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자활사업은 빈곤 탈출을 위해 ‘시민사회’ 영역에서 시작된 빈민운동이 ‘국가’가 운영하는 제도 영역으로 포섭되어 ‘시장’에서 빈민들이 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업이다. 이 논문은 자활사업이 실행되는 과정에서 국가와 다른 사회세력과의 관계가 어떻게 변경되었고, 그로 인해 생겨난 변화는 무엇인지, 제도를 구성하는 행위자들 간의 역학관계 변화에 따라 제도의 기능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분석의 중심으로 삼고자 한다. 한편, 이 논문에서 분석 대상으로 설정한 자활사업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라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사업을 말한다. 이 논문에서 자활사업은 빈민 자활을 위한 모든 사업을 일컫는 보통 명사가 아니라, 국가 제도 안에서 펼쳐지는 사업을 뜻하는 고유 명사로 규정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자활사업은 1990년대 초반 빈민 밀집 지역에서 생산공동체를 조직해 빈민들의 삶을 개선하고자 하는 운동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 운동이 국가 제도로 편입되어 국가가 자원을 제공하고, 민간이 사업을 실행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자활사업은 2000년 10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면서, 노동할 능력이 있는 수급자에게 자활에 필요한 사업에 참가할 것을 조건으로 생계급여를 지급하고, 자활 지원 서비스와 각종 자활사업 참여 기회를 제공해 빈곤 탈출을 유도하는 제도이다. 이 사업은 보건복지부 사업과 고용노동부 사업이 결합되어 있다. 고용노동부 자활사업은 자활역량 평가에서 비교적 고득점을 얻은 집중 취업 지원 대상인 사람을 노동시장에 진출시키기 위한 사업이고, 나머지는 모두 보건복지부 산하의 자활사업으로 되어 있다. 사업 추진체계를 보면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 시·도, 시·군·구, 읍·면·동 등의 국가 기구와 중앙·광역·지역자활센터의 민간 기구들이 협치(governance) 형태로 결합되어 있다. 자활사업은 국가 관료 조직과 함께 자활사업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민간 영역이 직접 서비스를 시행한다. 보건복지부 소관 자활사업 수행의 핵심 전달체계는 자활센터이다. 자활센터는 2020년 기준 1개의 중앙자활센터, 14개의 광역자활센터 및 250개의 지역자활센터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민관 협치 구조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정부 영역은 자활센터와 대상자의 선정과 예산, 그리고 평가를 담당하고 민간 영역은 프로그램의 개발과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민간이 결합해 시행하는 사회정책은 최근 ‘민간위탁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발견된다. 이것은 사회를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 빈민정책이 갖고 있는 중요성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이 변동 없이 본래의 목적을 유지하면서 시행되고 있지는 않다. 지배기구로서 국가의 정당성을 관철시키기 위해 복지라는 상위 목표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세부적인 제도 모습은 지속적인 변형 과정을 겪어 왔다. 이 과정을 역사적 제도주의 관점에서 분석하려 한다. 역사적 제도주의 관점은 제도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이고 완만한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권력관계 변화가 미치는 영향을 중요하게 고려한다.
제도의 존속과 변형에 대한 이들의 논의는 다음 장에서 개괄할 것인데, 이 논리를 자활사업 제도의 변동 과정에 대입해 정치 맥락의 변화와 제도 특성 간의 상호작용 양상에 따라 제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분석하려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발생하는 자활사업 대상자와 참여자, 자활 프로그램, 전달체계의 변화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분석 시기는 권력관계의 재편에 따른 질서 변화를 추적하기 위해 제도화 이후 민주정부 시기(2001년∼2007년), 보수정부 시기(2008년∼2016년)로 구분할 것이다.
Ⅱ. 제도의 존속과 변형
역사적 제도주의자들은 전반적으로 제도를 정치 또는 정치경제의 조직 구조에 포함된 공식·비공식적 절차, 일상, 규범 및 협약으로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이들은 제도를 조직, 그리고 공식 조직에 의해 공포된 규칙이나 협약과 연관시킨다(Hall & Taylor, 1996: 938). 1990년대 중후반 이후 진행된 역사적 제도주의 연구는 역사적 전환점에서 커다란 변화를 통해 제도가 새롭게 형성되어 지속된다는 단절된 균형모형(punctuated equilibrium model)(Krasner, 1984)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많이 해왔다. 단절된 균형모형에 따르면 제도는 급격하게 변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완만하게 제도가 변하는 것을 설명하는 데에는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Campbell, 1997, 2001, 2004, 2005; Thelen, 2003, 2011; Streeck & Thelen, 2005).
캠벨(Campbell)은 제도가 변할 때에는 경로의존(path dependency)과 진화적인(evolutionary) 특징을 동시에 갖는다고 설명한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들에 의해 선택의 범위가 제한된다면 경로의존의 과정이 될 것이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 과거에 존재하던 요소들과 재결합된 것이라면 그것은 진화의 과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제도의 변화는 사실 이러한 이분법적인 구도보다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이다. 즉, 단순한 진화 대 혁명적 변화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대신에 이러한 모든 변화의 양상들이 연속선 상에 나타나는 보다 복합적인 것으로 제도변화를 파악해야 한다(Campbell, 2005: 60-61). 경로의존이라는 개념은 연구자들이 제도의 변화를 둘 중의 하나로, 즉 매우 사소하면서 어느 정도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사고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중요하지만 돌발적이고 불연속적인 것으로 사고하도록 이끈 것으로 보인다는 셀렌(Thelen, 2011: 64)의 비판 역시 캠벨의 논리와 유사하다. 그녀는 특히 제도가 등장하여 살아남고 시간이 흐르면서 진화하는 정치적 과정이 주기적인 정치적 동맹의 재편 및 재협상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패턴을 보인다는 점에 주목한다(Thelen, 2011: 69). 또한 이러한 점진적이고 완만한 변화가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셀렌은 슈트렉(Streeck)과 함께 한 연구에서도 이러한 입장을 고수한다. 이들은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변화의 과정을 점진적 변화와 급격한 변화로 분류하고, 변화의 결과를 연속성과 불연속성으로 나누어 <표 1>과 같은 모형을 제시한다.
변화의 결과 | |||
---|---|---|---|
연속성 | 불연속성 | ||
변화의 과정 | 점진적 변화 | 적응을 통한 재생산 (Reproduction by adaptation) |
완만한 변형 (Gradual transformation) |
급격한 변화 | 생존과 복귀 (Survival and return) |
해체와 대체 (Breakdown and replacement) |
출처: Streeck & Thelen(2005: 9).
단절된 균형 모델에 의하면 불연속성을 야기한 ‘실제’ 변화는 제도의 급격한 해체와 대체를 불러일으킨다. 이 전통을 따르는 저자들 역시 점진적인 변화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이것을 제도의 연속성을 보호하기 위해 적응을 하는 것으로 인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점진적인 변화가 누적된 결과로서도 연속성이 나타난다. 이것은 적응적인 자기 재생산이나 안정성의 근저에서 극적인 제도의 재구성으로, 그리고 역사적인 단절점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이어진다. 즉, 변화의 과정이 급격하게 이루어져 그 결과가 연속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점진적인 변화와 함께 그 결과가 불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이중에서 슈트렉과 셀렌이 주목하는 것은 완만한 변형이다. 이러한 완만한 변화가 변혁적인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에 주목하는 것이다(Streeck & Thelen, 2005: 8-9).
이들은 제도의 완만한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대체(displacement), 중첩(layering), 표류(drift), 전환(conversion)이라는 네 가지의 점진적 변화 유형을 제시한다(Streeck & Thelen, 2005; Mahoney & Thelen, 2010).1) 대체는 기존의 지배적인 규칙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특정 시기에 제도의 모습이나 기능을 좌우하는 지배적인 요소들이 상황 변화에 따라 한계가 발생하면 기존에 억눌려 있던 요소를 활성화해 제도 변화가 촉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첩이란 기존의 제도에 새로운 요소들이 덧붙여져서 기존 제도의 운영방식에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를 말한다. 중첩은 전혀 새로운 제도나 규칙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제도를 부분적으로 수정하거나, 새로운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 특징이다. 중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개념은 차별적인 성장(differential growth)이다. 제도의 부분 수정을 통해 제도를 보완하거나 정교화하는 상황에서 새롭게 도입된 요소가 기존 제도 논리와 겹쳐지면서 더 빠르게 성장해 제도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 한편,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제도가 변동하지 않고 경직성을 보이면서 그 결과로 제도가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 궁극적으로는 제도의 효과성이 떨어지게 된다. 이렇게 제도가 위축되거나 쇠퇴하게 되는 것을 표류라고 부른다. 전환은 기존의 제도가 새로운 목적이나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전환은 환경의 변화에 대처해서 기존의 제도를 새로운 목적에 부합하도록 변경할 때 나타날 수도 있고, 혹은 권력관계의 변화에 따라 제도를 설계할 당시에는 참여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제도를 장악하게 됨으로써 새로운 목적으로 제도를 바꿀 때 나타날 수도 있다(Streeck & Thelen, 2005: 19-26; Mahoney & Thelen, 2010: 15-17; 하연섭, 2011: 174-175).
제도가 이렇게 점진적으로 변화하거나 재생산되는 과정에서 셀렌(2003)이 강조한 것 중의 하나가 권력의 중요성이다. 캠벨(2010) 역시 제도의 재생산과 변화의 과정이 투쟁과 갈등, 협상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 때 권력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역학관계에 따라 제도 변화에 미치는 요인을 마호니와 셀렌이 정리한 것이 <표 2>이다. 우리가 <표 2>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제도의 특성과 정치적 맥락이 제도 변화에 미치는 요인과 유형이다. 여기서 제도의 특성은 제도를 급격하게 변경하지 않고도 현실에 맞춰 해석하고 실행할 수 있는 재량수준을 말한다. 정치적 맥락은 정치 행위자가 기존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변화를 거부하는 수준을 말한다. 이 둘의 상호작용에 따라 제도가 중첩, 표류, 대체, 전환이라는 상이한 점진적 변화 상태를 보인다는 것이다(Mahoney & Thelen, 2010: 18-25). 이 논문은 이 변수를 도입해 자활사업을 분석할 것이다. 이어서 변화된 정치 맥락과 제도 특성이 자활사업 제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는 참여자와 프로그램, 전달체계의 변화를 통해 밝혀내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소를 통해 밝힐 수 있는 제도변화의 유형은 당대의 유일한 특징이라기보다는 여러 요인들 중에서 특별히 부각되는 것을 추출해 설명할 것이다.
출처: Mahoney & Thelen(2005: 19).
Ⅲ. 민주정부 시기 제도 변화(2001년∼2007년): 사회적 자활과 경제적 자활 중첩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와 함께 시작된 정권이었다. 김대중 정부는 생산적 복지를 내세우면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 민주적 시장경제라는 비전을 내세웠다.2)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개혁의 당위성이 절대적이었던 당시의 김대중 정부가 취한 방식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노동정책이었다. 그 결과는 빈부격차의 확대와 장기실업 문제의 지속이었다. 또한, 민주적 시장경제라는 비전은 실질 경제 영역에 정책으로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수사였다. 민주정권이 집권하고 IMF 위기를 극복했다고 자처했지만, 사실 한국의 가장 강력한 세력인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그 어느 때보다 강화되었다. 구조조정과 유연한 노동체제를 수용한 것은 노동의 힘을 쇠약하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 확대는 사회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보완 요소로 작동하게 된다. 그리고 사회운동의 강한 압력과 대통령 스스로 지니고 있었던 개혁 성향이 복합 작용해 복지부문 확장이 이루어진 것이라 판단할 수도 있다.3)
이어진 노무현 정부는 복지정책과 관련해서 이전 정부들과는 달리 집권 초기부터 복지정책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복지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했다. 집권 직후 “참여복지 5개년 계획”을 제시하였고, 그 이후 2005년 9월엔 “희망한국21-함께 하는 복지”를, 2006년 8월엔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집권 후반기에는 “사회투자국가”를 근간으로 한 복지개혁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다. 자활사업과 관련해서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적용범위를 확대해 빈곤층 소득보장을 강화하려는 정책을 취했다.
한편, 노무현 정권 후반기에 들어서는 노동 빈곤층 지원을 둘러싸고 보건복지부와 노동부 사이에 갈등이 형성된다. 보건복지부는 새로운 자활지원법을 제정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연계를 유지하면서 단계적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 새로운 제도는 자활사업 참여자의 포괄 범위를 확장해 실직 빈곤층까지 대상으로 확대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서 노동부와 갈등이 표출된다. 2007년에 노동부를 중심으로 실직 빈곤층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제도 개편방안이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법’으로 제안되었다. 고용보험 적용범위 확대, 실직 기간이 장기화된 자발적 이직자에 대한 실업급여 지급, 연장급여의 활성화 등이 패키지로 제안되었다. 하지만 이 제도 개선 방안의 초점은 저소득 실직자에게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제공하면서 취업촉진급여라는 생계급여를 제공하는 제도를 신설하는 데 놓여 있었다(이태진 외, 2009: 240-242). 자활지원법은 국회의원의 법안 제안과 지역자활센터협회의 의견 제출, 시민사회단체의 공청회 개최 등을 통해 제정논의가 구체화 되었지만 이후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면서 논의가 가라앉았다.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 체제 하에서 실행된 자활사업은 시민사회와 협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제도로 정착된 초창기였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보다는 제도의 안착에 힘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했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복지정책과 대상범위 확대를 통해 빈곤층 소득을 보장하는 것에 힘을 기울였다. 자활사업을 유지하면서 제도 내부의 제한적 변화를 시도하는 입법을 시도하려 했지만, 관료 내부의 갈등과 정권 교체로 인해 그 시도가 좌절되었다. 두 정부는 자활사업이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확장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제도의 전면적 변화에 큰 중점을 두지는 않았다.
자활사업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고 시행되면서 정부 복지체제의 하위 제도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김대중 정부 시기에 정부와 민간 사이 관계는 초창기에는 협력 관계를 유지하다가 차츰 위계 관계로 변형되는 모습을 보였다. 자활사업 자체에 대해 많은 경험을 갖고 있던 시민사회 개입이 적극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정부 관료들이 자활사업 자체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관계는 관련 공무원들이 자활사업 체계에 대한 노하우를 습득하고, 그것을 반복 실행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변형되었다. 초창기에 제도가 설계될 당시 자활사업은 민간 영역에서 시행되던 생산공동체 모델을 가져온 것이다. 빈민운동가들이 중심이 되어 수행된 이 협동조합 모형을 차용하는 것은 김영삼 정부 시기부터 정부 산하 연구원과 보건복지부, 빈민운동 리더들이 공동으로 논의해 왔던 사안이다. 그리고 외환위기 이후 시행된 공공근로사업과 특별취로사업도 기존에 실시되었던 시범 자활사업을 통해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구축한 체제를 유사하게 시행한 정책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정책 주관자로서의 정부와 집행자로서의 민간 영역 사이의 관계가 설정되었다. 이런 조건 때문에 정책 수립과 집행에 있어 초창기에 민간 영역 개입과 주도가 활발하게 벌어졌던 것인데, 그 관계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 관료와 시민사회 사이의 역학관계 구도 이외에 자활 제도 행위자의 관계 변동 양상에서 이 시기에 특징적인 것은 지역자활센터 사이의 갈등 관계가 서서히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지역자활센터로 지정된 비정부 부문 행위자의 성향이 다른 것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빈민운동 진영과 사회복지법인, 실업운동 단체가 주로 지역자활센터를 운영했는데, 이들이 추구하는 목표와 운영방식이 각각 달랐던 것이다. 사회복지법인 산하 지역자활센터는 자활사업을 사회복지사업의 일환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빈민운동 산하 기관과 접근 방식 자체에서 마찰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실업운동 단체가 위탁받은 지역자활센터는 자활사업을 조직의 안정을 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지규옥, 2016: 163). 지역자활센터 사이에 나타난 갈등관계는 이들이 단일한 목소리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게 했고, 현장에서 벌어지는 사업 방향 설정에도 곤란함을 가져온 원인이 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는 저소득층 노동유인정책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고, 노동빈곤층에게 장려금을 지급하며, 빈곤 아동들의 인적자본 향상을 위해 교육투자를 늘린 것이다. 이러한 정책의 공통점은 저소득층으로 하여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와 같은 공공부조에 의존하지 말고, 노동시장에 들어가서 스스로 자기 생활을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이 복지정책이라기보다는 노동정책이며, 저소득층의 생활보장이라는 사회복지적인 의미보다는 경제 효율성 증대라는 경제적인 의미가 더 큰 정책이라는 비판도 있다(조영훈, 2008: 229). 물론 노무현 정부는 노동빈곤층(working poor)의 존재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2004년 7월에 ‘빈부격차차별시정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로 설치했고, 2007년 7월에는 이 위원회를 ‘양극화 및 민생대책위원회’로 개편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의지에 비해 공공부조 자체에 대한 비중을 높이 두었다고 볼 수는 없다(이태수, 2014: 248).4)
한편, 위에서 언급한 자활지원법 제정 논란에서 나타난 보건복지부와 노동부 사이의 갈등 관계를 확장해 보면 ‘지역자활센터협회와 보건복지부의 논리’ 대 ‘노동부 논리’의 갈등이었다고 볼 수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갖고 있는 내재적 한계를 극복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 시민사회 진영에서 제기되었고, 보건복지부가 그것을 수용하려는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노동부의 입장에서는 실직자에 대한 정책을 관할하는 자신들의 입지가 축소되는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정부와 시민사회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정부 부처 사이의 관료정치 양상이 부각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민관 협력 관계에서 위계 관계로 변형되는 상황, 지역자활센터 사이에 생겨난 갈등, 늘어나는 빈부 격차, 노동을 통해 빈곤을 해결하려 했던 정책 방향 등이 이 시기에 나타난 변동이다. 이런 변화에 적응해 제도를 해석하고 실행할 수 있는 유연성이 낮아지게 되었고, 그로 인해 기존 제도에 새로운 제도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제도 변형을 추구하게 된다. 이 장의 이하 2-4절에서는 지금까지 살펴본 정치 맥락과 제도 특성 하에서 자활사업 참여자와 프로그램, 전달체계가 어떻게 변동되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대상자는 노동 능력이 있는 수급자 중 자활사업에 의무 참여해야 하는 조건부 수급자, 자활급여 특례자, 일반수급자, 차상위 계층이다.5) 먼저 자활사업 대상자별 참여인원은 <표 3>을 통해 변화 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자료: 보건복지백서 각 연도, 2002년 자활사업안내6).
2007년 현황을 보면 2002년과 비교할 때 특히 차상위 계층 참여가 많이 증가한 것을 볼 수 있다. 차상위 계층 증가는 특히 2004년부터 두드러지는데, 이것은 자활사업 대상을 차상위 계층으로 확대한 정부 정책 변화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늘어난 차상위 계층 1만 명에게 저소득층 집수리와 무료 간병 등 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해 저소득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 서비스 제공과 일자리 제공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려 한 것이다. 초창기부터의 추이를 볼 때 눈여겨 볼 지점은 수급자 참여가 2002년에 급격하게 감소한 이후 2007년도 현재 6만 명 정도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제도 도입 초기에 자활사업 참여자가 급감했던 원인은 수급자들이 자활프로그램을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지 못했고, 기초보장제도 급여체계가 일을 해도 추가적인 소득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노대명, 2010: 21).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대상자들은 일반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여건에 따라 각각의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참가자의 다수는 복지부에서 시행하는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복지부에서 시행하는 자활근로 프로그램은 2003년까지 두 종류로 나뉘어 있다가 2004년부터는 4종류로 확대되어 세분화되었다. 자활사업 프로그램별 참여자 현황의 변화는 2003년도까지는 <표 4>, 2004년부터 2007년까지는 <표 5>와 같다.
연도 | 계 (A+B) | 복지부(시군구 자활프로그램) | 노동부 (B) | |||||
---|---|---|---|---|---|---|---|---|
소계 (A) | 자활기업 | 자활근로 | 지역봉사, 재활프로그램 등 | |||||
소계 | 업그레이드형 | 취로형 | ||||||
2001 | 52 | 48 | 2 | 40 | 7 | 33 | 6 | 4 |
2002 | 47 | 45 | 1 | 39 | 10 | 29 | 5 | 2 |
2003 | 48 | 46 | 2 | 39 | 12 | 27 | 5 | 2 |
2001년부터 2003년까지의 경향을 보면 노동 강도가 약한 취로형에 압도적으로 많은 참여자가 몰려 있다. 이러한 편중과 참여자들 일부가 때때로 해당 사업에 안주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업그레이드 자활근로를 통한 취업 또는 빈곤탈출 전망이 불확실하고, 취로형 사업에 참여하여 노동소득이 감소해도 보충급여원칙에 따라 생계급여가 증가하여 실제 지급받는 공적이전소득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으로 판단된다(노대명 외, 2004: 80). 2004년 이후에도 이와 유사한 경향이 발견됨을 알 수 있다.
새롭게 생겨난 사회적 일자리형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2004년 14,000명, 2007년에는 18,000명으로 근로유지형 다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 당시 ‘사회적 기업 지원법’이 제정되면서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던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하지만 사회적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가 저소득층에게 안정되고 건전한 일자리를 제공하여 빈곤탈출을 돕기보다는 저소득층의 노동을 유도하거나 실업률을 낮추는 데 더 큰 목적(조영훈, 2008: 223)이 있었던 정책이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로 제기될 수 있다.
지금까지 자활사업 대상자와 참여자에 대한 현황을 살펴보았다. 이제 빈민들이 실제로 자활사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학교 사회복지연구소가 복지패널을 대상으로 2007년에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들이 수급자가 된 이유는 ‘그동안 했던 일을 그만두거나’(39.9%), ‘이혼이나 분가 등으로 인해 소득이 있는 가구원이 빠져나가서’(14.0%), ‘일은 하고 있지만 수입이 줄어들어서’(13.8%)였다. 국민기초생활보장 급여를 신청한 이유는 ‘기본적인 생계문제 해결’(71.7%), ‘의료급여 수급’(11.7%), ‘자녀 교육비 지원’(8.6%) 등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72.0%) 수급대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렵다고 예상하고 있었다(김미곤 외, 2007: 285-289).
보건사회연구원은 복지패널을 통한 종단연구와 함께 사회복지 공무원과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질적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이태진 외(2007: 460-492)에 의하면 자활사업 참여자들은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는 만족하고 있으면서도 노동 강도가 낮은 일에 젖어들어 스스로가 무기력해지고 있다는 것을 언급한다. 이들이 조건부 수급자의 지위로 자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수급자의 지위에서 벗어날 때 닥쳐오는 의료비와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활사업 참여로 인해 나오는 급여가 부족하다고 하면서 아르바이트 등으로 추가 소득을 충당하고 있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일반 노동시장으로 진출하기 어려운 이유로 건강 문제와 가구 여건, 낮은 인적자본으로 인해 취업할 일자리가 없다는 것을 들었다. 결국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자활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제 부분에서의 만족도 결여, 어쩔 수 없이 참여하고 있는 자활근로 등으로 한정한다면 자활사업 참여자는 수급을 조건으로 노동을 강제 당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탈수급이나 취업률 이외에도 자활사업 참여자들이 체감하는 효용은 존재한다. 자활 프로그램을 통해 정서적·사회적으로 도움을 받은 경우들이 있었다. 알코올 중독으로 사회생활뿐만 아니라, 일상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수급자가 자활사업 참여를 통해 술을 끊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경우, 장애로 인해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수급자가 자활사업에 참여하면서 여러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등이 그 예이다. 자활사업이 수급자에게 다른 수급자와 소통할 수 있는 교류의 장으로 사회적 자활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이태진 외, 2008: 127-129).
자활사업에서 시행되는 프로그램은 자활근로, (공동체)창업지원, 취업지원 등으로 구분할 수 있고, 보건복지부의 자활근로, 희망리본프로젝트, 자활기업, 사회적응프로그램, 고용노동부의 취업성공패키지 등으로 구체적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이인재 외, 2010: 39; 김정원 외, 2013a: 12). 한편, 자활근로는 2004년부터 기존 형태에서 더 세분화되었다.7) 이외에도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하는 지역봉사와 사회적응 프로그램이 있다.8) 사회적응 프로그램과 지역봉사는 참여율이 상당히 낮았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받는 실비가 너무 낮은데다가9) 조건 불이행시 생계급여가 중지될 수도 있어 반강제적으로 끌려가 노동을 한다는 인식도 있었다. 물론 참여자의 노동 능력이 전반적으로 낮아 사업 참여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었다.
이러한 프로그램 중에서 자활근로와 자활기업 등 즉시에 취업하기 곤란한 자들을 위한 사업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자. 자활근로사업은 기존의 단순노무 중심의 취로사업과 달리 자활을 촉진하기 위하여 보다 장기적인 계획 하에서 기술습득 지원과 동시에 노동 기회를 제공하는 자활지원사업의 한 종류이다. 그리고 자활근로사업단의 운영은 지역자활센터 활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업무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벌인 자활근로 사업을 보면 치매노인 간병, 저소득층 주택의 점검·수선을 위한 집수리 도우미 사업, 숲 가꾸기 등 산림사업, 자원재활용 사업, 청소, 세탁업 등이 있었다. 이중 간병과 집수리, 자원재활용, 청소 등은 후에 5대 표준화 사업으로 채택되는데, 2001년도에도 이미 자활근로의 주요한 아이템이었다. 2002년부터는 5대 표준화 사업을 선정해 중점적으로 추진한다. 간병, 음식물 재활용, 집수리, 청소, 폐자원 재활용 사업이 그것이다. 5대 표준화 자활사업단의 수는 2001년 505개에서 2007년 1,468개까지 꾸준히 증가했다. 사업단의 수가 증가한 만큼 참여자도 2001년 4,693명, 2002년 7,390명, 2006년 15,014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다가 2007년엔 14,867명으로 감소했다(보건복지백서 각 연도). 5대 표준화 사업은 자활사업으로 새로운 사업을 개발하는 데 있어 경직성을 준 단점과 자활사업 자체를 빠르게 확산시킨 장점을 동시에 갖고 있다.
자활사업은 사회적응프로그램과 자활근로를 거쳐 자활기업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정책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자활기업을 설립해 최종적으로 수급자 지위에서 탈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다. 자활기업을 위한 지원 정책으로는 사업자금을 융자해주거나 보호된 시장에서 사업의 안정을 모색하기 위한 우선 구매, 국공유지 우선 임대 등이 있다. 이 시기 자활기업 수와 참여자 수는 <표 6>과 같다.
연도 |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2007 |
---|---|---|---|---|---|---|
자활기업 수 | 136 | 234 | 323 | 439 | 597 | 842 |
참여자 수 | 1,435 | 1,411 | 1,940 | 2,302 | 3,100 | 5,200 |
2007년 말 현재 전국의 자활기업은 842개로 자활사업이 시작된 이후 그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2006년부터 기존의 증가 추세보다 더 많은 수의 자활기업이 생겨나기 시작해 2007년에는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대해 몇 가지 원인을 제기할 수 있다. 먼저 자활근로사업을 통해 자활기업으로 나아가는 기간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음으로 시장진입형 자활근로사업단의 자활공동체 전환 시기에 대한 규정이 강하게 작동된 시점과 맞물린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시장진입형 자활근로사업단의 자활기업으로의 전환 시기에 대한 규정은 2004년에 등장했으며, 기존 시장형 사업단에 대해서는 2005년까지 일부 유예기간을 두었다. 유예기간이 사라진 것이 2006년부터이며, 2007년부터 적용이 강화되었다. 한편, 2006년부터 지역자활센터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규모별로 차등화된 보조금 지원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많은 지역자활센터들이 이런 기준에 활동을 맞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제도적 강제에 따라 자활기업의 수가 급등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김정원 외, 2009: 82).
다음으로 자활기업 참여자의 임금을 통해 이들이 최종단계에서 탈수급에 성공하고 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2005년도의 현황을 보면 참여자 1인의 평균 임금은 388,600원에서 1,978,300원으로 편차가 심했고, 1인당 평균 임금은 900,240원이었다(자활정보센터, 2006: 71).10) 2005년 당시 최저임금은 시급 3,100원으로 8시간 근무기준 일급 24,800원, 226시간 근무기준 월급은 700,600원이었다. 중앙생활보장위원회에서 2004년 12월 발표한 2005년의 최저생계비는 1인 가구 401,000원, 2인 가구 669,000원, 3인 가구 908,000원, 4인 가구 1,136,000원이었다. 이것을 비교해 보면 자활기업의 1인당 평균임금은 2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보다는 높고 3인 가구의 최저생계비와 유사하며, 4인 가구의 최저생계비보다는 낮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자활기업이 영세한 규모와 적은 임금으로 인해 경제적인 성취는 취약했던 것이다. 이러한 임금 수준에 더해 통합급여체계로 인해 수급자로서 받았던 기본적인 급여까지 박탈 당한다면 굳이 자활기업을 창업해 일반 노동시장으로 진출할 이유가 크게 없었던 것이 참여자들의 상황이었다.
자활사업이 시행되는 시점부터 정부는 대상자를 구분하고, 그에 따라 관장하는 부서를 분리해 사업을 벌였다. 노동 능력 점수에 따라 일반 노동시장 진입을 목표로 한 취업대상자와 그 외 비취업대상자로 구분, 취업대상자에게는 노동부 취업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비취업대상자는 지역자활센터 중심의 자활사업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보건복지부는 형식적으로는 자활정책과 사업을 총괄적으로 관리한다. 하지만 조건부 수급자가 취업대상자와 비취업대상자로 분류되어 중앙 정부 차원에서는 노동부와 보건복지부로 이원화된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를 지역의 전달체계로 활용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도 노동부와 보건복지부 사이의 관료정치 양상은 결국 자활사업이 시행되고 나서도 이러한 이원화된 체제를 고착시켰다.
이로 인해 사업 추진 과정에서 책임소재가 명확하지 않고 추진절차 또한 복잡하다는 비판이 있다. 서비스 제공주체가 이원화되어 있어 대상자가 복지부와 노동부 서비스를 다 필요로 할 경우 서비스 이용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노대명 외, 2004: 292-293). 또한 각 관리 주체 간 상이한 지향성과 조직 문화 차이로 인해 원활한 연계가 현실에서 잘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더욱이 자활지원과 같은 통합 서비스는 대상자에 대한 적절한 사례관리를 전제로 하는데, 이원화된 관리시스템은 그 구조적 특성상 사례관리가 잘 이루어지기 어렵고, 다양한 서비스의 통합 연계 또한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김안나 외, 2006: 98).
한국 복지 전달체계 특징 중 하나는 정부와 민간의 엄격한 분리가 사실상 어렵다는 점이다. 정부가 급여지원 행정체계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하고, 전문 사회복지서비스는 주로 재정 지원을 받은 민간조직이 수행하는 것이 한국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특성이다(지은구, 2012: 57). 자활사업 역시 마찬가지인데, 자활사업을 직접 수행하는 자활센터가 민간조직이 운영하는 전달체계이다. 2007년까지 민간부문의 자활 전달체계로는 지역자활센터, 광역자활센터, 청소년자활지원관 및 사회적응 프로그램 실시 기관 등이 있었다. 특히 지역자활센터는 자활사업 수행의 핵심 기관이다. 지역자활센터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된 이후 2000년에는 70개, 2004년 242개소가 지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후 2011년에 새로 추가될 때까지 변화는 없었다.
지역자활센터를 구성하는 주체들은 모법인의 성격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나 그 기원을 도시빈민운동에 두는 탓에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성이 강한 사회복지기관으로 평가받았다.11) 그러나 자활사업 초창기에 비해서 제도 환경, 사업 환경, 주체 구성 등이 매우 달라지면서 지역자활센터들의 비판성 역시 약화된 것도 사실이다(김정원, 2008: 25, 2012: 96).
지역자활센터와 관련해 이 시기에 주목할 지점은 자활기업의 창업 수치와 맞물려 규모별로 차등화된 보조금을 지원하는 체계가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지역자활센터에 대한 규모별 지원제도는 2005년에 도입되었다. 자활사업 참여자, 자활사업단수 등을 고려해 규모별로 지원 규모를 달리한 것이다. 2006년에는 자활사업 참여 인원과 사업단 수 같은 산출 결과물 이외에 추가적으로 자활기업 수와 자활성공률, 참여자 만족도 같은 성과 측면 내용이 포함되었다(보건복지부, 2004, 2005, 2006 자활사업안내). 눈여겨 볼 사항은 자활기업을 몇 개 설립했는지가 성과 평가의 기준 중 하나가 되면서 제도가 강제하는 것에 따라 일단 자활기업을 창업해야만 하는 조건이 생성된 것이다.
한편, 이 시기 지역자활센터와 더불어 민간 부문 전달체계를 형성하고 있던 것은 광역자활센터이다. 광역자활센터는 수급자들의 탈빈곤을 도모하기 위한 자활지원체계가 주로 지역 내에서만 이루어지고, 서비스 제공주체가 복지부와 노동부로 이원화되어 이용자들의 편의를 도모하기가 어려우며, 자활지원기관간의 연계 및 서비스 제공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자활사업 네트워크 구축 및 연계를 통해 기존의 단편적인 자활지원체계를 개선하고, 지역 내 자활사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되었다(김태완·전지현, 2009: 78).
이상의 논의를 통해 민주정부 시기에 제도화되어 실시된 자활사업의 변동을 앞서 설정한 제도변화 유형을 통해 분석할 수 있다. 제도의 점진적 변화 양상 중 중첩을 설명하는 요인은 정치 행위자들이 기존 제도 변화를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고, 제도 변화에 적응해 제도를 해석하고 실행할 수 있는 유연성이 낮을 때 나타난다. 자활사업이 제도화된 이후 민주정부 시기의 변화 유형은 ‘중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중첩은 기존의 제도에 새로운 요소들이 덧붙여져 기존 제도의 운영방식에 변화를 가져오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에서 제도화된 자활사업은 노무현 정부까지 몇 가지 새로운 규칙을 도입하면서 유지되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 규칙이 제거되거나 무시되지는 않았다. 자활사업의 규칙으로 가장 기본적인 것은 “노동 능력이 있는 빈곤층의 자활”을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에서 중점 추진했던 일자리 만들기나 사회적 기업 지원법의 제정 등으로 인해 자활사업 참여자 구성이나 프로그램별 참여자에 변화가 나타났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이 자활사업의 기존 규칙을 완전히 대체한 것은 아니었다. 5대 표준화 자활사업이 확산되던 시기에 정부가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을 통해서도 이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창업을 지원하고 참여를 유도하는 프로그램이 점진적으로 도입된 것도 자활사업을 통해 정부가 실현하고자 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절차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노동 능력이 있는 빈곤층 자활이라는 목적에서 ‘자활’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제도의 방향에 대한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빈곤 탈출을 자활이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빈민 운동 진영에서는 빈민들의 삶 자체를 바꾸는 것, 즉 사회적 자활 부분을 포괄해서 해석하고 있었다. 이것이 자활 ‘공동체’에 대한 해석의 차이를 만들어낸 중요한 지점이다.
자활사업이 제도화된 초창기의 모습에서 시간이 흐르며 제도가 변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제도가 추구하는 성문화된 목표에도 큰 변화는 없었다. 일자리를 제공해 탈빈곤을 지원하고 노동 빈곤층이 자활할 수 있는 활성화 정책을 시행한다는 목표가 그것이었다. 하지만 제도가 시행되면서 점차로 탈빈곤과 탈수급을 동일시하는 현상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활공동체를 몇 개 이상 만들어야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주는 등 새로운 규칙들을 도입했다.
권력관계의 변화도 초창기에는 후반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민간의 영향력이 컸으나, 이후 정부 주도권이 강해졌다. 제도가 형성된 이후 정책 실행 노하우 습득에 일정 정도 시간이 필요했었고, 이후로는 전형적인 행정 공무원의 업무 처리 방식에 따라 고착화된 양태로 자활사업이 실행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자활사업의 전사인 생산공동체 시기 민간이 추구하고자 했던 운동 목표는 점차 제도 내부에서 흐려지게 되었다.
이처럼 제도가 추구하는 목표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해석에 있어 나타나는 차이는 성과평가(평가체계)와 관계된 새로운 규칙의 도입으로 인한 변화를 통해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자활기업은 생산공동체의 유산으로 자활사업이 제도화된 이후에도 사업의 최종 귀착지로 설정되어 있었다. 구제도의 유산으로 남아 지속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자활사업에는 정서적·사회적 자활에 있어 기존의 ‘공동체를 통한 사회적 자활’ 개념이 존재하고 있었다. 여기에 새로운 규칙이 겹쳐진다. 자활기업을 몇 개 이상 만드는 것이 성과평가의 지표로 규정된 것이다. 이로 인해 자활기업 수는 증가했지만, 자활기업을 만들기 위한 참여자의 구성이 차상위 계층을 중심으로 하는, 즉 상대적으로 노동 능력이 나은 사람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이와 함께 자활기업은 점점 기존의 사회적 맥락이 흐려지면서 사업조직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자활사업의 목표가 지속되고는 있었지만 새롭게 추가된 평가체계가 자활사업을 ‘경제적 자활’을 우선시하는 것으로 변화시키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자활을 우선 가치로 하는 정책의 방향은 점점 더 자활사업의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다. 차별적 성장(differential growth)의 핵심 기제인 성과평가는 이렇게 자활사업에서 점차 그 영향력을 강화하면서 제도의 발달 궤적을 변화시켰다.
Ⅳ. 보수정부 시기 제도 변화(2008년∼2016년): 취업 중심 자활사업으로 전환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이라는 전략 하에 감세, 규제완화, 사영화(privatization),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통해 친기업적 정책들을 생산하고 실행했다. 이런 전략은 사회정책 분야에서 어떻게 표출되었을까? 이명박 정부가 복지부문에서 내세운 국정지표는 ‘능동적 복지’였다. 2008년도 보건복지백서에는 능동적 복지가 “빈곤과 질병 등 사회적 위험을 사전에 예방하고, 사회경제적인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일을 통해 재기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과 함께 하는 복지 시스템”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는 경제부문 능동성을 보장하는 선에서 복지정책을 구사하겠다는 의지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정체불명의 개념이라는 비판, 형식적으로 진보진영의 대안담론을 수사 차원에서 차용했지만, 상당히 동떨어진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는 비판 등이 있었다(이태수, 2008; 김종건, 2008). 또한 능동적 복지가 시장친화 복지정책이고 선별 복지정책을 하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경제 성장을 위한 능동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저소득층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다(조흥식, 2011: 25-26).
신광영(2012)은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을 평가하면서 한국 복지정치가 서구 복지정치와는 다른 권력자원의 형성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한국 복지정치를 이해하는데 핵심이라 주장한다. 노무현 정부 시기에는 시민단체들이 복지정치의 주요 행위자였지만, 이명박 정부 하에서는 정부와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면서 시민단체들의 복지운동은 실질적으로 정부에 아무런 영향력을 지니지 못했다. 기술관료 중심의 복지정책 결정이 다시 이루어지면서 복지정책 결정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영향력은 거의 사라졌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 시기 복지 담론은 선거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이슈화되었다. 특히 무상급식 논쟁이 선거와 연결되면서 우발적으로 한국 사회에 복지 담론을 팽창시켰다. 이 결과로 기존에 친복지와 반복지로 나뉘어 있던 균열 양상이 복지의 방향과 정책 목표 차이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담론 구조의 변화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세운 슬로건은 ‘경제민주화’와 ‘한국형 복지국가’의 건설이었다. 박근혜는 대통령 후보가 되면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기초노령연금 대상자를 65세 이상 전체 노인으로 확대하고, 연금액을 1인당 20만 원까지 지급하는 기초연금제 도입, 무상보육과 무상교육 도입 등의 복지 공약을 내세웠다. 그러나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인수위원회와 정부 출범을 거치면서 핵심적인 공약들은 후퇴하거나 폐기되었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내용과 함께 개정 당시에 있었던 정부와 시민사회 사이 갈등도 당시 특징이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과정은 박근혜 정부와 시민사회 사이 관계를 잘 드러내준다. 2014년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정부, 여당’ 대 ‘야당과 시민사회’ 대결구도가 형성되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대선 공약인 맞춤형 급여체계로 개편하기 위해 정부와 여당은 개정 법안을 준비했고, 법안의 세부 내용에 반발한 시민사회는 연석회의를 조직해 법안 개악을 반대했다. 이들의 주장은 최저생계비 개념의 법률상 존치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수급자의 권리 보장이었다. 그러나 2년 가까이 제정되지 못하고 국회에 머물러 있던 기초법 개정 법률안은 시민사회 진영의 지속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의 의도대로 개정되었다.
보수정부, 특히 이명박 정부는 복지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시장친화적인 방향을 고수했다. 박근혜 정부도 이명박 정부와 유사하게 복지정책에 경제성장 논리를 결합시키거나 인적자본 향상을 통해 수급자에서 탈피할 수 있다는 주장을 정책에 반영했다. 또한 보수정부의 정책은 경쟁과 효율, 민간으로 부담 전가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다. 보수정부는 성장과 분배의 관계, 부자감세로 대표되는 조세문제, 저출산과 고령화에 대한 대응 등 한국사회에 제기된 다양한 문제를 부정하고, 과제 해결 전망을 어둡게 만들었다. 복지정치 차원에서는 시민사회와 정부가 완전히 단절되어 기술관료가 복지정책 결정의 중심이 되었다. 빈민의 소득보장을 경시하고 노동연계복지를 강제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하게 추진했다. 변화를 거부할 가능성은 당연히 낮을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 자활사업과 관련된 제도 특성 중 중요한 지점은 행위자 사이의 관계 변동인데, 이것은 ‘자활복지 선진화 프로젝트’에 따른 관료 내부 갈등과 성과관리형 사업에 대한 시민사회 대응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자활복지 선진화 프로젝트’의 핵심은 자활사업 대상자의 취업과 그 성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예산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서 시행한 성과관리형 사업인 희망리본사업과 고용노동부에서 시행한 취업성공패키지가 대표적이다. 두 사업은 내용 면에서 약간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노동시장에서 취업을 통해 노동 빈곤층 탈수급을 지원한다는 공통의 사업 목표를 갖고 있다(류만희, 2015: 317). 유사한 목표를 갖고 있는 두 사업을 보건복지부와 고용노동부에서 분할해서 실시함으로 인해 부처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다. 정책 대상과 수단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대상자 분류는 노동능력 평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이 평가는 지자체 담당자에 의해 행해진다. 그런데 지자체 담당자가 보건복지부와 연계가 많아 고용노동부로 올 양질의 사람들이 보건복지부로 보내진다는 것이 고용노동부의 입장이었다. 보건복지부 쪽에서는 고용노동부 사업 효과성이 떨어지는 이유로 고용노동부 사업 방식을 들었다(이지호·이덕로, 2013: 42-44). 그리고 보건복지부 입장에서는 고용노동부에 할당되는 대상자보다 노동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대상으로 사업을 집행해야 하는 불리한 조건도 있다. 이러한 갈등이 벌어지는 핵심은 부처 간의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관료 조직 사이의 갈등과 함께 시민사회의 대응도 있었다.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 자활정책연구소는 자활복지 선진화 프로젝트에 대응하기 위한 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했다. 자활정책연구소는 현재 자활사업에 대한 보건복지부의 진단에는 동의하지만, 그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성과관리형 사업을 본격 실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심각한 우려를 보였다. 특히 이들은 투입된 예산에 비해 산출된 성과가 부족하다는 논리를 중심으로 하는 기획재정부의 성과중심모델에 강한 반발을 보였다(자활정책연구소, 2009: 14-15). 하지만 정부는 이런 입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자활 영역에 있어서도 시민사회를 배제하는 입장을 고수했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는 자활사업 관련법이 개정되었다. 자활사업과 관련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경우 2014년 12월에 대폭 개정되었다. 이른바 ‘송파 세 모녀 사건’12)으로 인해 촉발된 논쟁이 법 개정으로 이어져 소위 ‘맞춤형 급여체계’로 개편된 것이다. 하지만 이 개정 법률도 빈곤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기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조흥식, 2016). 빈곤 사각지대의 가장 큰 원인인 부양의무제는 일부 완화되기는 했으나, 부양의무제로 수급에서 배제되어 있는 117만 명 중 12만 명을 포함하는데 그쳤다. 또한 빈곤선 측정에 중위소득을 적용했고, 개별급여제가 도입되었다. 교육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지만 생계급여와 의료급여, 주거급여 등 빈곤층의 소득보장과 긴급한 욕구에 직결된 급여에서는 진전이 없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개편될 당시 연석회의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을 보면 박근혜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번 개정안은 그 시작부터 문제를 갖고 있었다. ‘개별급여 도입’을 대통령 후보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던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인수위원회를 통해 인구의 3%에 불과한 기존 기초생활수급자가 ‘너무 많은 복지를 독점’하고 있다며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이 급여를 나눠야 한다고 발언하는가 하면,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의원들을 통해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을 ‘뒷문 입법’했다. 시민사회계는 지속적으로 ‘정부 입법안을 통해 국민과 직접 대화할 것’, ‘예산증대 없는 조삼모사 개별급여가 아닌 사각지대 해소대책을 내놓을 것’, ‘기초생활보장법의 통합적 운영 위에 개별급여를 도입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에 대해서는 묵묵부답했다”(국민기초생활보장법 지키기 연석회의, 2014).
시민사회와 단절된 채 정책을 추진하려한 보수정부는 법안 개정이나 제도의 일부를 수정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었다. 제도 규칙을 지키는 데 유동성이 큰 변수로 취급된다는 것은 제도를 해석하고 실행할 유연성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Mahoney & Thelen, 2010: 20-21). 그만큼 제도를 해석하고 실행할 재량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변화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기관이 실행 재량권을 가지게 되면 제도의 점진적 전환 가능성은 커지게 된다. 민주정부 시기 분석과 마찬가지로 보수정부 시기 자활사업 제도 변화의 실제 양상을 살펴보자.
자활사업 참여대상은 2008년 70,489명부터 2015년 140,700명까지 꾸준하게 증가했다. 특히 차상위 계층 참여는 2012년과 2013년에 잠시 감소 추이를 보인 것을 제외하고는 범위가 계속 확대되었다. 특히 2014년 29,838명에서 2015년에는 41,313명으로 급격하게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으로 인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14) 조건부 수급자의 경우 2008년에 42,554명에서 2009년 50,193명으로 7,500명 가량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2015년에는 2014년에 비해 4,600명 정도 증가했다. 다른 해에는 그리 큰 변화를 보이고 있지 않으며 사실 변화의 폭도 크지 않다.
연도 | 계 | 기초수급자 | 차상위자 | ||||||
---|---|---|---|---|---|---|---|---|---|
소계 | 생계 | 의료·주거·교육 | 자활 급여 특례자 | 시설 수급자 | 취·창업수급자 | ||||
조건부 | 일반 | ||||||||
2015 | 140,700 | 99,387 | 52,873 | 5,334 | 2,475 | 3,703 | 204 | 34,798 | 41,313 |
자료: 2015 보건복지백서13).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개편은 자활사업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조건부 수급자의 소득·재산 범위가 축소되었고, 자활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희망 참여대상 범위가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자활사업 의무 참여대상 규모 감소와 함께 자활사업의 주요 참여대상이 이전보다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이들로 축소됨을 의미한다(이승호 외, 2016: 208, 228).
자활사업 프로그램별 참여 유형을 보면 보건복지부와 노동부의 프로그램 참가자가 2008년부터 동시에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참가자가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노동부 프로그램 참가자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폭이 커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표 9>는 2008년∼2015년의 프로그램별 참가자 현황을 보여준다.
자료: 보건복지백서 각 연도15).
2008년부터 노동능력이 미약한 수급자를 대상으로 지역사회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노동의욕을 유지하고, 지역사회에 대한 참여기회를 제공하던 지역봉사가 사실상 폐지되었다. 또한 2012년부터는 근로유지형 자활근로 참여 대상자에서 차상위 계층이 빠지고, 기초생활 수급자로만 제한했다. 자활근로 중에서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에 집중적으로 인원을 배치해 수급자를 일반노동시장에 들여보내려는 정책이 현실화된 것이다. 2007년에 40% 미만으로 설정되어 있던 근로유지형 자활사업은 2008년도엔 35% 미만으로, 시장진입형은 20% 이상으로 규정되었다. 2009년도엔 근로유지형이 전체 참여자의 30% 이하로, 2012년부터는 20% 미만을 유지하도록 했다. 지역자활센터에서 시장진입형 사업 없이 사회적 일자리형 자활사업만으로 운영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20∼25% 이상을 시장진입형으로 추진해야만 한다는 방식을 통해 참여자를 일반 노동시장으로 진입시키려는 정책 방향은 이후로도 지속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정책 방향이 수정된 이후 수급자는 탈수급과 노동시장 진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한 연구에 의하면 자활근로에 참여하고 있는 수급자들이 탈수급 이후의 삶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은 세금이나 사회보험료 납부에 대한 부담감(25.9%)과 수급대상으로 있을 때 받았던 급여를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함(22.6%)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 결국 이들의 소득이 획기적으로 나아지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이들은 제도에 반강제로 자신을 묶어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 나타나는 긍정적 효과는 탈빈곤이 아니라 경제적 지위의 하위 이전이 예방되고 사회적 관계가 맺어지는 측면, 다시 말하면 사회적 배제의 완화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사회와 접촉하고, 정부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통해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고 느끼는 자활사업 참여자의 심리적 상태(김정원 외, 2013b: 155, 190-192, 199-202)로 파악할 수 있다. 자활사업 참여자의 사회적 배제효과를 연구한 이상은·전세나(2012)의 연구에서도 자활사업 참여 후에 사회적 배제가 상당 부분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활사업 프로그램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데, 대표적으로 사례관리 프로그램과 자활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맞춤형 취·창업 프로그램 등이 이 시기에 도입되었다. 학계에서 먼저 사례관리의 필요성을 제기했고(홍경준 외, 2001; 노대명 외, 2004; 유태균 외, 2010) 자활현장에서 사례관리기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실천이 보건복지부 내부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2007년부터 사례관리 시범사업을 준비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참여자의 자활경로를 상향화하려는 관심에만 주로 집중한 채 기초생활보장 틀에서 시·군·구 공공영역에서만 운영되었다. 그 결과, 지역사회 관련단체 간 협력을 끌어내지 못하고 성과도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결국 시범사업으로 끝난다(황미영, 2013: 232-233). 자활 사례관리는 이후 2011년에 다시 시범사업이 실시되었다. 이후 2013년에는 참여자에 따른 개인별 맞춤형 자립지원과 경로설정 프로그램인 Gateway 프로그램이 도입되었다.
한국의 자활사업에서 사례관리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운영된 시기는 참여자들이 취업과 창업을 통해 일반 노동시장으로 진출하는 가시적 성과를 중시하던 시기였다. 이러한 상황이 사례관리의 도입 목적과 실제 운영 실태 간의 괴리를 낳았다. 취업 여부를 성과 평가의 중심에 두는 정책 흐름은 결국 현장에서 취업 연계 서비스에 자원을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그것에 적합한 참여자를 선별하는 기능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2013년부터 자활사례관리 중심 기능을 고용센터 역할로 이동시키고, 지역자활센터와 같은 민간전달체계는 기존처럼 지자체로부터 배치받은 참여자에 대한 사업단 중심 기능으로 돌려놓은(황미영, 2013: 234) 취업 우선 정책, 그에 따른 전달체계 변화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보수정부 시기에 시작된 대표적인 성과관리형 사업은 희망리본 프로젝트이다. 자활역량평가를 통해 취업욕구가 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일반적으로 창업보다는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데, 자활성공률 및 탈수급률이 다른 자활사업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참여자의 경제적 성과만으로 기관을 평가하고 성과급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인해 나타나는 단점이 있다. 기관 차원에서 단기적으로 참여자들의 취업률을 높여서 성과급을 받을 수 있도록 자원과 노력을 집중할 유인을 제공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노대명 외, 2013: 56-59).
개별 참여자의 취업과 그것을 통한 탈수급을 자활성공 지표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인 보수정부의 정책은 희망리본 프로젝트를 비롯한 취업 위주 프로그램 참여자 확대와도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16) 희망리본 프로젝트 참가 인원은 2009년엔 2,000명, 2012년 4,231명으로 증가했다. 전국으로 서비스를 확대한 2013년엔 10,054명, 2014년엔 14,089명이 참여했다. 취업성공패키지 참여자는 2008년 1,000명, 2009년 1,857명에서 2012년엔 13,410명으로 급증했고, 2015년에는 26,094명이 참여했다. 희망리본 프로젝트와 취업성공패키지에 참여한 자들의 합인 취업지원 사업 참여자를 2009년부터 2015년까지 살펴보면 3,857명, 6,659명, 16,423명, 17,641명, 25,062명, 32,076명, 32,237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 이에 비해 같은 기간 자활근로 참여자는 2010년 75,199명에서 2015년 40,724명으로 감소했다(<표 10> 참조). 자활근로를 거쳐 공동체 창업을 통해 노동시장에 진출시키는 경로보다 개인 취업을 더 정책 우선순위에 두었다는 점을 참여자 수 증감으로 확인할 수 있다.
구분 | 2009 | 2010 | 2011 | 2012 | 2013 | 2014 | 2015 |
---|---|---|---|---|---|---|---|
자활근로 | 62,404 | 75,199 | 60,385 | 53,342 | 48,002 | 40,234 | 40,724 |
취업지원 | 3,857 | 6,659 | 16,423 | 17,642 | 25,062 | 32,076 | 32,232 |
2012년 이후 ‘일을 통한 빈곤 정책’과 ‘취업우선 지원 정책’의 강력한 시행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조건부 수급자의 교육 훈련이나 심리적 안정이 우선이 아니라, 무조건적 취업(job first) 전략이 강조되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이문국, 2016: 86). 이렇게 상대적으로 역량을 갖춘 참여자를 취업 우선 사업에 먼저 배치하는 전략을 취한 희망리본 프로젝트는 결국 사업 관리 주체의 단일화를 통한 효율화를 꾀한다는 명목으로 2015년도에 고용노동부 취업성공패키지로 통합되었다.
이 시기에 노동부에서 시행하는 자활사업 비중은 비약적으로 확장되었다. 부서별 자활사업 참여 현황을 보면 2011년부터 참여자 수가 7,915명, 2012년 13,410명, 2015년에는 26,094명으로 비약적으로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보건복지백서 각 연도). 박근혜 정부에서 추구한 취업우선 전략 기조에 맞추어 취업성공패키지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강화한 결과이다. 참여자를 훈련시켜 노동시장에 진출시키는 것 자체가 단순한 비판 대상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자활사업에 내재해 있는 본질적 가치와 지향을 생각하면 취업성공패키지가 갖고 있는 정책 방향에 대해 몇 가지 비판을 할 수 있다. 취업우선의 정책으로 인해 지역자활센터에서 수행하고 있는 기존의 자활사업 참여자의 질적 수준이 하락하고 있는 부분을 먼저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이에 따른 부담은 자활센터 실무자의 몫으로 지워지고 있다. 또한 사회부조 수급자에 대한 구직의무 강요와 같은 정책기조는 사회정책보다 경제정책에 기초해 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수행한 주민생활지원서비스에 따른 공공부문 전달체계의 개편을 이어받아 희망복지 전달체계를 수립했다. 희망복지 전달체계는 기존 체계와 기본 골격은 유지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지방정부 중심에서 벗어나 공공과 민간 연계를 강화하여 시·군·구에 희망복지지원단을 설치하여 업무를 원스톱으로 처리하도록 하였다(권기창, 2012: 13). 이와 함께 사회보장정보시스템 행복e음을 구축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명박 정부에서 진행한 공공사회복지전달체계 개편의 핵심은 재정효율성 강화에 있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유사 중복 사업 확인을 통한 중복급여제한, 그리고 현금급여지급 관리 강화를 위한 사회보장정보시스템 행복e음 가동 등을 핵심적 내용에 포함하는 공공사회복지전달체계 개편을 단행하였다(지은구, 2012: 83). 그런데 이 개편은 사실 부정수급이나 서비스 중복 등으로 인한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한 명목으로 사회보장정보시스템 행복e음을 구축하고, 전자바우처를 확대한 후 그것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 전반적으로 통제를 강화한 것이다. 재정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한 이 조치로 인해 기초생활수급자의 급여가 박탈되는 상황도 발생했다. 보건복지백서에서 밝히고 있는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조사·관리 및 급여실시의 적정성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보장이 중지된 가구는 각각 16,222, 23,300, 32,813가구였다. 이 시기 정부에서 발간한 보건복지백서에는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 제고”를 위해 “적정급여 및 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조사·관리 및 급여 실시의 적정성 조사”를 실시해 그에 따른 예산절감 “실적”을 거두었다고 되어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전달체계를 개편하려는 시도는 있었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이루어진 개편도 조직과 인력에 대한 계획에 큰 변화는 없었다. 또한 부처 사이에 분산되어 있는 복지사업은 전달체계의 통합보다는 사업을 통폐업해 여전히 분산된 체제하에 집행되었다.
이렇게 이원화된 체계로 진행된 자활사업 중에서 이 시기에 특히 중점을 두었던 것은 노동부가 주관하는 자활사업, 즉 취업에 중심을 두는 사업이었다. 노동부 전달체계에서 프로그램을 실제로 시행하는 기관은 고용센터이다. 고용센터는 개인별 취업지원계획을 수립하고 관리하며, 다양한 취업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기관이다. 고용센터는 IMF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실업에 대처하기 위해 고용안정센터라는 명칭으로 설치되었다. 고용안정센터는 이후 2002년까지 168개까지 확대되었다가 2003년부터 그 수가 감소했다. 고용센터 수의 감소는 규모의 경제를 통한 업무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센터의 기능개편 및 통합을 추진한 결과이다(유길상 외, 2012: 111).
민간 부문 전달체계도 완비되었다. 광역자활센터가 확충되었고, 중앙자활센터가 설립되어 자활사업을 총괄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중앙과 광역, 지역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가 구성되었지만,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하게 언급해야 할 것은 중앙자활센터가 차지하는 위상과 관계에 있다. 중앙자활센터는 지역자활센터와 광역자활센터가 전국 단위 협의체의 필요성을 복지부에 제기해 설립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중앙자활센터는 지역자활센터나 한국지역자활센터협회와 갈등 관계를 보이면서 오히려 정부와 우호적·협력적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지규옥, 2016: 212). 중앙자활센터가 지역자활센터에 대한 평가와 성과관리 사업에 대한 모니터링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중앙자활센터는 정부 정책을 추진하는 보조기관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광역-지역자활센터의 상위 기관으로 인식되는 상황이 되었다.
보수정부 시기의 자활사업 제도 변화 역시 급격한 변화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제도의 기본 틀은 유지하고 있었지만, 제도가 추구하는 목표는 경제적 성과를 달성하는 것으로 점차 변동했다. 이명박 정부의 친시장적 복지정책, 경제 우선의 정책 실행, 그리고 그것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 역시 경쟁과 효율을 강조해 자활사업에서도 개인의 취업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실행되었다. 정부 정당성의 기반인 복지를 심각하게 축소하기보다는 제도가 추구하는 목적을 수정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규범을 강제해 제도 변화를 추동했다.
자활사업에 배치되는 참여자의 변화, 그리고 우선순위를 두는 프로그램을 두고, 그곳에 자원을 집중하는 것, 취업 지원을 위한 새로운 보건복지부 프로그램의 창출, 노동부 취업지원 프로그램의 급격한 성장, 취업과 창업 여부에 따른 센터 평가와 차별 지원 등 많은 부분이 참여자의 취업을 위한 것으로 운영되었다. 시민사회와 소통하지 않고 억압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보수정부는 권력관계에 있어서도 불균형 상태를 고수했다. 제도가 설계 당시 목표와 다르게 운영되는 것에 대한 민간 반발은 철저히 억눌렀다. 자활사업을 직접 실행하는 민간은 협치 당사자에서 평가 대상으로 변했고, 국가는 이들 사업을 통제하는 관리자의 입장을 취했다.
정부는 기존에 존재하던 성과평가를 강화하고, 그것을 규범으로 명문화하면서 지침으로 하달했다. 하달된 지침에 따른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페널티를 주었고, 반대 경우에는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이런 방식으로 제도가 추구하는 명시적 목적과 실제 실행에 있어서 불균형을 초래했다. 보수정부는 권력을 장악하면서 자활사업 영역을 복지 영역에서 경제 영역으로 이동시켰다. 제도의 효과성을 목적과 다르게 시장으로 진출하는 것으로만 평가하려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제도는 경직되고, 궁극적인 실제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 이 논문은 변화를 거부할 가능성이 약한 정치 맥락과 제도 해석과 실행에 있어 재량수준이 높다는 것을 점진적 변화의 요인으로 분석했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보수정부 시기 자활사업 제도 변화 유형을 ‘전환’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상의 분석을 토대로 정부 속성에 따른 자활사업 제도변화 유형을 정리하면 <표 11>과 같다.
정치 맥락 특성 | 제도 특성 | 제도변화 유형 | |
---|---|---|---|
민주정부 | 변화 거부 가능성 강함 | 제도 해석 · 실행 재량 수준 낮음 | 중첩 |
보수정부 | 변화 거부 가능성 약함 | 제도 해석 · 실행 재량 수준 높음 | 전환 |
Ⅴ. 결론
이 논문은 자활사업이 시행된 이후 나타난 변화 양상을 역사적 제도주의 시각을 통해 제도를 구성하는 행위자들 간의 역학관계 변화에 따라 추적했다. 시기는 민주정부 시기와 보수정부 시기로 구분했다. 민주정부 시기에 자활사업은 새로운 규칙들을 도입하면서 제도를 유지했지만, 기존 규칙을 제거하거나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참여자의 구성이나 프로그램별 참여자의 변화도 자활사업의 기존 규칙을 완전히 대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동체 창업에서 개인 탈빈곤으로 목표가 변해가는 모습, 성과평가와 같은 새로운 규칙 도입으로 인해 제도의 부분 수정이 생겨났다. 권력관계 변화도 민관협력형에서 정부 주도권이 강해지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특징적인 것은 자활사업을 통한 사회적 자활의 목표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 경제적 자활을 중시하는 것이 겹쳐지면서 제도가 조금씩 변동해 왔다는 점이다. 새로 생겨난 규칙이 기존의 제도를 완전히 대체하지 않으면서 제도를 부분적으로 수정하는 모습을 통해 이 시기의 제도 변화 양상을 중첩으로 해석했다.
보수정부 시기에도 제도의 기본틀은 유지되었다. 하지만 제도가 추구하는 목표가 경제적 성과를 달성하는 것으로 변동했다. 복지 축소보다는 제도가 추구하는 목적을 수정하고, 그에 따른 새로운 규범을 강제했다. 참여자 배치, 우선순위 프로그램, 노동부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 강화, 성과평가에 따른 차별 지원 등을 통해 자활사업은 이제 취업지원을 위한 제도로 변모했다. 권력관계에 있어서도 정부는 힘을 독점한 채 시민사회와 소통을 완전히 단절하고, 정부 관료 주도로 제도를 이끌었다. 이런 상황에서 제도가 추구하는 명시적 목적과 실제 실행은 엇박자를 냈다. 제도 효과성을 시장 진출로만 평가하려 한 보수정부의 자활정책은 원래 목적과 다르게 운영되었다. 이렇게 제도의 궁극적 목적이 전환되었다. 이를 통해 보수정부 시기 자활사업 제도의 변화를 전환으로 분석했다.
이 논문은 역사적 제도주의 관점에서 제도가 서서히 변동하는 과정을 분석하려 했고, 그 결과로 제도가 실제 어떻게 변동했는지를 추적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밝히는 것을 통해 더 풍부한 관점을 제공하려 했다. 하지만 목표 과잉으로 인해 원인을 분석하는 데 있어 세밀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 논문이 갖고 있는 한계이다. 세력관계의 변동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행위자들 사이에 나타난 상호작용을 더 면밀하게 분석했다면 제도 변화의 원인을 더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들 사이의 정치과정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못한 것은 이 논문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후속 연구를 위한 과제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