생은 물론 범죄에 대한 인식과 태도도 충분히 변할 수 있다(신동준, 2021).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2020년 발생한 전체 범죄건수는 2019년 대비 2.9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분기별로 살펴보면, 코로나19 국내 전파가 시작된 1분기를 제외하고 2분기부터 범죄건수는 전년도 2분기 대비 6.46%, 전년도 3분기 대비 2.40%, 전년도 4분기 대비 6.44%씩 꾸준히 감소하였다. 비록 사기와 같은 재산범죄의 경우, 전년대비 다소 증가한 양상도 나타나지만, 강력범죄, 폭력범죄, 교통범죄는 전년대비 모두 감소하여 2021년까지 감소추세가 이어지고 있다(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2021). 반면, 언론은 코로나19 이후 범죄건수의 감소에 대한 보도보다는 마약범죄, 소년범죄, 아동학대 등 일부 범죄유형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비대면 일상이 관련 범죄를 증가시킬 수 있다는 점에만 주목하였다.2)
코로나19 이후 범죄추세와 언론보도가 불일치하는 경향은 후기 근대사회의 사회적 불안(social anxiety)을 범죄현상에 투영하고자 하는 도덕적 공황(moral panics)의 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범죄 두려움(fear of crime)으로 표상되는 도덕적 공황은 위험사회의 가속화에 대응하여 사회질서(social order)를 담보해야 할 국가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통제가능한 위험의 유형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묘한 상보적 관계를 형성한다(Hollway & Jefferson, 1997; Ungar, 2001).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특정 집단, 인종, 계층에 대한 차별, 편견, 오명이 횡행하고 있다는 점도 이러한 맥락에서 주목되는 현상이다. 일부 국가에서는 의료진과 방역당국에 대한 공격이 행해진 바 있고(UNICEF, 2020), 국내에서도 대유행 초기 바이러스가 확산된 지역과 종교집단에 대한 비난과 분노가 노골적으로 드러났으며(서보경, 2021), 해외에서는 외국인 혐오로 의심되는 폭력사건이 뉴스를 통해 자주 보도되고 있다(Malla & War, 2020).
이 논문은 범죄 두려움의 편재성이 나를 포함한 내 주변 사람까지 잠재적 피해자로 대상화하여 표출될 수 있다(장안식, 2019)는 점에 주목하여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범죄 두려움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표출되는지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코로나19로 인한 감염 확산을 후기 근대사회가 초래한 대표적 위기로 규정하고, 이러한 위기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개인들이 사회적 불안과 도덕적 공황으로서 범죄 두려움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코로나19 이후 범죄 두려움에 대한 인식 차이에 따른 집단 분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이러한 집단 분화가 일어나고 있다면 각 집단의 특성은 무엇인지를 분석함으로써 코로나19의 사회적 의미를 범죄 두려움의 시각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Ⅱ. 이론적 논의
후기 근대사회로의 전환에 따라 사회체계 유연화와 그 결과로 나타나고 있는 사회적 불안은 보편적인 세계적 추세로 나타나고 있지만, 한국사회는 그 양상마저도 압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1960-7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를 거쳐 1980-90년대 민주화와 경제위기, 2000년대 정보화와 세계화에 이르기까지 고도의 ‘압축적 성장’을 경험한 한국사회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외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압축적 불안’까지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김문조·박형준, 2012).
많은 학자가 지적하고 있듯이 오늘날 후기 근대사회는 ‘고도 불안’의 시대로 규정되고 있다. 테일러(Taylor, 2001)는 이러한 불안의 조건으로 도구적 이성의 지배와 도덕적 자율성의 약화에서 비롯된 삶의 목표와 의미의 상실을 제시하였고, 바우만(Bauman, 2009)은 유연적 축적을 지향하는 새로운 경제체계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통신기술이 상시적 소통에 기반한 생활세계와 내면세계의 유연화를 초래함으로써 개인의 존재적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설명한다(김문조 외, 2015: 7). 리아노스와 더글라스(Lianos & Douglas, 2000)는 자동화된 사회-기술환경(automated socio-technical environment)이 가능한 위협을 산출하는 기술과 제도에 근거하여 위해를 재구성함으로써(dangerization) 불안을 높이는 동시에 안전 욕구는 강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벡(Beck, 1997)은 위험사회(risky society) 관점에서 후기 근대사회에 만연한 사회적 불안을 해석하였다. 그에 따르면, 위험은 산업화의 필연적 결과로 후기 근대사회의 위험은 매우 복잡한 인과성, 불확실성과 잠재성, 시공간의 무제약성, 물리적 감각을 통한 확인 불가능성, 인간 의사결정의 결과물이라는 특징으로 수반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이룩한 경제적 이득은 의도하지 않은 나쁜 결과 때문에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 과거 어느 시대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새로운 과학기술과 생산과정은 정확히 인식하기 어렵고, 잠재적이며 전 지구적 규모의 위험을 보다 가속화하고 있다.
후기 근대사회의 유연화와 불확실성에서 파생된 광범위한 사회적 불안은 ‘전이된 불안’으로 설명되기도 하는데, 전이된 불안으로서 범죄 두려움은 사회적 불평등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Bauman, 2000). 불확실한 사회구조적 상황은 각 개인을 문화심리적으로 불확실한 상태로 내몬다. 소득양극화, 실업, 주거불안, 빈곤 등 불평등이 심화된 후기 근대사회를 살아가는 취약계층은 상대적 박탈감과 무기력감을 경험하면서 닥쳐올 미래의 위협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전이된 불안의 형태인 범죄 두려움으로 표출된다는 주장이다(장안식, 2015).
사회적 불안이 투영된 범죄 두려움은 도덕적 공황의 개념을 통해 논의되기도 한다(Ungar, 2001). 도덕적 공황은 어떤 상황이나 조건,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이 사회적 가치와 이해관계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지는 것을 의미한다(Cohen, 1972). 이는 매스컴, 종교인, 정치인, 전문가 등이 주도하는 편향이나 슬로건, 개념이나 정책이 될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고 잠재되어 있다가 다시 수면 위로 나타나기도 한다.3)
위험사회의 가속화와 범죄 두려움을 표상하는 도덕적 공황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범죄발생과 범죄 두려움의 관계이다. 1990년대 미국에서는 범죄가 급속하게 감소했음에도 범죄 두려움은 계속해서 높게 유지되는 현상이 빚어졌다. 이에 범죄 두려움(도덕적 공황)이 실제 범죄(위험사회의 위협)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면 각각에서 파생되는 불안은 상보적 관계(complementary relationship)로 볼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Ungar, 2001). 홀웨이와 제퍼슨(Hollway & Jefferson, 1997)은 범죄 두려움과 피해위험의 상보적 관계를 온갖 종류의 위험이 후기 근대사회에 만연해 있다는 벡의 주장을 통해 설명한다. 그들에 따르면, 범죄 두려움이야말로 사회질서에 대한 근대적 요청에 쉽게 채택될 수 있는 담론(discourse)이다. 여타 후기 근대적 위험과 달리 범죄 두려움은 가시적이고 일상적이며 통제가능한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위험과 불확실성이 높은 후기 근대사회에서 누가 보호해야 할 피해자인지, 누가 처단해야 할 가해자인지 식별할 수 있는 담론은 사회질서를 담보해야 할 국가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위험의 유형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2019년 12월 전 세계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유형의 바이러스 출현을 목도하였다. 중국에서 발원한 것으로 알려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2020년 1월 유럽과 아시아로 전파되기 시작하여 3월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글로벌 팬데믹(global pandemic)’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Gover et al., 2020). 코로나19 팬데믹 선언 이후의 세계는 감염(contagion)과 봉쇄(containment)로 요약할 수 있다(Miller & Blumstein, 2020). 코로나19는 바이러스의 감염과 전파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로 물리적 봉쇄라는 국가적 대응과 개입을 초래하였다. 물리적 봉쇄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명분으로 수많은 사람을 가정에 머물러 있게 하는 동시에 영화, 공연, 스포츠, 예배 등 문화·종교활동, 생필품·의약품 구입 등 필수적 영업을 제외한 비필수적 영업은 물론 사적 모임까지 금지하거나 최소화함으로써 시민들의 일상을 단절시켰다.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는 실업, 사회적 고립, 돌봄 공백과 같은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유발했을 뿐 아니라4) 배달증가, 원격교육, 재택근무처럼 비대면 문화도 활성화하였다.
다른 한편, 코로나19로 인해 변화된 일상은 범죄학을 포함한 사회과학 연구에 때 아닌 거대한 자연실험 조건을 가져다주었다(Stickle & Felson, 2020). 서구의 연구자들은 코로나19의 확산이 불러온 변화와 관련된 자료를 빠르게 수집하면서 팬데믹 이슈를 선점하고자 하였다. 심리학 연구자는 갑작스레 찾아온 비대면 상황, 감염에 대한 우려, 가족 내 불화에 따른 효과에 대해, 경제학자는 예기치 못한 대규모 실업 사태, 공급망 중단으로 인한 시장의 혼란에 대해, 정치학자는 방역과 경제 사이에서 국가마다 어떤 정책결정을 내리는지에 대해, 미디어 연구자는 팬데믹 상황을 매체가 어떤 프레임으로 보도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범죄학 연구자는 새로운 바이러스 출현이 공공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형사사법 통제기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기존 통제기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어떤 변화를 꾀하는지에 주목하였다. 일례로 학자들은 사회적 거리두기에 따른 비대면 일상이 확대되면서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범죄발생의 추세나 유형이 어떻게 달라지는지5) 관심을 가졌다(Boman & Gallupe, 2020; Stickle & Felson, 2020; Campedelli et al., 2021). 또한 비대면 상황에서 사회 내 처우의 감시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 과밀화에 따른 시설 내 수용자의 감염을 어떻게 차단하고, 인권을 보호할 것인지도 주요한 관심사로 여겨졌다(Miller & Blumstein, 2020).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팬데믹 이후 특정 집단, 인종, 계층에 대한 차별, 편견, 오명을 뒤집어 씌우려는 사회적 분열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니세프(UNICEF, 2020)에 따르면, 의료진과 방역당국, 바이러스가 발생한 지역의 주민, 감염지역에 다녀온 여행자, 감염된 사망자와 접촉한 이웃에 대한 불신과 편견이 만연해지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오명과 혐오(xenophobia)는 코로나19 이후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Moukaddam & Asim, 2020; Malla & War, 2020). 실제로 코로나19 발생 이후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아시아계 미국인 혹은 이민자를 향한 증오범죄(hate crimes)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6) 미국 16개 도시에 접수된 아시아인 대상 증오범죄 조사에 따르면, 2021년 1분기 범죄발생은 전년 1분기 대비 160%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인이 많이 거주하는 뉴욕에서는 증오범죄 증가율이 223%나 증가하였다(배정환, 2021). 이는 표면적으로 중국 우한 지역이 코로나19 진원지로 회자되면서 개인들의 누적된 스트레스가 아시아계 사람을 대상으로 표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벌어진 증오범죄를 역사적으로 펜데믹 현상이 출현할 때마다 반복된 오명화(stigmatization)와 타자화(otherizing)로 설명한 연구(Gover et al., 2020)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증오범죄의 확산을 미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인종차별과 외국인 혐오가 트럼프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보수 정치인의 선동으로 팬데믹 기간 재등장했기 때문으로 본다. 다른 연구에서도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의 지위상승에 대한 반감이 코로나19를 계기로 백인 우월주의를 드러내고 싶은 구조적 폭력이라고 주장하면서 팬데믹 기간 동안 감염, 실업, 불안에 취약한 계층이 위기로 내몰릴 것이라고 전망한다(Tessler et al., 2020).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적으로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감염의 시작에 대한 분노,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실업에 따른 우울과 스트레스를 시공간 규모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Malla & War, 2020).
코로나19 이후 범죄 두려움에 대한 연구는 새로운 위기와 위협에 처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불만, 분노, 좌절, 불안을 사회적으로 어떻게 표출하는지, 전이된 불안으로서 범죄 두려움의 편재성이 나를 포함한 내 주변 사람까지 잠재적 피해자로 대상화하여 표출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장안식, 2019). 불안은 애매모호한 특징을 띠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다룰 때 어느 정도 해당 사회의 역사적 상황을 보여준다. 이는 불안이라는 현상을 통해 공동체의 상태를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Bude, 2015). 급속한 변화에 따른 불안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삶을 위협하는 부정적 정보에 의존하여 암울한 미래를 상정하기 때문에 주변의 위협에 더욱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다. 범죄는 낯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정당화하고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범죄 두려움이 낯선 이방인을 대상으로 표출7)된다는 것은 타자화된 누군가를 척결해야 할 사회악(folk devil)으로 여긴다는 것을 의미한다(Farrall et al., 2009). 이러한 부정적 형상화는 불확실성에서 비롯되며, 지역 구성원의 이질성이 높을수록 특정 집단이나 특정 개인에 대한 배제와 소외가 강화되고, 이러한 배제와 소외는 다시금 불확실성을 강화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장안식, 2015). 급속한 사회변화, 확실성의 감소, 다양성의 증가, 권위에 대한 거부감이 확대되고 있는 전환의 시기에 범죄현상은 광범위한 사회적 불안을 표현하거나 해소하는 손쉬운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 범죄문제는 국가정책의 실패와 관련한 광범위한 사안, 나아가 국가가 후기 근대적 위기의 파고를 헤쳐 나갈 능력을 상실했다는 인식과도 깊이 얽혀 있다. 그러므로 범죄와 일탈의 시각에서 현실을 분석하는 것은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한다(Farrall et al., 2009).
지금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이 논문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후기 근대사회가 불러온 대표적 위기로 규정하고, 전례 없는 위기 앞에서 압축적 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오늘날 사회적 불안의 표상으로서 범죄 두려움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만일 변화하고 있다면 그 내용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코로나19 발생 이후 범죄 두려움을 중심으로 집단 분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분석하고자 한다. 후기 근대사회의 위기에서 비롯된 사회적 불안으로서 범죄 두려움을 규명하고자 한 연구에서는 범죄 두려움의 유형화를 통해 만성적 두려움 집단의 존재와 만성적 두려움의 구조적 조건을 밝히기도 하였다(장안식, 2019). 이 논문은 범죄 두려움의 유형화 분석에 착안하여 코로나19 이후 범죄 두려움에 대한 인식 변화를 토대로 새로운 유형화를 시도하고 각 집단특성이 어떻게 다른지 살펴봄으로써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불안이 범죄 두려움과 어떠한 관련성을 맺고 있는지 밝혀보고자 한다.
구체적인 연구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코로나19 이후 범죄 두려움에 대한 인식 변화에 따라 집단 유형화가 가능한지, 둘째로 집단 유형화가 가능하다면 코로나19가 불러온 범죄 두려움의 내용은 무엇인지, 셋째로 유형화에 따라 집단별로 특성의 차이가 있는지, 넷째로 유형화를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경험적 자료에 근거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Ⅲ. 연구 방법
이 논문에서 사용한 자료는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서 2021년 수행한 『범죄피해조사 방법론 연구』 가운데 일부 자료이다. 모집단은 전국에 거주하는 만 20세 이상 남녀로 표본은 2020년 기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를 기준으로 지역·성별·연령을 고려한 인구비례할당추출방법을 통해 표본을 선정하였다. 자료의 수집은 조사전문업체를 통해 온라인 설문을 이용한 자기기입(self-report)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2020년 10월 약 2주 동안 진행된 조사에 참여한 사람은 총 2,158명이다(박성훈 외, 2020: 422).
이 논문에서 유형화를 위해 사용한 변인은 범죄 두려움이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범죄 두려움은 정서적 반응과 피해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혼합된 복합적 감정으로 인지하는 주체에 따라 일반적 두려움과 개인적 두려움으로, 구체적 피해가능성에 따라 추상적 두려움과 구체적 두려움으로, 대상이 누구인지에 따라 개인적 두려움과 이타적 두려움으로 구분하기도 한다(장안식, 2012).
이 논문은 전국범죄피해조사에서 수집한 항목 중에서 추상적 두려움과 구체적 두려움을 사용하였다. 추상적 두려움은 “밤에 혼자 집주변을 걸을 때 두렵다”, “밤에 혼자 동네 골목길을 걸을 때 두렵다” 등 2개 문항을, 구체적 두려움은 “일상생활에서 내가 범죄피해를 당할까봐 두렵다”는 1개 문항을 사용하였다. 이 논문에서 관심 있게 다루고자 한 코로나19 이후 사람들이 느끼는 범죄 두려움은 “코로나사태 이후 우리나라에서 성별, 지역, 종교 등의 편견과 차별로 인한 범죄사건이 증가했다”, “코로나사태 이후 우리나라에서 성별, 지역, 종교 등의 편견과 차별 때문에 나와 내 가족이 범죄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증가했다” 등 2개 문항을 사용하였다.8) 각각의 문항은 ‘전혀 그렇지 않다(1)’부터 ‘매우 그렇다(5)’까지 5점 척도로 측정하였다(<표 1> 참조).
이 논문의 독립변인은 크게 개인 요인, 가구 요인, 피해 요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개인 요인은 성별, 연령, 직업, 교육수준, 개인소득으로 측정하고, 가구 요인은 가구소득, 혼인상태, 가구규모, 주택유형으로 측정하며, 피해 요인은 조사시점을 기준으로 지난 1년 사이에 실제로 범죄피해를 당했는지, 피해를 당했다면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측정하였다.
성별은 여성 50.4%, 남자 49.6%이며, 연령은 20대 15.8%, 30대 16.3%, 40대 20.1%, 50대 20.6%, 60대 이상 27.3%로 나타났다. 직업분포는 전문직을 포함한 관리/사무직이 47.0%로 가장 많았고, 판매/서비스/노동직이 19.9%, 자영업/농림어업 등이 11.5%, 주부 16.6%, 학생 5.0%로 나타났다. 개인소득은 100만원 미만 18.7%, 100만원 이상∼200만원 미만 18.9%, 200만원 이상∼300만원 미만 23.1%, 300만원 이상∼500만원 미만 24.4%, 500만원 이상 15.0%로 나타났다(<표 2> 참조).
가구 요인 중에서 가구소득은 100만원 미만 5.9%, 100만원 이상∼300만원 미만 23.6%, 300만원 이상∼600만원 미만 46.6%, 600만원 이상∼1,000만원 미만 19.5%, 1,000만원 이상 4.5%로 나타났다. 혼인상태는 기혼 33.4%, 미혼 59.6%, 사별이나 이혼 7.0%로 나타났고, 가구규모는 1인 가구 13.1%, 2인 가구 21.0%, 3인 가구 28.6%, 4인 이상 37.3%로 조사되었다. 주택유형은 아파트/오피스텔 거주율이 높은 가운데, 비교적 준공일이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오피스텔이 16.3%인 반면, 계단식 아파트/오피스텔이 54.9%로 가장 많았으며, 단독/연립/다세대 주택 가운데 지상에 거주하는 비율이 26.7%, 단독/연립/다세대 중에서도 지하나 옥상에 거주하는 비율이 2.1%로 나타났다.
지난 1년 동안 한 번이라도 범죄피해를 당한 비율은 37.8%로 주거침입이나 손괴피해 등 가구범죄피해를 당한 사람이 15.4%, 절도나 사기 등 재산범죄피해를 당한 사람이 18.8%, 폭행이나 성폭력 등 폭행범죄피해를 당한 사람이 3.6%로 조사되었다.
잠재프로파일분석(lantent profile analysis, LPA)은 잠재계층(latent class)을 추정하는 준모수적 집단중심 접근방법(semiparametric group based approach)의 한 유형으로(Nagin, 1999; Muthén, 2006) 개인이 응답한 것을 바탕으로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집단을 추정하여 분류하는 기법이다. 이러한 유형분류는 군집분석과 다르게 추정에 기반하기 때문에 잠재계층 혹은 잠재프로파일이라고 한다(노언경 외, 2017). 잠재집단의 추정은 양적 분석 경향의 변수중심접근(variable-centered approach)과 다르게 양적 분석과 질적 분석의 결합을 추구하는 사례중심접근(person-centered approach)이라고도 불린다. 어떤 개념을 구성하는 지표(indicator)의 연속성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지표별 상대적 특성을 비교하여 유형을 구분함으로써 양적 분석에 질적 요소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잠재프로파일을 적용하면 변수중심 분석에서 간과하는 이질성을 포착하여 추정에 기반한 모집단 내 하위집단을 추출할 수 있다(Bennett et al., 2016).
이 논문은 범죄 두려움을 측정하는 지표를 통해 잠재프로파일을 분류하고, 이러한 유형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유형화에 따른 결정요인은 다항로짓모델(multinomial logit model)을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다항로짓모형은 연속형 종속변인이 아닌 명목형 종속변인의 경우, 주어진 범주에 대한 모든 조합을 두 쌍씩 비교하여 여러 이항모형을 동시에 분석하는 방법이다(Long, 1997). 분석을 위한 통계프로그램으로는 Mplus8.4와 Stata14.0를 사용하였다.
Ⅳ. 분석 결과
일반적으로 잠재프로파일의 선택 기준은 정보지수(information criterion), 모형의 비교, 분류의 질, 분류의 비율 등이 활용된다. 정보지수로 가장 많이 활용되고 있는 AIC(Akaike Information Criterion)와 BIC(Bayesian Information Criterion)는 값이 작을수록 좋은 모형을 의미한다. 모형의 비교는 k개와 k-1개의 잠재프로파일 중 어떤 모형이 적합한지 검증하는 것으로 조정된 차이 검증(LMR, Lo-Mendell-Rubin adjusted likelihood ratio test)과 모수적 부스트랩 우도비 검증(BLRT, parametric bootstrapped likelihood ratio test)이 유의하면 k-1개를 기각하고 k개인 모형을 지지할 수 있다. 분류의 질은 0과 1 사이의 범위에 있는 엔트로피(entropy) 값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에 가까울수록 좋은 모형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0.8 이상이면 좋은 모형으로 평가한다. 분류의 비율은 최소 비율 집단이 5% 미만이면 우연히 발생한 것으로 간주한다(노언경 외, 2017: 79).
모형의 평가기준에 따르면, 잠재프로파일은 4개가 가장 적합한 것으로 나타난다(<표 3> 참조). 그러나 분석 결과, 잠재집단1과 잠재집단3은 분류유형의 특성이 거의 유사한 집단으로 파악되어 하나의 집단으로 간주해도 무방하다고 판단하였다. 잠재계층 혹은 잠재프로파일 분석은 준모수 추정에 기반하여 잠재집단의 수를 결정하는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지만, 통계적 판단 기준이 집단의 분류에 결정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분류된 잠재집단은 이론적으로 경험적으로 충분히 설명되고 해석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노언경 외, 2017). 이 논문은 집단 유형의 해석적 의미와 간결성을 고려하여 잠재집단1과 잠재집단3을 하나의 집단으로 보고, 3개의 잠재집단을 중심으로 분석을 전개하기로 한다.
잠재프로파일분석을 통해 분류된 3개의 집단 유형을 살펴보면, 잠재집단1(Class-1)은 추상적 두려움과 구체적 두려움 수준은 매우 낮지만, 코로나 이후 두려움은 높아지는 경향을 확인할 수 있다. 잠재집단2(Class-2)는 추상적 두려움과 구체적 두려움은 물론 코로나 이후 두려움도 다른 집단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잠재집단3(Class-3)은 추상적 두려움과 구체적 두려움이 보통 수준으로 코로나19에 따른 두려움이 잠재집단2(Class-2) 만큼 높지는 않으나, 잠재집단1(Class-1) 만큼 낮은 수준도 아니다(<그림 1> 참조).
잠재프로파일을 통해 나타난 유형별 특성을 고려할 때, 잠재집단2는 코로나 이전은 물론 코로나 이후에도 범죄 두려움이 상시적으로 높은 ‘불안집단(anxious group)’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잠재집단3은 코로나 이전이나 코로나 이후 범죄 두려움이 보통 수준으로 어느 정도 두려움을 인식하면서 일상생활에서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늘 주의하는 ‘신중집단(cautious group)’으로 명명할 수 있다. 잠재집단1은 평소 범죄 두려움에 무심하였으나, 코로나19 이후 범죄증가에 대한 우려, 자신과 가족의 피해가능성을 우려하기 시작한 ‘경계집단(alert group)’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프 패턴에서 주목할 것은 추상적 두려움과 구체적 두려움에서는 집단 간 차이가 뚜렷이 구분되는 반면, 코로나 이후 두려움에 대해서는 집단 간 차이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오히려 수렴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9) ‘불안집단’이 코로나 이전이나 이후 두려움에 대한 반응 정도가 높은 집단이라면, ‘경계집단’은 코로나 이전과 달리 코로나 이후 범죄 두려움에 대한 반응이 높아진 집단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변화된 범죄 두려움의 성격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집단별로 추상적 두려움, 구체적 두려움, 코로나에 따른 두려움의 상관관계를 연결망을 통해 살펴보았다. ‘경계집단’ 경우, ‘밤에 혼자 집주변을 다닐 때 두려움’, ‘밤에 혼자 골목길을 걸을 때 두려움’, ‘일상에서 내가 피해를 당할까봐 두려움’ 등 추상적 두려움과 일반적 두려움 간 정(+)적인 상관성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일상에서 내가 피해를 당할까봐 두려움’은 ‘코로나 이후 범죄증가에 대한 두려움’과 ‘코로나 이후 나와 가족의 피해 두려움’에 연결되고 있어 구체적 두려움을 매개로 코로나 이후 두려움과 상관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불안집단’은 추상적 두려움과 구체적 두려움은 물론 코로나 이후 두려움까지 정적인 상관성을 보여주고 있어 모든 종류의 두려움이 응집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신중집단’은 다른 두 집단과 비교해 추상적 두려움과 다른 유형의 두려움 간에 상관성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났다(<그림 2> 참조).
요컨대 추상적 두려움, 구체적 두려움, 코로나 이후 두려움 간 상관성은 ‘불안집단’에서 가장 뚜렷한 가운데 이들은 여러 가지 응집된 형태의 두려움을 형성하고 있다면, ‘경계집단’과 ‘신중집단’ 경우에는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피해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매개로 코로나 이후 가족의 피해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상호 연계된 형태의 두려움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잠재프로파일을 통해 분류한 경계집단, 불안집단, 신중집단을 개인 요인에 따라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았다(<표 4> 참조). 성별은 여성일수록 불안집단에, 남자일수록 경계집단에 속하는 비율이 높았다. 신중집단은 남자가 조금 더 많기는 하나, 불안집단이나 경계집단에 비해 성별 차이가 뚜렷하지는 않았다.
연령별로 살펴보면, 불안집단은 20대에서, 경계집단은 40∼50대에서, 신중집단은 60대 이상에서 상대적으로 많으나, 연령에 따른 집단 차이가 성별만큼 분명하지 않았다. 직업별로는 불안집단은 주부에서, 경계집단은 전문/관리/사무직에서, 신중집단은 판매/서비스/노동직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교육수준은 집단 간 차이가 뚜렷하지 않았다. 개인소득별로는 불안집단은 200만원 미만에서, 신중집단은 500만원 미만에서, 경계집단은 500만원 이상에서 각각 상대적으로 높았다.
가구 요인에 따라서도 집단 간 특성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았다(<표 5> 참조). 가구소득별로 신중집단은 가구소득 300만원 미만에서, 불안집단은 600만원 미만에서, 경계집단은 600만원 이상에서 각각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혼인상태별로는 불안집단에서 기혼 비율이 높은 편이나 집단 간 차이가 뚜렷하지는 않았다.
가구규모별로 살펴보면, 불안집단은 가구규모가 클수록, 경계집단과 신중집단은 가구규모가 적을수록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주택유형은 세 집단 모두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비율이 매우 높은 가운데 불안집단은 복도식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비중이, 경계집단은 지하나 옥상을 포함한 단독·연립·다세대 주택에 거주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피해 요인에 따른 집단 간 차이를 비교한 결과, 경계집단과 신중집단에서는 피해경험이 없는 비율이 높은 반면, 불안집단은 피해경험이 다른 두 집단에 비해 높았다. 구체적인 피해유형을 살펴보면, 불안집단에 속한 사람이 경험한 피해유형은 폭력범죄피해보다는 주거침입, 손괴, 절도, 사기 등 재산관련 범죄피해가 많았다.
개인 요인, 가구 요인, 피해 요인에 따른 집단 간 특성 차이를 정리해 보면, 불안집단은 주로 여성, 20대, 주부, 가구소득 중간 수준, 가구원수가 많은 가구, 복도식 아파트/오피스텔 거주, 범죄피해 경험자의 비중이 높은 반면, 경계집단은 남자, 40∼50대, 전문/관리/사무직, 가구소득 상위 수준, 가구원수가 적은 가구, 범죄피해 비경험자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표 6> 참조).
다만, 이러한 집단 간 특성 비교는 기술통계에 기초한 것으로 다변량 분석에 기초한 결과는 아니다. 이 논문에서는 개인 요인, 가구 요인, 피해 요인을 모두 포함한 분석모형을 통해 잠재집단을 구분하는 결정요인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신중집단을 범주집단으로 한 다항로짓모형 분석 결과, 신중집단과 경계집단을 분류하는 요인으로는 성별, 연령, 가구소득, 가구규모, 주택유형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였고, 신중집단과 불안집단을 구분하는 요인으로는 성별, 직업, 피해유형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였다. 달리 말하면, 코로나 이후 새롭게 범죄 두려움을 인식하기 시작한 경계집단(vs. 신중집단)에 속할 가능성은 남자일수록, 연령이 낮을수록, 가구소득이 높을수록, 가구규모는 적을수록, 계단식 아파트/오피스텔에 비해 단독/연립/다세대주택에 거주할수록 높아진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코로나 이전이나 이후 지속적으로 두려움을 느끼는 불안집단(vs. 신중집단)에 속할 가능성은 여자일수록, 주부일수록, 가구범죄피해나 재산범죄피해를 경험할수록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표 7> 참조).10)
이러한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코로나19 이후 범죄 두려움에 대한 인식은 과거 피해경험 등으로 인해 상시 두려움을 느끼는 여성 중심의 ‘불안집단’, 비록 피해경험은 없지만 취약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자신과 가족의 피해가능성을 염려하는 남성 중심의 ‘경계집단’, 역시 피해경험은 없지만 비교적 안정된 주거환경에서 조심스럽게 살아가는 ‘신중집단’ 등 몇 가지 형태로 집단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Ⅴ. 결론
코로나19는 사회이론가들이 경고한 위험사회의 위기를 그대로 보여준 역사적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도구적 이성에 기초한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에 힘입어 경제 및 사회체계는 급속한 전환을 맞이하였으나 전 지구적 규모의 잠재적이고 통제불가능한 위험은 국가 시스템 무력화, 경제 불평등 심화, 공동체 신뢰 약화를 가져왔고, 각 개인은 삶에 대한 통제감 상실, 사회적 배제와 낙오에 대한 불안으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런 불안한 상황이 지속되는 와중에 코로나19는 개인들의 일상은 물론 의식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일상의 변화는 여타 사회적 행위와 마찬가지로 범죄현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전 세계적으로 감염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국가 통제의 강화,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실업에 따른 고통이 전이된 불안으로서 범죄 두려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범죄는 낯선 타자에 대한 두려움을 정당화하고 표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비록 불안이 애매모호한 개념이기는 하지만, 범죄 두려움과 같은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 어느 정도 실체를 확인할 수 있다면 공동체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논문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후기 근대사회가 불러온 대표적 위기로 규정하고, 사회적 불안의 표상으로서 범죄 두려움이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하여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코로나19 발생 이후 범죄 두려움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어떤 형태의 집단적 분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유형화를 시도하였다. 주요 발견사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잠재프로파일 분석을 통해 범죄 두려움 인식을 중심으로 3개의 잠재집단을 구분할 수 있었다. ‘경계집단’으로 명명한 첫 번째 집단은 코로나19와 무관한 추상적 두려움과 구체적 두려움의 수준은 낮았지만, 코로나19에 따른 범죄 두려움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불안집단’으로 명명한 두 번째 집단은 추상적 두려움과 구체적 두려움은 물론 코로나19에 따른 범죄 두려움도 다른 집단과 비교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신중집단’으로 명명한 세 번째 집단은 추상적 두려움과 구체적 두려움뿐 아니라, 코로나19에 따른 범죄 두려움도 ‘경계집단’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불안집단’에 비해서는 낮은 수준을 보였다. ‘불안집단’이 코로나 펜데믹과 무관하게 범죄 두려움이 높은 집단이라면, ‘경계집단’은 코로나19 이후 범죄 관련 인식이나 두려움에 대한 반응이 높아진 집단이며, 이러한 ‘경계집단’의 출현은 코로나19 이후 범죄 두려움과 관련하여 새로운 집단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둘째, ‘불안집단’은 추상적 두려움과 구체적 두려움은 물론 코로나 이후 두려움까지 모든 종류의 두려움이 응집된 형태를 보였다. ‘신중집단’은 다른 두 집단과 비교해 추상적 두려움과 다른 두려움 간의 연관성이 비교적 낮았으나, ‘경계집단’은 구체적 두려움을 매개로 코로나에 따른 범죄 두려움과 높은 상관성을 보였다. ‘불안집단’에 속한 개인일수록 코로나19 이후 모든 형태의 범죄 두려움이 응집된 형태로 불안한 심리를 형성하고 있다면, ‘경계집단’에 속한 개인일수록 자신의 피해가능성에 대한 구체적 두려움과 코로나19 이후 가족의 피해가능성에 대한 대리두려움이 상호 연계된 형태로 불안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개인 요인, 가구 요인, 피해 요인에 따른 차이를 비교한 결과, ‘불안집단’에는 여자, 20대, 주부, 중간수준의 가구소득, 가구원이 많은 가구, 복도식 아파트/오피스텔 거주, 과거 범죄피해 경험자 비율이 높았다. 반면, ‘경계집단’에는 남자, 40∼50대, 전문/관리/사무직, 상위수준의 가구소득, 가구원이 적은 가구, 과거 범죄피해 비경험자의 비율이 높았다.
넷째, 다항로짓모형을 통한 결정요인 분석 결과, ‘경계집단’을 분류하는 요인으로는 성별, 연령, 가구소득, 가구규모, 주택유형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였고, ‘불안집단’을 분류하는 요인으로는 성별, 직업, 피해유형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였다. 즉, ‘경계집단’은 남자일수록, 연령이 낮을수록, 가구소득이 높을수록, 가구규모는 적을수록, 단독/연립/다세대주택에 거주할수록 속할 가능성이 높았고, ‘불안집단’은 여자일수록, 주부일수록, 범죄피해를 경험할수록 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코로나19 이후 범죄 두려움에 대한 인식은 직간접 피해를 경험하고 두려움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여성 중심의 ‘불안집단’, 비록 피해경험은 없지만 코로나19 이후 불안한 경제상황과 취약한 주거환경으로 인해 자신과 가족의 피해가능성을 염려하기 시작한 젊은 남성 중심의 ‘경계집단’, 역시 피해경험은 없지만 비교적 안정된 주거환경에서 일정 수준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신중집단’의 형태로 집단 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후기 근대사회의 사회적 불안과 범죄 두려움의 관계 속에서 주목되는 집단은 코로나19 이후 범죄 두려움에 반응하기 시작한 ‘경계집단’이다. 서구를 비롯해 산업화에 성공한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은 사회계층의 상승이동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신자유주의 가치관을 충실히 내면화하면서 삶은 스스로 설계하고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매번 치열한 경쟁에서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것을 체화하며, 이른 나이에 시작된 생존경쟁이 쉽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도 몸으로 깨닫고 있다. 유연화된 사회를 사는 사람들은 생애과정의 매 순간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늘 고민한다. 성공에 대한 약속보다 다수를 배제하는 방식의 위험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소식보다 부정적인 소식에 관심을 더 가지며, 어떤 국가나 사회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애매모호한 불안은 의식의 긴장을 더욱 고조시킨다(Bude, 2015). 대표적 위험사회의 징후인 코로나19로 인해 자신과 가족의 피해가능성을 염려하기 시작한 집단은 팬데믹 이후 국가의 통제에 따른 자유의 축소, 경제위기로 인한 불평등의 심화, 안전에 취약한 주거 형태,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차별 등 애매모호한 사회적 불안을 타자에 대한 범죄 두려움으로 내면화해가고 있다. 어쩌면 코로나19는 기존에 은폐되어 있던 문제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사회적 리트머스’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이향규, 2021).
이 논문은 후기 근대사회의 사회적 불안과 개인의 관계라는 거시적인 담론을 활용하여 코로나19 이후 높아진 사회적 불안이 범죄 두려움 인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관한 미시적인 분석을 시도하였으나, 2차 자료를 이용함으로써 이론적 논의에 충분히 부합할만한 지표와 변수를 사용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코로나19에 따른 두려움의 측정이 차별과 혐오로 인한 범죄증가의 우려, 자신과 가족에 대한 혐오범죄의 피해가능성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거대 담론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을 충분히 담아내기에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아울러 범죄 두려움에 대한 인식의 집단 분화를 예측하는 거시수준의 지역적 변인이나 불평등 변인을 고려하지 못한 점도 한계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후속 연구에서는 엄밀한 측정을 통해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후기 근대사회의 위기 속에서 두려움의 실체와 원인이 무엇인지 더 구체적으로 밝히는 연구가 수행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