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절대공동체를 ‘넘어’ 5·18 광주 커뮤니타스를 ‘넘어’(강인철, 2020, 『5·18 광주 커뮤니타스』, 사람의무늬)

형주 김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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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형주_전남대학교 5·18 연구소 연구원
*Corresponding Author : achung2002@gmail.com

© Copyright 2020 Social Integration Research Center, Kangwon National University. This is an Open-Access article distributed under the terms of the Creative Commons Attribution Non-Commercial License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nc/4.0/) which permits unrestricted non commercial use, distribution, and reproduction in any medium, provided the original work is properly cited.

Received: May 25, 2020; Revised: Jun 15, 2020; Accepted: Jun 17, 2020

Published Online: Jun 30, 2020


I. 프롤로그

공교롭게도 나는 『5·18 광주 커뮤니타스』 서평을 준비하는 와중에 5·18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는 남성을 만났다. 깜박했던 일이 생각나 부랴부랴 연구실을 나서는 참이었다. 연구실 문을 여는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남성은 구리 빛으로 그을린 얼굴에 하얀색 안전모를 들고 작업용 ‘목장갑’을 낀 채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왼쪽 손이 뒤틀려 있었고, 오른쪽 다리를 절었다.

남성은 나를 보자마자 5·18 이야기를 꺼내며 붙잡았다. 나는 단번에 그가 5·18 관련자라는 것을 직감했다. 그리고 그가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것도 그의 눈빛과 언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5·18 연구를 하다 보면 이런 분을 종종 만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항쟁 참여 자체만으로 혹은 부상과 후유증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라는 말이 그들의 고통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나는 그 말 이외에 다른 말을 찾을 수 없다.

그의 말은 대략 이러했다.

“5·18 개ㄷㅠ데홰내하에 고등학생 댄 ㅠㅏ듀츄ㅔㅑ 민정당 무구ㅔ더ㅕ채규므,ㅜ 담양 쇼호ㅑ뮥드ㅏ쳐탸쵸 훈련 추커ㅗ푸쥬ㅑ차 약품 ㅔ마쥬ㅗ타ㅑㅐ 다리 ㅑㅠㅁ가ㅣ규댜ㅊ매처ㅏ.”

망상과 착란, 시공간을 넘나들며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 뒤엉킨 언어들. 나의 미간과 입술, 뇌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언어였으나, 언어가 아니었다. 나는 단 한 문장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절박한 눈빛으로 쉴 새 없이 지나온 삶과 한을 내뱉는 그에게 당황했고, 미안했다. “5·18, 고등학생, 광주, 담양, 훈련, 약품, 민정당 총재” 이것이 내가 30여 분간의 ‘대화?’에서 그나마 건져 낸 단어들이다. ‘불구의 언어’들 속에서 내가 식별해 낸 것은 아래와 같다.

‘그는 5·18항쟁 당시 고등학생 신분이었고, 담양 수북방면을 통해 걸어서 광주로 들어왔다. 민정당 총재에게 어디론가 끌려가 누군가를 죽이려는 목적 속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왼쪽 팔과 오른쪽 다리에 부상을 입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나 한 것일까? 언어란, 얼마나 무력한 것인가.

2. ‘5·18 광주’와의 대화

언어의 무력함 혹은 증언 불가능성에도 불구하고, 5·18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계속되어왔다. 그 시도는 다각적으로 전개되어왔는데, 이를 주체별로 구분하면 대학생, 재야, 학계를 포함한 민간의 조사와 연구, 그리고 정부 차원의 조사로 나눌 수 있다. 이는 다시 시기별로도 구분되는데, 1980년대에는 주로 민간의 자체적인 조사와 정리가, 1980년대 말과 90년대 이후에는 정부의 조사와 학계의 연구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먼저 대학생과 재야의 활동을 살펴보면, 1980년대에는 대학생들과 재야의 단체들이 앞장서 5·18과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이를 정리하고 해석했다. 특히 전남사회문제연구소는 항쟁 전과 당시, 그리고 이후에 발표된 각종 성명서와 호소문, 정부와 언론의 발표문을 모아 책으로 엮어냈는데, 여기에는 ‘찢어진 깃폭(어느 목격자)’, ‘5·18민중혁명성 고찰(전남대학교 총학생회 학술부)’, ‘광주여 민중항쟁의 드높은 봉우리여(민주화운동청년연합)’ 등 5·18을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체계적으로 분석한 글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황석영 · 이재의 · 전영호가 펴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은 항쟁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최초의 출판물로, 항쟁의 진실을 알리려는 재야의 노력을 대표하는 저작물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학계는 1988년 한국현대사사료연구소의 설립을 통해 본격적으로 조사에 착수했다. 연구소는 많은 수의 항쟁 관련자들을 심층면접하고 정리하여 ‘광주5월민중항쟁사료전집(이하 사료전집)’을 출간했다. 이 책은 5·18 연구에서 가장 큰 반향을 일으켰던 『오월의 사회과학』의 모체가 된다. 이 조사를 시작으로 항쟁 관련자들을 대상으로 여러 차례 구술조사가 진행되었으며, 수집된 자료와 구술조사를 토대로 관련 연구가 가시화되었다. 연구는 주로 항쟁의 진상을 규명하고, 항쟁의 성격과 의미를 분석했으며, 사회과학적 설명을 시도하는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2000년 이후에는 항쟁의 의미와 가치를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로 확장시켜 보편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항쟁의 새롭게 발굴된 정부문서를 통해 항쟁의 진실을 규명하거나,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거나, 소홀히 다뤄졌던 영역을 파악하려는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연구는 각 시기의 정세와 문제의식, 그리고 정부차원의 조사와 맞물려 진행되었는데, 특히 정부차원의 조사는 연구를 확장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마지막으로 정부 차원의 조사이다. 정부는 1988년 국회의 조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5·18 항쟁의 진상을 규명하려 하였다. 조사가 진행될 때마다 새로운 증언과 자료가 폭로되거나 발굴되었는데, 이를 토대로 연구도 확장되었다. 정부 차원의 조사를 통해 연구자는 새로운 문서에 접근할 수 있었고, 항쟁을 여러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예컨대 2000년대 이후에는 ‘국방부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와 ‘국방부 5 · 18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통해 상당히 많은 양의 군자료가 공개됨으로써 신군부의 전략과 계엄군의 동향 등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생산된 연구물 중 백미는 5·18 항쟁이 20년 가까이 흐른 뒤에 발간된 최정운의 『오월의 사회과학』이라고 볼 수 있다. 최정운은 항쟁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접근했는데, 특히 그가 제기한 ‘절대공동체’라는 개념은 이후에 수많은 ‘공동체론’을 양산할 정도로 항쟁을 이해하는 새로운 주제어가 되었다. 그리고 『오월의 사회과학』 이후 다시 20여년이 지난 2020년, 5·18 항쟁 40주년을 맞이하여 『5·18 광주 커뮤니타스』가 발간되었다. 『5·18 광주 커뮤니타스』 역시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리미널리티’, ‘커뮤니타스’, ‘사회극’이라는 개념을 통해 항쟁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는 사회과학적 시도라는 점에서 상당히 주목할 만하다.

3. 대화의 창: ‘리미널리티’, ‘커뮤니타스’, ‘사회극’

『5·18 광주 커뮤니타스』는 ‘리미널리티’, ‘커뮤니타스’, ‘사회극’이라는 개념을 통해 5·18 항쟁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저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이와 같은 개념을 통해 5·18 항쟁을 분석한 사례는 없다. 그는 리미널리티와 커뮤니타스 개념을 통해 항쟁의 “변혁적인 성격”과 “항쟁공동체 형성의 과정 · 조건 · 특징”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사회극 개념을 통해 “사회 운동이나 정치적 갈등, 더 나아가 혁명적 사태” 등을 유용하게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 가지 개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리미널리티는 아놀드 방주네프(Arnold van Gennep)가 통과의례의 한 단계로 제시한 용어인데, “통과의례는 분리, 전이, 통합의 세 국면 혹은 단계로 구성”되어 있고, “‘전이’ 단계를 특징짓는 용어가 리미널리티”이다. 빅터 터너(Victor W. Turner)는 이를 “일상생활 바깥 혹은 주변부의 모든 조건”을 확장했고, 이에 따라 저자는 리미널리티의 열 가지 특성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리미널리티는 “(1) 반구조와 초월성(일상성의 초월), 그로 인한 자유와 탈권위주의, (2) 모호성과 애매함, (3) (모호함과 애매함의 시공간을 통과한 후의) 정체성과 지위 변화, (4) 집합적이고 공적인 성격, 집합의례의 성격, (5) 평등성과 연대성, (6) 사회의 일시적 투명화와 그에 대한 성찰성, (7) 저항적 에너지·감정의 분출과 새 유형의 감정 출현, (8) 비판과 대안적-유토피아적 질서의 제시(창조성·전복성), (9) 기성질서 대표자들에 의한 위험시, (10) 일시성 혹은 단기 지속 등” 열 가지 특성이 있다. 또한 저자는 리미널리티를 ‘변혁· 해방의 리미널리티’와 ‘질서 · 충성의 리미널리티’로 구분하고, 5·18 항쟁이 ‘변혁·해방의 리미널리티’의 “가장 생생한 사례”라고 주장한다.

둘째, 커뮤니타스는 빅터 터너가 “리미널리티의 특징 중 평등성과 연대성의 측면을 부각시켜” 제안한 개념이다. 커뮤니타스는 리미널리티와 상당히 유사한데, 구체적으로 커뮤니타스는 위에 열거한 리미널리티의 열 가지 특징 중 (1), (4), (5), (7), (8), (9), (10)번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커뮤니타스는 리미널리티 안에서 출현한다는 점, 특정한 시공간을 가리키는 리미널리티와 달리 사회관계를 가리킨다는 점, “주체의 능동적인 참여와 투신”과 이에 수반되는 “공동체의 체험과 감정”이라는 차원이 추가된다는 점, ‘리미널한 단절’을 통해 ‘진리’가 생성되고, 그에 헌신하는 ‘주체’가 등장하는 순간이라는 점, 거기에서 ‘자발성’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리미널리티와 구분된다. “요컨대 커뮤니타스는 리미널리티의 해방력과 전복성에 대한 주체들의 자발적인 참여에 의해 발생”한다. 따라서 커뮤니타스적 사회관계는 “(1) 평등성과 겸손함, (2) 우애, 연대성, 인류애, (3) 인격적 · 직접적 · 전인적 만남, (4) 에고의 상실과 이타성, (5) 집단적 기쁨, 그리고 자유 · 해방 · 성스러움 · 신비체험을 포함하는 고양된 감정들, (6) 행위와 인식의 융합”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셋째, 사회극은 사회적-정치적 과정이 연극과 여러모로 유사하다는 발상인데, 저자는 이 개념을 ‘혁명적 상황’에 적용하여 이 상황이 “(1) 위반, (2) 위기, (3) 교정 혹은 치유, (4) 재통합 혹은 분열의 인정”으로 구성된다고 본다. 특히 그는 5 · 18항쟁과 관련하여 사회극의 2-3단계는 유동적이라는 점, 결말은 열린 상태라는 점, 재통합과 균열의 경계가 모호할 수 있다는 점, 1단계 ‘위반’은 아래(대중)로부터 뿐만 아니라, 위(지배세력)로부터 올 수 있고, 3단계 ‘교정’ 역시 항상 위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위반이 위로부터 촉발될 경우, 아래로부터 저항이 2단계(위기)로 진입하는 계기가 되고, 반대의 경우 ‘교정’ 단계의 양상도 달라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최초 위반이 위로부터 올 때 ‘교정 주체의 이원화’나 ‘교정 조치들의 상호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아래로부터 교정조치들이 성공할 경우, “시민혁명이나 민중혁명”으로 규정될 수 있다고 본다.

요컨대, 리미널리티는 지배적인 구조로부터 벗어난 시공간을 의미하고, 커뮤니타스는 그 안에서 생성된 사회적 관계를, 사회극은 이 과정 모두를 종합적으로 비춰주는 또 다른 틀인 것이다. 저자는 이 개념들의 특정 부분을 강조하거나 추가함으로써 5·18 항쟁을 정교하고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저자가 새롭게 추가하거나 강조한 개념은 항쟁을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지만, 항쟁을 재해석하기 위해 도입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끼워 맞추기 식으로 흐를 위험도 분명히 존재한다.

4. 세 가지 창을 통해 본 ‘5·18 광주’

『5·18 광주 커뮤니타스』는 총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장부터 본격적으로 리미널리티, 커뮤니타스, 사회극 개념을 적용하여 분석을 시도한다. 3장과 4장은 리미널리티 개념을, 5장부터 8장까지는 커뮤니타스 개념을, 9장부터 11장까지는 사회극 개념을 통해 5·18 광주를 해석한다. 마지막으로 12장에서는 세 개념을 통해 4·19와 5·18을 비교한다.

구체적으로 3장과 4장에서는 외부 강압에 의해 광주가 분리되어 리미널리티 안으로 진입했고, 변혁의 리미널리티를 구성했다고 지적한다. 이때 분리는 “구체제와 동의어인 ‘구조’로부터의 해방과 그로 인한 기존 일상생활의 중단 및 초월”을 가리키는데, 1980년 광주는 한국사회의 지배구조와 일상생활, 그리고 광주 바깥과 분리되었다. 이에 따라 광주는 리미널리티 안으로 진입했고, 초기에는 구조와 반구조의 지지자들이 뒤섞이고 갈등적으로 공존했다. 이를 테면 “대다수 광주 사람들은 국가와 저항 세력 사이에, 계엄군과 시위대 ‘사이에’ 끼어”있었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참여자와 구경꾼의 신분이 중첩된 상황에 놓여 있다가 어느 순간(계엄군의 폭력적 진압이 지속되어 임계점을 통과한 순간)부터 “변혁의 리미널리티” 안으로 진입했다. 시민들은 민주화와 항쟁의 정당화를 위해 싸웠고, 지배구조를 벗어나 유토피아를 꿈꿨으며, 폭력에 반폭력으로 맞섰다. 또한 최후까지 저항함으로써 신군부에게는 학살자라는 ‘오명과 낙인’을 가하는 동시에 남은 자들과 후대에게는 ‘나를 증거하라’ 혹은 ‘그때 너는 어디 있었느냐’는 ‘메시지와 울림’을 남겼다.

5장부터 8장까지는 항쟁 시기 도래한 공동체를 항쟁-재난의 커뮤니타스(5장), 자기통치의 커뮤니타스(6장), 재난의 커뮤니타스, 의례-연극의 커뮤니타스(7장), 비폭력 저항의 커뮤니타스, 항쟁-재난의 커뮤니타스(8장)로 구분하여 분석한다. 저자는 “최정운이 절대공동체의 형성·존속 기간으로 보았던 시기에 독특한 유형의 ‘광주 커뮤니타스’가 형성되었으며, 그것은 5월 22일 이후에도 분해되거나 소멸하지 않았다”고 본다. 따라서 “5월 18일부터 5월 21일까지 재난의 커뮤니타스와 항쟁의 커뮤니타스”가, “5월 22일부터 27일 새벽까지는 자치의 커뮤니타스가 형성된 가운데 의례-연극의 커뮤니타스가 전면으로 부상”했다. 한편, 5월 22일 이후에는 “희생자 추도의례와 부상자 치료 과정”을 통해 ‘재난 커뮤니타스’가 심화 내지 성숙하는 과정이 있었고, 5월 26일 이후에는 “계엄군과의 최종 결전을 준비하는 ‘항쟁-재난 커뮤니타스’”가 다시 출현하였고, 특히 ‘죽음의 행진’으로 불리는 ‘비폭력 저항의 커뮤니타스’도 잠시 등장했다고 본다.

9장부터 11장까지는 사회극 개념을 통해 “광주항쟁의 ‘과정’뿐 아니라, ‘항쟁 종결 이후’”까지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5·18 항쟁은 위(지배세력)가 헌정질서를 중단하고 계엄령을 확대하는 ‘위반’을 저지름으로써 ‘위기’가 발생했고, 지배세력과 저항세력 간의 ‘교정조치’가 번갈아가면서 도입되었다. 이를 테면 지배세력은 유혈진압과 집단발포, 도청 탈환 작전이라는 교정조치를 취했고, 저항세력은 시민의 참여를 독려하고, 일부는 무장했으며, 협상을 통해 사태를 ‘교정’해 보려 시도했다. 이후에 항쟁은 종결되었고, 신군부는 5공화국 내내 ‘재통합’을 시도했으나, ‘분열’로 귀착되었다. 또한 항쟁이후에는 유가족, 부상자, 구속자, 그리고 살아남은 광주사람들을 비롯한 국내외 양심적 지지자들이 또 다른 ‘5월 공동체’를 형성해 5월 운동을 전개해 나갔으며, 결국 민주화를 달성함으로써 반전을 이루어냈다. 조지 카치아피카스(George Katsiaficas)의 표현처럼 “전두환 대통령과 그의 군사정부는 1980년 5월 전투에서 승리했을지 모르지만, 민주화운동은 7년 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마지막으로 12장은 ‘비교연구’의 맥락에서 “4·19혁명을 리미널리티, 커뮤니타스, 사회극의 세 차원에서 5·18과 체계적으로 대조”한다. 4·19와 5·18은 리미널리티의 측면에서 공권력의 살상행위와 시민들의 파괴행위 과정을 통해 기존 질서와 ‘분리’되었고, 기존 체제를 위기로 몰아갔다는 ‘변혁의 리미멀리티’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커뮤니타스의 측면에서는 환희와 열기, 나눔과 연대의식, 신뢰, 자부심 등 독특한 감정과 연대를 이루면서 새로운 ‘커뮤니타스’를 형성했고, ‘사회극’의 측면에서는 지배세력의 ‘위반’으로 촉발되어 ‘위기’가 고조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4·19의 경우, 5·18에 비해 시공간적으로 넓고 긴 범위에서 지속되었고, 커뮤니타스의 규모 및 범위, 다양성 등의 차원도 달랐다. 또한 5·18과 달리 4·19는 저항세력의 ‘교정 조치’가 성공함으로써 구체제를 청산하는 듯 했으나, 결국 정치군인들의 등장으로 ‘반동적 교정 조치’가 전격적으로 단행됨으로써 ‘교정 주체’가 역전되기도 하였다.

5. 창의 틈과 그림자

『5·18 광주 커뮤니타스』는 새로운 개념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항쟁에 대해 특유의 사회학적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이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시도로, 꼼꼼하고 체계적인 분석을 통해 5·18 항쟁과 사회운동 연구에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쌓아올린 찬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틈이 보이기도 한다.

먼저 개념의 적용 문제이다. 리미널리티와 커뮤니타스, 그리고 사회극은 인류학적 개념으로 주로 의례에 대한 분석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5·18 광주 커뮤니타스』에서 발견되듯이 이 개념은 굉장히 추상성의 정도가 높고, 따라서 대단히 많은 범위에서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예컨대, 제의나 종교의례, 연극뿐만 아니라, 인간의 성장기나 집단의 변화 등 일상의 거의 모든 분야와 시기에 적용 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이 세 가지 개념을 5·18 항쟁에 적용하는 것 역시 무리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부정적 측면 또한 내포하고 있다. 즉, 특정 개념이 상당한 분야에서 적용가능하다는 것은 개념이 보편타당하다는 것과 동시에 남용될 수 있는 위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곧 대상의 독창성을 희석시키는 것과도 연결된다. 5·18 항쟁을 설명할 때에도 항쟁의 독창성을 부각시키는데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것은 5·18 항쟁을 리미널리티와 커뮤니타스, 사회극이라는 잘 만들어진 창으로 잘라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어디에나 적용가능하다는 것은 어느 것이나 설명가능하다는 것이고, 따라서 잘 짜진 설명 틀이 될 수 있지만 필연적으로 간과하는 것들을 파생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에 따라서 보이는 바깥 풍경은 다르게 구조화될 수 있다. 5·18 항쟁의 경우도 항쟁의 일반적인 측면이 아니라, 다른 측면들이 쉽게 간과될 수 있다. 예컨대 항쟁에 참여하지 않았거나 피난을 갔거나, 항쟁을 진압했던 다른 주체들을 그 창안으로 포괄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다음으로 자료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 연구가 방대한 자료를 섭렵했음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 활용된 대부분의 자료는 1차 자료를 기반으로 생산된 2차 자료이다. 2차 자료는 1차 자료보다 오류의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주관적인 관점과 해석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물론 2차 자료 역시 엄밀한 분석과정을 통해 생산되었고, 다양한 주장을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사실을 기반으로 이를 재해석하는 연구에서는 2차 자료보다 1차 자료가 더 적극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특히 5·18 항쟁과 같은 논쟁적인 주제는 같은 자료를 두고서도 상반된 해석을 내리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관점과 해석의 문제를 들 수 있다. 5·18 항쟁을 설명하는 기존의 많은 연구들은 항쟁을 ‘신화화’한 경향이 있었다. 아쉽게도 『5·18 광주 커뮤니타스』 역시 ‘신화화된 5·18’이라는 짙은 그림자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5·18 광주 커뮤니타스』는 항쟁에서 등장한 온갖 군상들의 차이와 갈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항쟁의 열기와 환희를 강조하는 듯하다. 이러한 점이 5·18을 ‘천상계’에서 ‘인간계’로 내려놔야 한다고 생각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아쉽게 느껴진다. 이것은 저자가 가지고 있는 5·18에 대한 애정과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열망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자칫 (저자의 꼼꼼한 분석에도 불구하고) 지배와 저항 혹은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 속으로 5·18 항쟁을 고착화시킬 우려가 있다. 따라서 이것은 항쟁의 다차원적인 양상을 포착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5·18 광주 커뮤니타스』는 최정운이 『오월의 사회과학』을 통해 열어젖힌 5·18 항쟁에 관한 새로운 사회과학적 해석에 다른 선과 색을 덧입혀 정교하게 손질한 한 편의 거대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5·18 광주 커뮤니타스』는 『오월의 사회과학』이 연 시대의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처럼 보인다. 이제 5·18항쟁에 관한 연구는 새로운 시도를 통해 다른 작풍의 작품이 생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6. 다시, 목소리 없는 사람들에게

최근에는 5·18 항쟁에 참여했거나 목격했던 일반 시민의 일기, 공공기관의 문서, 기무사 사진 자료 등이 새롭게 공개되고 있고, 초등학생, 고등학생, 호텔리어, 일반 시민, 외국인, 계엄군 등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주체들의 발언이 도서로 발간되거나 인터뷰로 소개되고 있다. 따라서 새로운 화풍의 ‘항쟁도’는 주목받지 않았던 주체들을 통해 구상되어야 하며, 하나의 인물, 사건, 장소 등이 다양한 시각에서 재구성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주체의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항쟁 당시에도 시민들은 직업이나 연령 등에 따라 항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랐다. 예컨대 일부 대학생(특히 운동권)들에게 있어서 항쟁은 손쓸 수 없이 커져버린 시위이자, 동시에 21일 이후의 도청은 무질서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수습위원들에게 항쟁은 “철모르는 아이들이 총을 가지고” 다니는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기자들에게 항쟁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이거나 ‘전쟁’과 같은 상황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같은 사실은 『5·18 광주 커뮤니타스』 에서도 일부 언급되지만, 많은 연구에서 대체로 부각되지 않았고 무시되어 왔다. 또한 항쟁에 참여하지 않고 구경하거나 숨어 있었던 시민들, 광주를 빠져나갔던 수많은 피난민들, 시장상인들과 자영업자들, 공무원, 경찰 등에 대한 연구도 전무하다. 따라서 관련 자료가 광범위하게 수집되어야 한다.

둘째, 인물 · 사건 · 장소의 재구성 측면에서 살펴보자면, 이 세 요소 역시 다각적 · 다층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예컨대 도청 앞 금남로는 항쟁 전 기간에 걸쳐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던 장소인데, 이 거리의 자영업자들은 영업을 하지 못해 가게 문을 걸어 잠그거나, 때로는 무상으로 물건들을 공급(해야)했다. 당시 상황을 한 시민은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때는 다들 자발적으로 내놓고 그랬어. 철물점 사장이 싸리비를 한 묶음 가게 앞에 내 놓으믄 너나 할 것 없이 고것으로 쓸고, 싹 청소하고 글고 다시 가게 앞에 갖다 놨제. 안 그러믄 ‘역적’ 소리 들은디”(항쟁에 참여한 한 시민). 이 시민은 모두가 한마음이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표현했지만, 가게 사장은 ‘역적’ 소리를 듣기 싫어서, 무서워서 빗자루를 내놓았을지 모른다. 실제로 항쟁이 종료된 후 광주시청에서 재산피해 신고 접수를 받을 때, 일부 상인들이 피해 목록을 신고하기도 했다(신고와 관련된 전후 맥락은 세심하게 따져봐야 한다). 즉, 일단의 ‘커뮤니타스’가 형성되었을지라도 그것의 배경과 조건(심리적 상태 등)은 심층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문서기록과 증언은 물론이고, 이미지와 영상들을 참고할 수 있다. 다행히 새로운 사진과 영상들이 계속해서 발굴되고 있다. 예컨대 2018년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공개한 ‘미공개필름’은 군관계자나 정부 측 인사, 혹은 기자들에 의해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데(따라서 정부의 시각을 상당히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7일 항쟁 종료 후, 시민들이 평온한 삶을 되찾은 모습이나 초등학생들이 학교에 등교하여 해맑게 웃는 모습은 항쟁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5·18 항쟁은 폭동이나 난동 혹은 무장봉기가 아닌 어떤 낯선 풍경, 소란, 소동, 난리, 위험한 상황 등으로 여겨질 수 있다. 따라서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무법천지’와 ‘해방구’ 사이의 무엇이 어떤 형태로든 드러나야 한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은 그동안 말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야 하고, 말을 했음에도 듣지 못했다면 이제는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증언이 불가능하다면 그들의 눈빛과 몸짓이라도, 주변 인물들에 대한 조사를 통해서라도 그들의 목소리가 겹겹이 포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5·18 항쟁의 ‘항쟁도’가 새롭게 구성된다 하더라도 몇 사지 과제는 남아있을 것이다. 그중 하나는 항쟁에 대한 사회과학적 해석을 중단 없이 진행하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한국 사회의 수많은 저항운동들에 대해 검토하는 것이다. 저자가 『5·18 광주 커뮤니타스』의 마지막 장에서 일별했듯이 4·19를 비롯한 군중들의 저항운동은 각이한 수준에서 전개되었고, 개인적 수준에서는 물론이거니와 사회적 수준에서도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긴 시간을 두고 혼합되면서 한국 사회만의 독특한 정치적 질서와 삶의 양식을 창출했다. 따라서 5·18 항쟁뿐만 아니라 현대사 곳곳에서 등장했던 혁명적 저항운동을 양분화된 ‘도덕적’ 베일 속에서가 아니라 인간들의 삶속에서 역동적으로 재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저항이 파생시킨 정치적·사회적 유산을 파악하고 그것의 속성과 실체를 드러내야 할 것이다.

7. 에필로그

나는 그의 소리에 응답하지 못한다. 나의 난처함을 눈치챈 그가 수십 장의 자필원고를 보여준다. 나는 그의 문장을 해독할 수 없다. 답답한 그가 고등학교 졸업장과 생활기록부를 보여준다. ‘수미우우미수우미...’, ‘과묵함.’ 1980년 그는 온전했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언어로 그를 이해한 나는 그에게 미안해졌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이해했거나 그렇지 못했거나, 여전히 그는 말해진 뒤에도 말해지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그를 돌려보낸다. 나는 ‘서평’을 써야 했으므로. 광주시청에 가면 억울함을 풀어줄 방법을 알려 줄 것이라는 말과 함께 그를 일으켜 세웠다. 사실이지만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뱉고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본다. 그리고 ‘그의 말을 더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붙잡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다그친다. 하지만 나는 들을 수 없다. 정확히 말해, 들을 수 있으나 이해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나의 무능력에 기가 찬다. 그를 보내는 발걸음이 무겁다. 저 멀리 건물 밖까지 배웅을 나간다. “자전거 ㅜ채ㅗ디듸ㅇ.” “자전거를 타고 오셨군요.” 비오는 날이었다. 빗속에 그가 떠나간다.

그가 살았던 ‘5·18 광주’는 무엇이었을까?